곽일순/ 수필가 사진가 프리랜서

미국 방문 중이던 문정인이 한미연합훈련 축소와 사드 발언으로 다시 언론의 촉수를 건드렸다. 일부 유력 일간지는 앞뒤 맥락을 자른 의도적 편집으로 내용을 호도해 국민의 알 권리를 방해했다. 적어도 중앙 유력지의 기자가 문맥을 이해하지 못했을 리는 없다. 그런데 해석은 분분하고 때론 엉뚱하다. 어떤 이는 검찰 개혁보다 언론 개혁이 더 시급하다고도 한다. 문정인은 통일외교안보 특보 이전에 학자다. 학자의 위치에서 소신 발언을 하는 행위는 지극히 정상이고 정치적 책임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야당은 특보의 사퇴를 강력하게 요구했다. 의견의 피력도 소신 발언도 할 수 없다면 전문 지식을 이용한 학자들의 정치 참여는 길이 막힌다. 적어도 학술대회에서 발표한 소신의 언로는 터 두어야 맞을 것이다.

한 국가가 제대로 서려면 언론과 교육이 살아야 한다는 사실은 상식이다. 그런데 대한민국의 고질적 병폐는 언론과 교육제도이니 큰일이다. 언론은 중립을 벗어나 이념과 이권으로 점철되고, 교육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박정희는 자신의 아들 입학에 맞춰 고등학교를 평준화했지만 현재는 다시 자사고와 외고의 특별한 등장으로 갈등을 겪고 있다. 학교와 학생, 학부모들은 혼란스럽다. 고등학교 서열화의 중심에 자사고와 외고가 있다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고 찬반으로 나뉜 의견은 갈등으로 치닫고 있다. G20 국가에서 우리처럼 교육정책이 춤추는 나라가 또 있을까. 학생들과 학부모는 입시전쟁과 정보전쟁을 함께 치러야 한다. 이건 정책이 아니라 임시방편책이다.

문재인 정부의 출범으로 수면 위에 떠오른 자사고와 외고 폐지 문제는 교육계의 갈등으로 번지고 있다. 서울자립형사립고연합회는 서울지역 23개 자사고가 소속되어 있다. 이화여고 100주년 자리에서 기자회견을 가진 이들은 진영 논리에 입각한 전형적 포퓰리즘이라며 폐지 중단을 주장했다. 고교 서열화와는 아무런 관련도 영향도 없다고 한다. 민족사관학교와 상산고 등도 합류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문제는 특수 지위에 있는 자신들의 시각이 아니다. 국민 전체의 평균적 눈과 느낌이 중요하다. 평준과는 거리와 괴리감을 충분히 주는 당사자들이 사교육 유발 요소와 입시기관으로 전락이라는 평가를 당장 멈추라고 말한다면 논리가 맞지 않는다. 아무리 봐도 특별한 수험생들이요 특별한 교육기관이다. 심지어 위화감마저 느낀다. 이에 동조한 31개 외고도 교장협의회를 열고 반대 목소리를 학부모 중심으로 만들어가고 있다.

학교를 입시라는 목표를 향한 기구로 만들어 소위 잘 나가는 애들만 모아 특수 교육을 시키는 방법이 서열화가 아니고 고교 평준화의 역행이 아니라면 무엇일까. 아무리 좋게 생각해도 시험을 위한 특수학교일 뿐이다. 그래서 우리에겐 세계적인 대학은커녕 서열 100위 안에도 명함을 내밀지 못하는 학벌을 위한 입시 정책만 존재한다. 선진국 고3에게는 '45이라는 말이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 애들에겐 전설이 되어버린 방과 후 즐거움을 누리고 학원도 없지만 이들이 진학하는 대학은 서울대보다 훌륭하다. 결국 우리 학부모는 알면서도 자식들의 행복할 권리를 빼앗고 있다. 초등학교부터 이른바 입시지옥으로 등을 떠밀고 있는 것이다. 비교적 자유로운 입학과 졸업의 엄격함만 지킨다면 자연스럽게 해결된다는 사실을 모두 알지만 진정한 평준화를 통한 아이들의 해방은 멀다. 그래서 사교육 강사의 숫자가 공교육 교사를 앞서고, 학교는 절차를 위한 장소요 학원은 입시전쟁에서 사용할 무기를 제공하는 중요한 공간이다.

문 대통령은 일반고등학교의 전성시대를 공약으로 말했다. 하지만 정부 차원의 행동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 단지 서울특별시와 경기도 등 일부 교육감들만 전방에서 자사고와 외고의 폐지를 외치고 있을 뿐이다. 진심으로 특별한 학교의 폐지를 통한 일반고의 전성시대를 여는 교육의 혁신을 원한다면 정부가 나서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분명하게 공약을 이행하고 공교육의 위치를 제 자리로 돌려야할 것이다. 이제 더 이상 정책의 혼선으로 학부형과 수험생들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일은 없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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