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훈/대추귀말자연학교장, 한농연영광군연합회전직회장

지난 20일 김지형 신고리원전 공론화위원장은 이번 공론화를 계기로 숙의 과정의 장점들을 매우 실감나게 체험할 수 있었다고 자신 있게 말씀드리고 싶다고 밝혔다. 471명의 시민 참여단이 석 달간 고민 끝에 내놓은 권고안은 숙의 민주주의의 정수를 보여줬다는 평가다.

'숙의'의 사전적 의미는 "깊이 생각해 충분히 의논한다"는 것으로 찬반 정보를 설명하고 토론하는 과정에서 나온 절묘한 결론은 우리 국민의 높은 집단지성 수준을 확인시켜줬다고 안팎에서 긍정적인 반응이 한창이다. 일반인들이 전문 영역을 제대로 이해하겠느냐는 우려는 기우였다. 주요 이슈에 대한 심층적인 찬반에 대한 정보교류는 이런 걱정을 불식시키기에 충분했기 때문이다.

또한 패자는 깔끔하게 승복했다. 신고리 5·6호기 건설 중단을 촉구했던 서병수 부산시장마저 대국적 견지에서 건설 재개 결정을 존중한다고 밝혔다. 이처럼 건설 재개와 중단 측, 또 대통령까지 공론화위의 권고안을 존중하면서 패자 없는 민주주의의 새 이정표를 세웠다는 분석이다.

앞으로 이 같은 공론화 방식이 우리 사회의 갈등을 조절해, 의사결정까지 이끌어내는 새로운 모델로 정착될지도 관심이다. 그동안 우리 사회는 현안마다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부딪혀 합의된 의사결정을 내릴 수 없었던 게 사실이다. 전문가와 관료들이 독점해온 의사결정 과정에서 작지만 힘찬 발걸음을 내디딘 공론화 사례가 성숙된 민주주의의 모습을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런 숙의 민주주의 과정은 촛불혁명이라는 유래없는 우리민족의 자긍심이 만들어 낸 의견수렴 과정이었다.

물론 이런 공론화 과정에 대한 우려도 없는게 아니다. 이번 신고리 원전 공론과정에서 89일 동안의 활동을 통해 첨예하게 나뉜 갈등의 문제해소에 큰 역할을 했지만 어디까지 이런 공론화 과정에 대한 권한을 부여할 것인가에 대한 논란이 있다. 또한 정치적 부담이 큰 이슈에 대한 책임회피 수단으로 이런 숙의과정을 악용할 수 있다는 걱정도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이런 과정을 통해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 정치적 이슈나 관의 일방 주도 정책에 대한 주민참여 확대 방법으로 이를 적절히 사용한다면 직접민주주의의 새로운 형태로 선용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지리라는 확신을 갖게 된다. 공론화위원회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결론에 대한 명확한 의견 수렴 범위에 대한 잣대를 설정해서 월권문제에 대한 말썽소지를 없앤다면 다양한 이슈에 대한 숙의과정에 직접민주주의가 실현될 수 있을 것이다.

민주주의의 역사가 짧은 우리에겐 이런 갈등을 풀어내는 방법에 대해 공부한 것도 체득한 것도 없었다. 또 군부독재라는 어두운 암초가 우리의 눈과 귀를 막아버린 적도 있었다. 근자에 들어서는 우리의 아둔함과 지혜부족 때문에 지도자들을 잘못 선택함에 따라 잃어버린 시간들이 민주주의를 가로막기도 했다. 급기야 일개 개인이 나라를 말아먹는 줄도 모르고 나라의 온갖 것을 내어맡긴 아둔한 지도자를 선택하면서도 부끄러운 줄 모르는 시대를 살기도 했다. 그러다 뒤통수를 맞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이렇게는 안 되겠다! 이것이 나라냐?란 자성의 피 토하는 함성으로 판을 뒤집게 된 것 아닌가? 두 눈을 부릅뜨고 이 안타까운 현실을 우리 힘으로 타개해보겠다고 직접 아스팔트 위로 발을 동동거리며 우리의 미래를 다시한번 우리 손으로 결정짓지 않았던가? 이런 과정 속에서 체득한 다중지혜의 아름다운 논의과정이 우리에게 선물로 주어졌고 이의 실현이 이번 공론화 과정을 통해 검증되게 된 것이다. 처음 시도해 본 것이니 문제도 있을 것이다. 실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역사의 진행과정에서 얻은 귀한 산물이니 이를 잘 발전시키는 것도 우리의 몫이라 생각한다.

영광에서도 지방자치를 실현해 가는 과정에서 첨예하게 지역의 의견이 나뉠 때가 몇 번 있었다. 대표적인 것 몇 가지를 들어보면 양재동 농수산물 직판장의 매각대금 활용방법이나 한수원 온수 활용방안, 지역내 대학설립문제, 지역발전자금에 대한 합리적 활용방안 등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주제들은 지역내 이익집단들 간의 암투로 번져 지역의 여론을 반분하였고 이 이슈들이 지역 공동체를 이간질 시켜왔다. 그런다고 몇몇이 모여 쉽게 결론을 낼 수도 없는 문제거리였다. 우리가 좀더 빨리 이런 숙의민주주의 과정에 대한 고민을 통해 의견수렴과정에 대한 공정성과 공론화과정을 받아들였으면 어땠을까? 또 결론지어진 내용에 대해 수용하는 민주적 과정을 지속적으로 가졌더라면 훨씬 현존하는 지역의 갈등을 해소하는데 도움이 되었을 것이고 영광군의 현재가 더 밝았으리라 생각한다.

이제라도 신고리 원전 문제를 통해 이런 숙의민주주의에 대한 실험을 시작했으니 영광군에서도 적극적으로 지역의 핫이슈들을 풀어내는 과정으로 자리잡을 수 있기길 바란다. 그러기위해 지방조례로 그 운용방법과 권한 등을 정하고 시범적 운영을 통해 지방민주주의에 천착될 수 있도록 힘써주길 군관게자와 군의원님들께 부탁드려본다.  

저작권자 © 영광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