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구현 / 칠산문학 대표 / 영광신문 편집위원

"삼남에 내리는 눈"1975년 발행된 황동규 시인의 시집 제목이다.

조선 성종 때부터 도성이 있던 한양 이남지역인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를 삼남지방이라 했다.

"삼남에 내리는 눈"은 그 주제가 "동학농민 봉기"이며 주인공은 전봉준이다.

봉준(琫準)이가 운다. 무식하게 무식하게/일자무식하게, 아 한문만 알았던들/왕 뒤에 큰 왕이 있고/큰 왕의 채찍!/마패 없이 거듭 국경을 넘는/저 보마(步馬)의 겨울 안개 아래/부챗살로 갈라지는 땅들/()들이 얼굴 망가진 아이들처럼 울어/찬 눈에 홀로 볼 비빌 것을 알았던들/계룡산에 들어 조용히 밭에 목매었으련만,/눈이 내린다. 우리가 무심히 건너는 돌다리에/ 형제의 아버지가 남몰래 앉는 초가 그늘에/귀 기울여 보아라. 눈이 내린다. 무심히,/갑갑하게 내려앉은 하늘 아래/무식하게 무식하게 -삼남에 내리는 눈 전문-

정말로 무식해서 무식하게 우는 것이 아니다. 유식(합리적 사고)을 빙자해서 치졸한 먹물이 되지 않으려는 선비의 양심이다.

전봉준의 아버지는 향교 장의(掌議) 출신이고, 전봉준 또한 선비로서 농사일에 열중하면서도 아이들에게 학문을 가르치던 사람이었다.

아 그러나 전봉준은 무심한 현실을 탓하며 그 알량한 지식으로 잔머리 굴려 혼자 조용히 울고 있을 수가 없었다. 백성들의 고혈을 짜내며 썩을 대로 썩어문드러진 구한말 탐관오리들의 횡포를 그냥 나하고는 상관없는 일쯤으로 치부해버린 채 두고 볼 수만은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여타 먹물들처럼 점잖게 비판의 목소리 몇 마디 던져놓고 적당히 그들과 어울리는 그런 야비함은 더욱 싫었을 것이다. 그래서 무식하게, 무식하게만 울어야 했을 것이다.

1970년대 중반은 유신정권의 횡포가 극에 달했던 시기이다. 황동규 시인도 전봉준처럼 그야말로 무식하게 무식하게 울 수밖에 없었나보다.

눈 내리는 날, 특히 삼남지방 중에서도 차령(車嶺) 이남 지역인 호남지방에 눈이 내리던 날, 가만히 귀 기울여보니 들려오는 소리, 누군가? 눈 속에서 외치고 있는 소리, 그 소리들을 들으며 억압 받고 있는 민중들의 고통을 못 본 체 할 수만은 없었나보다.

그래서 전봉준처럼 무식하게 울었나보다. 서슬 퍼런 군부의 권력에 대항하며.

지금은 20182, 오늘도 눈이 내리고 있다.

내려서 쌓이고 녹았다 다시 내리고를 되풀이 하고 있다.

세상이 바뀌고 사람들도 변하였다. 조선의 탐관오리 같은 모리배들도 없어졌고 지금은 누구나 다 속칭 먹물들이며 물질적, 경제적 풍요가 넘치는 세상이 되었다.

더불어 전봉준장군이나 황동규 시인처럼 일부러 무식하게 울 필요도 없어졌고, 혁명이 요구되는 시대도 아니다.

그러나 그러나 우리가 꿈꾸는 그런 세상 또한 결코 아니다.

본지 영광신문의 사회문화 분야를 담당하고 있는 신창선 기자의 카카오톡 표제어는 "상하좌우(上下左右) 없는 영광을 위하여"이다.

사건이나 취재 현장에서 다양한 계층과 분야의 사람들을 만나보니 아직도 좌우 대립이 존재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계급적…….신분의 상하 관계가 상존하고 있음이 보였을 것이다.

과거의 억압이나 통치구조는 단순 가시적이었기에 다수 민중들읗 규합해서 그에 항거하기도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그러나 현대 사회는 특정 집단이나 세력들만이 독점하는 정치적, 행정적 정보력을 무기 삼아 교묘히 다수를 지배하는 수단으로 활용하거나, 정의로 치장한 쪽수들의 집단 이기주의가 사회 전체적으론 노출되지 않는 제로섬게임의 주범이 되는 등 그 형태나 수단이 은밀하게 숨겨져 있기 때문에 그 대항력을 결집시키기도 쉽지가 않다.

전봉준이 필요하지 않은 요즘의 삼남에도 눈이 내리고 있다. 그리고 그 눈 속 어딘가 에서도 분명 상대적 빈곤감이나 소외감에 시달리며 깊은 신음과 한숨으로 울부짖는 소리는 들려온다.

그래서 지금사회도 조용히 혼자 우는 방법을 알고 있는 알량한 먹물들이나 야비한 정의, 위선의 가면을 쓴 진실보다 그저 단순무식하게, 일자무식으로 소리 높여 울 줄 아는 전봉준이 더욱 필요하다.

세계 경제협력 기구인 OECD 국가 중 고임금과 저임금의 격차가 큰 나라로서 우리나라가 당당 (?)하게 2위를 차지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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