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철진/ 광신대학교 사회복지상담학과 교수/ 사회복지학박사

지난 2001, 수천명의 인명피해가 난 미국 9.11 참사 중에도 대다수의 직원이 목숨을 구한 회사가 있었습니다. 바로 미국을 대표하는 글로벌 투자은행 모건스탠리였습니다. 당시 이 회사는 뉴욕 월드트레이드 센터의 두 번째 건물 73층에 위치하고 있었습니다. 사무실에는 직원 2,687명과 고객 250명 등 3천여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첫 번째 건물에서 테러가 일어나자 모건스탠리의 직원들은 일사분란하게 대피를 시작했습니다. 대피가 진행되는 동안 두 번째 건물에도 테러가 일어났고, 대부분의 직원이 대피를 마친 후 두 번째 건물이 붕괴되었습니다. 결국 모건스탠리 사람들은 대부분 아무 피해 없이 구조가 되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요? 그것은 모건스탠리의 전() 안전요원 릭 레스콜라의 반복된 대피훈련 덕분이었습니다. 레스콜라는 평소 직원 대피훈련을 자주, 정기적으로 시행했습니다. 전 직원이 우왕좌왕하지 않고 비상계단을 통해 침착하게 건물을 빠져나가는 대피 훈련이었습니다. 11초가 아까운 고액 연봉자들은 이런 훈련을 못마땅하게 여겼지만, 레스콜라는 굴하지 않고 대피 훈련을 매년 시행했고, 결국 위기의 순간 그 동안의 훈련이 진가를 발휘해 많은 사람의 생명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

훈련의 효과를 보여 주는 사례는 우리나라에도 많이 있다. 갑자기 심정지를 일으킨 아빠를 심폐소생술로 살린 초등학생 방서현 양, 2008년 집중 호우 때 신속하게 대피하여 한 명의 인명 피해도 없었던 부산 동래구의 사례에서 우리는 훈련의 중요성을 실감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모든 정부기관과 국민이 참여하는 대표적인 재난 훈련은 매년 5월 실시하는 재난 대응 안전 한국 훈련이다. 2005년 처음 실시되어, 10년이 지나는 동안 참여 기관도 많아지고 훈련의 질도 점차 높아졌다. 하지만 재난 발생의 원인이 점차 다양해지는 등 재난 환경 또한 더욱 복잡해지고 있어 정부 지자체 국민이 이에 대응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도록 재난 대응 훈련을 더욱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 이제는 변화하는 재난 상황과 복잡해지는 재난 원인에 대응할 수 있는 내용을 추가 할 필요가 있다. 현장이 없는 탁상공론형 훈련을 지양하고 모든 기관이 현장 훈련을 실시해야 한다. 아울러 지역과 기관의 특성이 반영된 재난 유형과 훈련 방법을 선정하여 훈련의 실효성을 높여야겠다.

재난 대비 훈련의 목적은 재난이 발생했을 때 빠르게 대처하는 역량을 기르는 것이다. 재난 현장에서 개개인이 재난 대응 방법을 미리 숙지하고 있다면, 소중한 생명을 스스로 지킬 수 있을 것이다. 과거 큰 재난을 겪은 지역에 대해서는 같은 상황을 반복하지 않도록 주민 대피 훈련을 중점 실시한다. 또한 스스로 재난대피소 찾아가기등 국민이 쉽고 재미있게 참여할 수 있는 훈련도 확대해야 할 것이다.

지진이 빈번한 일본은 미국 못지않은 '메뉴얼의 나라'. 대표적인 재난 대비 매뉴얼이 '도쿄방재(東京防災)’. 일본 도쿄도(東京都)2015, 전 가구에 배포한 323페이지 분량의 책자다. 도쿄도는 홈페이지에도 4개 언어(일본어·한국어·영어·중국어)로 책자를 올려놨다.

도쿄방재는 지진은 물론 테러, 호우, 전염병 등 크고 작은 일상의 위기와 위험 상황에 대처하는 요령을 자세히 수록했다. 재난징조, 몸 보호하기, 주의가 필요한 장소, 해야 할 행동,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을 재난 종류별로 세분화했다. 초등학생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그림과 만화를 많이 활용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시민의 낮은 안전의식은 차치하더라도 국민이 공유하는 매뉴얼이 거의 없다. 행정안전부 국민재난안전포털에 간략하게 소개된 '국민행동요령'이 그나마 조금 알려진 수준이다. 오죽했으면 국내 네티즌 사이에 서 201711월 경복 포항 지진 때 도쿄방재가 인기를 끌었을까.

세월호 참사 이후도 영흥도 낚싯배 전복, 충북 제천 화재, 경남 밀양 세종병원 화재 등 후진국형 인재(人災)가 끊이지 않고 있다. 사업주가 안전 규정을 지키지 않은 탓이긴 하지만 피해자들이 재난 대비 메뉴얼만 숙지했더라도 희생을 줄일 수 있었다. 체계화된 매뉴얼과 반복 훈련 없이는 '모건스탠리의 기적'도 그저 남의 나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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