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범 여민동락공동체 대표

담당 직원들의 인식 변화와 지사협 역할 강화 필요

20142월 서울의 한 단독주택 지하 1층에 살던 세 모녀가 생활고로 고생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비극적인 사건이 있었다. 사회안전망의 한계가 여실히 드러난 이른바 송파 세 모녀 사건이다. 당시 어찌나 충격이 컸던지 송파 세 모녀법이라 불리는 사회보장급여의 이용제공 및 수급권자 발굴에 관한 법률 제정 등 관련 법안 3개가 국회를 통과하고 다음해 7월부터 시행된다. 이후에도 행복e’, ‘찾아가는 동주민센터’, ‘읍면동 복지허브화등 복지 사각지대의 해소와 지역주민의 참여를 기반으로 한 다양한 복지정책과 제도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위와 같은 유형의 사건, 사고는 이어졌으며 올해도 증평모녀 사건, 최근 구미 원룸 20대 부자 고독사 등 비슷한 사건들이 이어지고 있다. 그동안 구축한 사회안전망이 과연 실효성은 있는지 비판하는 기사들이 넘쳐난다.

이렇듯 국민적 관심사가 큰 사안이 발생할 때마다 당국과 주요 전문가들이 여러 가지 해법을 내놓는데 주요 골자를 요약하면 이렇다. “복지사각지대의 해소와 더 촘촘한 사회적 안전망은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힘만으로는 어려우니 시민사회, 지역주민 등 모든 사회적주체가 정부와의 협력적 복지활동에 나설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대표적인 사례 중의 하나가 민관협력 복지 공론장인 지역사회보장협의체(이하 지사협)’구성과 활성화, 복지사업의 우선순위와 내용을 결정하는 4년 단위 중기 계획인 지역사회보장계획의 내실화이다.

다양한 지역주체들이 참여하는 지사협 구성과 그것에 의한 지역사회보장계획 수립이 최근에 나온 이야기는 아니다. 이미 2003년 노무현정부에서 사회복지사업법의 개정으로 지역사회복지계획 수립과 시행의 법적 근거가 마련된 이후, 2006, 2010, 2014년 세 차례에 걸쳐 지역사회복지계획을 수립하였다. 2015년엔 지역사회보장협의체로 명칭이 변경 되면서 영역도 훨씬 커졌다. 해당분야를 보면 보건의료, 사회복지뿐만 아니라 우리의 삶과 직결된 고용, 주거, 교육, 문화, 환경 등 거의 모든 영역이 망라되면서 관련 부서도 늘어났다. , 위에서 언급한 위기가정뿐만 아니라 평범한 우리들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한 계획도 수립하게 되었다. 주요 활동도 지역사회보장계획의 수립, 건의부터 지역복지 수요 분석과 전망, 사회복지전달체계에 관한 사항, 서비스 중복의 감소와 합리적 조정까지 다양하다. 이렇듯 중요성은 말할 것도 없고 이미 법적 체계와 매뉴얼까지 나와 있기에 어떻게 운영하느냐에 따라 지역주민의 복지 체감도는 달라질 수밖에 없다.

1기 지역사회복지계획 유명무실 협의체도 형식적

사실 2006년에 수립된 1기 지역사회복지계획(2007~2010)은 계획 수립 그 자체를 목적으로 했기 때문에 사실상 유명무실 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계획의 수립과 건의를 담당할 지사협 또한 형식적으로 구성 되었기에 의미 있는 시도를 한다는 것이 불가능하였다. 2, 3기도 외부 용역을 통한 형식적 계획 수립부터 관주도성과 지사협의 유명무실, 지역주민의 소외와 담당 공무원의 인식 부족 등으로 일부 지역을 제외하곤 별다른 진전을 보지 못한 게 지역사회보장계획 수립의 당면한 현실이었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가 국민들의 힘으로 물러가고 촛불정신을 국정철학에 반영하겠다는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내심 기대가 크다. 모두가 누리는 포용적 복지국가 추구, 풀뿌리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자치분권, 그리고 주민들의 실질적 참여를 중요시 하겠다는 이번 정부에서는 완벽하진 않겠지만 지사협의 정상화와 주민들의 복지욕구가 잘 반영되는 제4기 지역사회보장계획수립이 가능하겠다는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보건복지부에서 이번에도 지역사회보장계획 수립 매뉴얼을 상세하게 제출하고 있다. 그간 지역사회보장계획 수립의 문제점으로 거론된 사회보장사업 기획의 관주도성’,‘민관의 실질적 거버넌스 구축 난제’, ‘지역복지공동체구축을 위한 주민 참여 제한적이었음을 지적하고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계획수립부터 평가까지 민주성(주민 참여, 관과 민의 협력)견지’, ‘지역 관련 주체들이 지역여건 진단을 철저하게 공유하는 과정으로 운영하며 실질적인 참여 확대를 위한 계획 수립 추진체계 및 절차별, 모든 참여주체의 역할을 제시하고 참여를 독려할 것을 강조했다.

