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후 2년만에 ‘나는 왜 니나 그리고르브나의 무덤을 찾아갔나’ 나와
‘작가가 인정한 작가’ 새로운 조명
“나는 지금도 그가 단편 엮어내는 솜씨로는 당대에 몇 손가락 안에 꼽힌다고 생각하면서도 못내 그의 무책임한 게으름에는 고개를 젓는다.”
2년 전 세상을 떠난 소설가 영광사람 송영(1940~2016) 선생에 대한 황석영씨의 인물평이다. 실은 인용문 앞에 한 문장이 더 있다. “그는 이를테면 내심 깊이 사귀지 않고 보면 ‘괴짜’인 셈이다.” 괴팍한 달인, 게으른 천재였다는 얘기다. 2005년 황씨가 본지에 연재한 자전소설 ‘들판에 서서 마을을 보네’ 5월 19일 자의 한 대목이다.
작가가 인정한 작가. 송영 선생의 유고집이 나왔다. 중단편집 ‘나는 왜 니나 그리고르브나의 무덤을 찾아갔나’(문학세계사)이다.
선생은 세상을 뜨기 얼마 전까지 해박한 지식과 감식안이 돋보이는 클래식 칼럼을 연재했었다. 생전 출간 결심을 못 했던 듯 소설책에 ‘작가의 말’ 같은 건 없다. 심지어 표제작 중편 ‘나는 왜 니나…’는 소설가인 주인공 화자의 신분이 작품 뒷부분에서는 정치인처럼 묘사됐다. 그것도 미처 끝맺지 못하고 200자 원고지 400쪽 분량에서 중단된 상태다. 작가의 거친 손길, 완성 전 형태를 살필 수 있는 유작이다.
그럼에도 작품은 읽는 이를 붙드는 힘이 있다. 끝을 맺지 못했으니 소설 화자가 왜 니나의 무덤을 찾으려 하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하지만 이유를 짐작은 할 수 있다. 소설가 ‘나’는 2005년에 이어 7년 만에 러시아를 찾는다. 지난번 방문했을 때 나는 모스크바 외곽 시골 마을 가브리노에서 비슷한 연배의 니나를 만난 적이 있다. 니나는 농촌 여성답게 구릿빛 얼굴에 악수할 때 사내 같은 힘이 느껴지는 사람이었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나와 동행한 고려인 출신 소설가 A를 통해 내가 러시아에 정착한다면 자기 땅을 나눠주겠노라는 수수께끼 같은 제안을 한다. 나이에 걸맞지 않게 얼굴까지 붉힌 채 말이다.
노년의 풋사랑이 소설 소재라고 하면 너무 단순한 해석이다. 아니면 잊히지 않는 순간들의 기록인가.
유고집에 실린 작품들은 소설인지 에세이인지 성격이 헷갈린다. 단편 ‘라면 열 봉지와 50달러’는 러시아 출신 한국학자 박노자와의 인연을 다룬 작품, ‘금강산 가는 길’은 말 그대로 금강산 방문 체험이 소재다. 장르의 울타리를 뛰어넘어 내면의 진실을 솔직하게 전하는 인생 말년의 작품들이다. 334쪽. 1만4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