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일순/ 수필가 사진가 프리랜서

절기가 처서를 지나 9월로 접어들고 있다. 그리고 9월이면 우리 고장의 가장 큰 행사 불갑산상사화축제가 열린다. 어쩌면 가장 많은 내방객이 몰리는 시기일 것이다. 7월 하순부터 피어나는 각종 상사화는 9월 말까지 불갑산을 밝히며 등산객의 눈길을 끈다. 상사화는 지역과 색깔에 따라 백양꽃, 위도상사화, 진노랑상사화, 붉노랑상사화, 꽃무릇, 상사화 등으로 불리며, 2달 사이에 불갑산을 찾으면 순차적으로 피어나는 이 모든 종류의 상사화를 볼 수 있다. 이 때 치러지는 상사화축제는 올해로 17회를 맞았다.

그 동안 시행착오를 거치며 쌓인 노하우로 제법 틀이 잡혔고 얼마 전부터는 품바를 비롯해 각종 공연관련 행사를 대폭 줄이며 조용하고 분위기 있는 축제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다른 고장의 축제처럼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 특별히 신경을 쓸 이유도 없거니와 오히려 너무 밀려오는 손님으로 인해 상당수 되돌아가는 사람들의 불만 해소에 마음이 쓰일 정도니 굳이 돈 들여 시끄러운 행사를 유치할 필요가 없음이다. 그래서 지역의 문화예술인들과 함께 조촐한 전시와 지역 특성화 체험행사 정도만 열어왔다. 적은 예산을 콩알처럼 나눠 실비에도 턱없는 보조금으로 3-4일 행사를 치러왔지만 그나마 자리라도 내 줌에 감사하며 전시와 체험을 열었다.

그런데 올 축제 전시관련자들의 모임에서는 다시 불만이 터져 나왔다. 그나마 콩알 보조금을 대폭 축소했기 때문이다. 영광에서 문화예술분야는 이미 오래전부터 무시를 받아왔지만 이제 더욱 심해지고 있다. 차라리 전시와 체험행사를 없애는 것이 문화예술 종사자들의 자존심을 조금이라도 살리는 길이다. 올해는 행사가 훨씬 길어져 열흘이나 된다. 가난한 문화예술인들을 10일이나 행사에 묶어 놓고 봉사를 요구하면 어쩌라는 것인가.

여기에 그나마 대폭 축소된 행사보조금을 먼저 지출하고 행사가 끝나면 청구서를 넣으라니 아연실색이다. 회비 몇 푼 걷어 운영하는 자생단체들이 선 지출할 돈은 어디 있으며 10년 전에나 했던 영수증 처리를 하라니 이해가 힘들다. 요즘은 경로당 어르신들도 운영비가 카드로 나간다. 퇴보하는 행정의 전형이다.

이웃 고장보다 뒤진 행정과 비협조를 따지는 말에 정치적 발언이라고 회의석상에서 몰아붙이는 정치적 무지는 더욱 당황스럽다. 이런 사람이 정말 정치를 하면 모든 지적은 정치적 발언이 될 것이다. 끔찍한 일이다. 지난 잘못을 지적하면 정치발언 혹은 정치보복이라 우기는 어느 무리와 닮았다. 항의에 사과를 하지 않는 모습까지 그들을 닮았다.

실외 전시가 힘든 수석과 서예, 그림 등을 전시하던 산림박물관을 갑자기 전시장소에서 제외시키고 조각전시는 장소를 정하지 않은 의아함에도 원인이 있었다. 민미협 회장은 산림박물관을 조각전시장으로 내주기 위해 당사자들에게 묻지도 않고 자신들을 내쳤다고 따졌다. 단체도 아닌 개인을 위해 3개 단체의 전시장을 의논도 없이 비워버렸으니 또 다른 형태의 갑질이다.

행사장에서의 문화예술인은 설 자리가 없다. 문화예술과는 관계가 없는, 전시나 공연, 체험 등에 전혀 경험이 없는 펜을 든 사람들의 지시에 그냥 따르면 된다. 이제 영광의 문화예술인들도 깊은 반성을 해야 할 시기다. 자존심을 찾아야한다는 말이다. 언제까지 모든 행사의 들러리로 을의 신분을 지킬 것인가.

방법은 있다. 모든 행사에서 물러나는 것이다. 끼워주기 식의 참가를 거부하고 스스로 문화행사를 주관하고 지역의 정신세계를 이끌어 가면 된다. 이번 불갑산상사화축제를 계기로 신중하게 생각해 봐야할 문제다. 그러면 문화발전을 위한 순수했던 발언이 정치적 발언으로 매도당할 일도 없을 것이며 문화예술인들이 무시당하는 이상한 지역의 정서도 사라질 것이다. 항시 주장하는 말이지만 지역의 수준은 물질이 아닌 정신적인 문화로 척도를 삼는다. 훌륭한 인재들이 넘치는 지역에서 존재감 없이 살 필요는 없다. 문화예술인 모두가 하나 되어 스스로 기획하고 스스로 전시하고 스스로 공연하는 희망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될 것이다.

저작권자 © 영광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