, 문재인 정부의 지역사회보장계획은 국가정책의 보편적 방향을 지역 복지정책에 설계하고 그 과정에서 공공뿐만 아니라 민간, 지역주민이 실질적으로 참여하여 지역에서 필요로 하는 복지계획을 수립하라는 이야기다.

특히, 지방선거에 맞춰 선거에 참여하는 후보들의 공약사항으로 채택토록 초청간담회나 토론회를 개최하여 지역복지 의제가 정치에 반영되고 그 과정에서 영광군 지사협뿐만 아니라 11개 읍면에서 지역주민들로 구성된 지사협이 풀뿌리 민·관 논의의 장으로 활성화 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과거 관과 전문가 중심의 시혜적복지에서 지역주민의 복지력 강화와 참여를 통한 복지사회로 가는 첫 걸음인 것이다.

영광군 제4기 지역사회보장계획 수립 용역 착수

그러나 그 희망이 시작부터 걱정으로 바뀌고 있다. 최근 영광군 제4기 지역사회보장계획 수립을 위한 착수보고회에 참석하면서다. 당일 1시간 정도의 착수보고회가 끝나고 느낀 건 이 자리를 준비한 담당 직원들이 문재인 정부의 사회보장계획수립에 대해 너무 무관심한건 아닌지 심지어 보건복지부에서 제출한 4기 지역사회보장계획 수립 안내 매뉴얼을 봤을까 하는 의구심마저 들었다.

나는 착수보고회 참석 전까지 지역사회보장계획 수립에 대한 그 어떤 정보도 얻지 못한 것이 실무협의체 노인분과 위원인 나의 무관심과 나태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당일 참석한 지사협의 위원장조차 착수보고회까지의 과정을 알지 못했고 영광군 제4기 지역사회보장계획의 수립을 맡은 용역업체가 복지와는 무관하고 매우 생소한 컨설팅업체로 선정 되었다는 것도 선정 후 알았다고 한다. 결국 이 날 착수보고회는 소통의 장보다는 통보의 시간이었고 그로 인한 몇 차례의 문제 제기와 우려사항 전달, 해당 업체의 사업 수행에 대한 의지를 확인하는 선에서 마무리 되었다.

참으로 우려스러운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지역사회보장계획 수립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해야 할 지사협의 대표위원들마저 시작이나 다름없는 착수보고회 준비과정에서 소외되고 행정의 요식행위에 들러리로 선 듯한 느낌이다. 물론 의도적인 것은 아니겠지만 결국 1기부터 3기까지 수차례 지적되었던 문제들이 또 다시 반복되고 있는 이 현실을 어떻게 풀어야 할까 난감하다. 결국 지역정치 논리로 인한 눈치와 소심 행정, 행정직 공무원분들의 관심부족, 이 업무에 익숙하지 않은 초보 공무원의 실수라며 뒷담화나 하며 4년을 다시 기다리기엔 이 제도의 중요성과 현재의 우호적인 상황이 너무나 아깝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이 키를 쥐고 있는 건 담당 공무원의 인식과 태도 변화라 생각한다. 물론 지자체장의 관심과 의지도 중요하지만 요즘처럼 지역주민의 다양한 이해와 욕구가 폭발하는 시기에 복지, 보건, 교육, 고용, 문화, 주거, 환경 등 주민의 삶과 직결되는 관계 법령과 그에 따른 정책과 제도를 세세하게 알고 있기는 어렵다. 결국 해당 분야의 공무원들이 얼마나 자기분야에 대한 전문성과 책임감, 열정을 가지고 소신 있게 공무를 수행하느냐가 관건이 아닌가 한다.

