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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성률 교수의 철학 이야기(191)
철학자의 죽음(18)-사형(조광조)
2018년 04월 09일 (월) 13:10:55 영광신문 press@ygnews.co.kr
   

조선 중종 때의 유학자 정암 조광조(1482-1519)는 당대의 유명한 유학자 김굉필의 제자가 되어 젊은 나이에 장래가 촉망받는 학자로 손꼽히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연산군은 그의 생모(生母) 윤씨가 폐위될 당시에 신진사류인 윤필상, 이극균, 김굉필 등이 찬성하였다 하여 그들을 처형하고, 나머지 신진사류들을 삭탈관직 또는 유배를 보내는 갑자사화를 일으키고 말았다. 이 일 후에 조광조는 스승을 대신하여 후배들을 가르치는데 평생을 보내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나 1506년 박원종 등 훈구대신들은 폭군 연산군을 몰아내고 그의 이복동생을 국왕으로 봉했으니, 이것이 이른바 중종반정이다. 이후 조정에서는 훈구세력을 견제하기 위하여 사림(士林)의 학자들을 등용하기 시작했다. 이때 조광조는 진사회시에 장원급제하고 알성시에도 급제하여 조정의 주목을 받았다. 마침내 조광조는 중종의 신임에 힘입어 정치개혁에 착수하였다. 형벌에만 의지하는 패도정치에 반대하고, 인의(仁義)에 따르는 왕도정치를 주창하였다. 애민(愛民)사상에 충실한 그는 한전제(限田制-농민들에게 나라의 토지를 나누어 주는 대신 매매하지 못하게 하는 제도. 양반들의 토지 수탈과 농민들의 토지 헐값매매를 방지하기 위한 제도)의 실시와 현량과의 설치, 노비법과 서얼법의 개선 등을 추진하였다. 그러나 이에 반감을 갖게 된 훈구파들은 홍경주로 하여금 그의 딸 홍빈을 사주하여 모함을 진행하도록 한다. 홍빈은 궁녀들을 시켜 궁중의 후원 나뭇잎에 꿀물로 주초위왕(走肖爲王)이라는 네 글자를 쓰게 하였다. 그리고 벌레들이 단물을 빨아먹기 위하여 그 글자를 좀먹듯 파먹어 들어가자 중종임금에게 보여준다. ‘주초위왕(走肖爲王)’에서 주초(走肖) 두 글자를 합치면 조()가 되므로, 조광조가 왕이 된다는 뜻이다.

그러잖아도 조광조의 지나친 개혁에 싫증을 느끼던 중종은 즉각 조광조를 반역죄로 다스려 전라도 화순 땅의 능주로 귀양을 보냈다. 조광조가 귀양을 간다는 소문이 퍼지자 성균관 유생들을 비롯한 수천 명의 젊은 학생들이 대궐로 몰려가 시위를 벌이고 그의 무죄를 주장했다. 그러나 왕은 공신들의 말만을 듣고 그에게 사약을 내려 죽이고 말았다. 하지만 조광조가 사약을 마시지 않고 독주를 마시고 자진하였다는 설도 있다.

조광조가 일찍 타계한 것은 첫째, 혁신정치로 훈구파의 감정을 산 데다 둘째, 도학정치에 염증을 느낀 중종이 그의 무고함을 알면서도 훈구파와 야합한 면이 있고, 셋째, 궁중미신의 상징인 소격서(昭格署-하늘과 땅, 별에 지내는 도교의 제사를 맡아보던 관청)의 폐지로 후궁의 미움을 산 때문이다. 또 그가 온 백성의 여망을 한 몸에 모은 것이 오히려 벌을 받는 동기가 되지 않았을까 여겨진다. 그 근거로는 그가 귀양길에 오를 때, ‘거리를 지나가던 모든 사람들이 옷깃을 여미고 절을 하였다. 이렇게 인심을 얻은 것이 죄가 되었다.’중종실록의 기록을 들 수 있다.

이후 왕과 공신들은 그 동안에 조광조 등이 추진한 개혁을 모조리 무효로 돌려버리고 옛 제도를 부활시켰다. 이 사건을 기묘사화라 부른다. 조광조가 무고를 당해 죽자 4천여 명의 유생들이 신구(伸救-죄 없는 사람을 사실대로 밝혀 주어 구원함)상소를 올리고, 그 이후에도 기대승(전남 나주 출신의 대유학자)의 세 차례에 걸친 상소를 비롯하여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포상을 내려야 한다는 글을 올렸다. 그리하여 마침내 선조 초에는 영의정에 추증(追贈-나라에 공로가 있는 벼슬아치가 죽은 뒤 그 관직을 높여줌)됨과 동시에 문묘에 배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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