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일순/ 수필가 사진가

동상과 기념비가 세워지려면 우선 조건으로 보편성이 있어야 한다. 그 보편성은 후세의 판단으로 정해진다. 제막의 대상이 부와 권력을 겸비한 자가 대부분이고 보면 본인 생존의 당대에 판단은 어렵다. 그래서 후대의 판단기준에 맡기는 것이 바로 동상과 기념비 등의 건립이다. 통상적으로 당대에 세워진 동상과 기념비는 세운 사람들이 죽기 전에 넘어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아부성이 강하기 때문이다. 현재 보편성을 획득하고 남아 있는 동상은 이순신 장군과 세종대왕이 대표적이다. 이렇게 보편성의 획득은 역사적 경험과 기록에서 얻기 마련이다. ‘훌륭한인물이라는 평에 이견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 조건이다.

요즘 박정희 전 대통령 동상의 제막을 두고 시끄럽다. 장소가 사유지가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이전에 우리나라에만 독특하게 자리 잡은 이념 논쟁이 문제다. 추종세력은 반대세력을 빨갱이, 동상건립을 반대하는 세력은 추종세력을 친일파로 대응하고 있다. 현장에선 폭력사태로 치달았고 불똥은 정치권까지 튀었다. 한 마디로 어처구니가 없는 상황이다. 조건이 주어지면 인간처럼 잔인한 동물이 없고, 믿음을 위해서라면 인간처럼 단순무지해지는 동물이 없다더니 틀린 말이 아니다. 인간은 자신의 믿음을 위해선 사회적 정의와 역사의 팩트를 간단히 모른척해 버린다. 10원 동전에는 숫자 10만 있는 것이 아니고 뒤에 다보탑이 있다고 아무리 설명을 해도 절대 뒤집어 보지 않으며 10만 고집한다. 뒷면을 확인하는 행위는 믿음을 의심하는 것이다. 다보탑도 있다는 주장은 이들에게 이념적 논쟁의 대상이 되어 적개심을 불러일으킨다.

역사적 사실이란 우리가 겪은 경험과 선대의 기록으로 말한다. 60년 이상을 살아온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아는 역사의 사실을 부정하는 행위는 자기기만이다. 자기까지 철저히 속이는 직업은 사기꾼 밖에 없다. 박정희 동상 제막을 반대하는 사람들을 빨갱이로 지목하는 사람들이 바로 이 부류들이다. 이들 머리에선 1910년부터 1992년까지 이어졌던 78년의 총칼이 억압하던 시기가 지워졌다. 아니 자신들의 믿음을 위해 지워버렸다. 우리가 경험했던 박정희 정권만 해도 얼마나 많은 사람을 자신의 권력을 위해 죽이고 희생시켰던가.

1917년 경북 선산군 구미면 상모리에서 40대 중반의 어머니에게서 빈농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구미보통학교를 거쳐 사범학교에 입학한다. 당시 진학을 적극적으로 도운 형 박상희는 동아일보 지국장이었고 후에 박정희가 죽인 황태성 등과 항일운동을 하고 있었다. 이들은 남로당의 핵심 인물이 된다. 박정희는 교사로 만족하지 못하고 진충보국(盡忠報國) 멸사봉공(滅私奉公) , 충성을 다해 국가에 보답하고 목숨을 바치겠다는 혈서를 만주사관학교에 보내 입학을 허락 받는다. 여기의 국가는 당연히 일본이다. 그는 다까기 마사오(高木正雄)’로 창씨개명을 하고 본격적인 일본군 장교 생활을 한다. 우리 국민이라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해방 후에는 국군 장교로 복귀해 가장 존경했던 형 박상희를 따라 남쪽 공산당인 남로당에서 간부로 활동하다 체포되고 만다. 이른바 핵심 공산당원이었던 그는 사형선고를 받지만 100여 명 동료들의 명단과 맞바꿔 목숨을 유지한다. 이름을 모르면 부대로 동행해 직접 찍어 주었다고 한다. 우리 현대사의 비극은 이렇게 출발했다.

대한민국 최대의 적이 무엇인가. 친일파와 빨갱이라 부르는 공산주의자 아니던가. 경북과 대구에서 반신반인으로 추앙 받는 역사적 박정희는 둘을 모두 갖춘 인물이다. 그런데 추종자들은 동상 건립을 반대하면 빨갱이라며 강한 적개심을 드러낸다. 역사적 아니러니다. 누구나 아는 현대사를 다시 새겨보는 이유는 스스로 귀를 막고 무지해지기를 원하는 소수의 사람들을 위해서다. 공개적으로는 막걸리를 마시고 밤에는 딸보다 어린, 심지어 대학생까지 불러다 놓고 일본 군가 아니면 엔카를 부르며 양주를 마셨던 그의 이중성은 동전의 양면을 닮았다. 빨갱이와 친일매국노의 구분성은 적어도 박정희 전 대통령에겐 존재하지 않는다. 그의 경제발전이라는 미명으로 행해진 천문학적인 비자금은 궁정동의 총소리와 함께 사라져버렸다. 거기엔 월남파병 장병의 목숨 값, 파독 간호부와 광부의 피땀, 한일협정에서 챙긴 정치자금 등 국민의 피눈물이 섞여 있다. 그 피눈물의 결과가 박근혜와 최순실이다.

저작권자 © 영광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