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구현/ 시인, 영광신문 편집위원

그 곳에도 꽃들이 피어나는 봄이 한창인지요?

보고싶습니다.

벌써 수년의 세월이 흘렀네요. 그저 스처지나가는 바람처럼 잊고 지낸 시간들이 오늘은 문득 먼 기억 속으로부터 오버랩되면서 빛바랜 사진처럼 파노라마로 되살아납니다.

몇일 전에는 님께서 그렇게도 아끼고 애정을 쏟아부었던 ''칠산문학'' 창간 30주년 기념비(영광문맥)를 예술의 전당 정원에 세웠습니다. 글씨는 님께서 좋아하셨던 지산 선생님께서 써주셨구요. 한마음 한뜻으로 준비하는 과정동안 회원들은 님을 추억했지요.

사람은 가고 없어도 글꽃의 향기만은 오롯이 남아있어 이야기는 더욱 따뜻했고 다감했습

니다.

그리고 님의 이름 석자를 비에 새겨넣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기억 나시는지요?

198812, 함박눈 펑펑 쏟아져 내리던 어느날 우리는 영광읍사무소 3층 회의실에서 창간호 출판기념식을 갖고 시화전까지 열었지요. 그리고 몇일 후 다시 님의 두번째 시집 ''삼동'' 출판기념식도 했지요. 회원들 모두가 한마음으로 긴 겨울밤이 다 새도록 문학을 이야기 하고 삶을 토론하던 그 날들이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참으로 아름다운 시간들이었습니다.

''꽂 같은 세월, 꽃 같은 사람'''이었어요.

세월은 부지런히 흘러서 오늘까지 달려 온 30!

우리는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칠산문학 하나만큼은 올곧게 지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창작을 한 것이 아니었고, 타인에게 우리의 사상이나 철학을 강요, 또는 가르치기 위해 열심히 글을 쓴 것은 더욱 아니었습니다. 단쳬의 이름으로 지역사회에서 모종의 힘을 발휘하고자 하는 그런 불순한 일도 일체 없었지요. 영광의 문화발전을 위한다는 화려하고 겉치레 같은 치장은 아예 하지 않았습니다. 누구 하나 알아주는 사람 없어도 삶에 대해, 현실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숙고하면서 회원들 모두가 스스로를 향한 끝없는 질문과 자답으로 내면을 단련시키고 익혀온 세월이었습니다.

그렇게 흘러온 30년이었습니다.

그 세월은 이미 우리들만의 것이 아니었으며 어느새 독자들의 가슴에 여울지고 있음

이 보여지는 오늘입니다.

얼마나 다행스런 일입니까?

대단한 이론이나 철학도 아니고 어떤 지도이념도 아닌, 그저 평범한 일상의 이야기가.글을 읽는 사람들의 가슴에 스며들어 단 몇초라도 공감하고 사유할 수 있는 매개가 될 수 있었다면 이 얼마나 행복한 일입니까?

그리고 결혼과 삶의 굴레에 얽매여 오랫동안 자리를 비워두었던 애정이가 돌아오고 덕순과 선미도 다시 돌아왔네요. 영덕과 종훈 덕철은

이직도 소식이 없구요.

문득 님께서 남기신 시 한편이 생각납니다.

 

사람과 사람이

얼마나 보고 싶어야

그립다 말하는고

 

사람과 사람이

얼마나 끔찍이 좋아야

사랑한다 말하는고

 

사람과 사람이

얼마나 틈 벌어져야

잊었다 말하는고

 

사람병 얻기도 쉬운 일 아니려니와

사람병 낫기도 힘들어

사람아! 사람아! 사람 잡는 사람아!

 

정설영 시 '사람아' 전문

 

그래요. 문학을 한다는 것. 창작을 한다는 것. 시를 쓴다는 것. 명예를 얻기 위한 것도 아니고, 권력이나 부를 탐하고자 하는 것도 아니고, 남 앞에 우쭐대고자 하는 것도 아니지요.

치료하기도 힘들지만 얻기도 힘든 사람병 걸려서 몸부림치며 신열을 앓는 것, 그런 것이지요.

그 곳 천상에서도 님께서는 아직까지 이 봄날을 사람병에 시달리고 계신지요?

사람아, 사람아, 사람잡는 사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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