실현가능하고 지역에 실제 필요한 계획 수립해야

영광군 지사협 위원들의 면면을 보면 영광군 지역사회에서 오래도록 복지활동을 해온 현장 전문가들이다. 이들보다 지역복지의 현안과 현실을 제대로 볼 수 있는 분들은 없다. 어려운 일이 아니다. 법으로 정한, 보건복지부 매뉴얼에 나와 있는 그대로 그들이 지역사회보장계획에 주도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모든 정보를 공유하고 수립과정부터 리더들의 이야기에 적극적으로 귀를 기울이고 그들을 위한 공론장이 활성화 할 수 있도록 거들고 주선하는 것이 진정한 지름길이자 정도이다. 11개 읍면에 구성된 지사협도 마찬가지다. 면단위에 역량이 부족하면 학습의 장을 열고 역량 있는 사람을 발굴해야 한다. 기관사회단체장 중 입 맞는 사람 몇 명 넣을 일이 아니다. 당연 이것이 해당 공무원들의 역할이자 협력의 기본이요, 문재인 정부가 지향하는 자치분권의 방향성이기도 하다. 단순히 용역을 통한 계획 수립과 의견수렴 몇 번으론 어림도 없는 이야기다.

설마 국가 지원금으로 운영된다고 복지기관장들이 아직도 행정의 아래에 있다거나 자원동원의 대상 정도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면 지역사회보장계획 수립의 주요 파트너로서 그들을 존중하고 예우를 갖춰야 한다.

어찌되었든 그나마 위안인건 당일 영광군 지역사회보장계획 수립을 위한 TF팀을 구성하고 지역의 분야별 복지리더들이 대거 참여했다. 또한, 민관 협력 활성화를 위한 교육도 일정도 연이어 잡혔다. 지사협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려면 협의체 위원들의 역량강화 또한 필수이기 때문이다. ! 이제부터 다시 시작이다. 다시는 현장 전문가와 주민들을 수동적 객체로, 사실상 통보의 대상으로 전락시키지 말아야 한다. 기획단계부터 수립과정, 운영, 평가까지 현장 전문가인 복지리더들과 지역주민들의 실질적인 참여를 보장하고 조금은 거칠고 느리더라도 실현가능한 계획, 지역에 실제로 필요한 계획이 수립되도록 민과 행정이 지혜를 모아보자. 그러다 필요할 땐 싸우고 협력할 땐 적극적으로 동반 관계를 발휘하는 게 민관협력 기구의 운영원리 아니겠는가! 세상의 변화란 게 더딘 것은 알지만 이렇게 좋은 환경에서 해내지 못한다면 언제쯤 가능할까 싶다. 이제 본격적인 시작이라 여기고 최소한 이번기회에 토대라도 구축했으면 한다.

요즘 온통 머릿속에 인구감소, 지역소멸이 머릿속에 맴돌고 있다. 작은 면단위에 거주하는 보통 사람의 입장에서 매일같이 느끼는 현실이고 불안한 미래다. 이런 문제는 어느 한 분야의 육성이나 활성화로 해결되지 않는다. 무수히 많은 책들에서 제시되는 추상적 해법이나 일부 사례도 결국 그곳의 지역 주체, 자원 등 여러 요소가 맞물려 성공한 경우이다. 영광도 마찬가지다. 영광의 조건과 역량을 기본으로 통합적 관점에서 조망하고 대책을 만들어야 하며 그럴수록 다양한 집단의 지혜가 필요한 법이다. 지역주민의 삶과 직결되는 사회보장계획 수립 내실화와 구현은 결국 지역소멸이라는 불안한 영광의 미래를 희망으로 만들 주요 주춧돌 중의 하나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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