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당골 불갑 유봉마을에 사는 장닭 장군이라고 생각이 없어서’

<지난호 편에 이어> 그렇다면 사는 날까지 최선을 다하여 살고 그 다음 세대가 를 이어가고 어제의 역사와 문화를 오늘에 짚어보고 조금 미진한 것은 다음 세대가 이어 받아 갈고 닦아주기를 기원하는 것은 생명체를 갖고 있는 이상 每樣 같다는 판단인 듯했습니다.

이 세상에는 생물체를 연구하는 학문은 끝없이 많습니다. 그중에 철학도가 있는데 詭辯 학자들의 모임인 쇼피니스트 철학자들 입장에서 우리 인간의 죽음을 표현하기를 동그런 망태(닭장)속에 갇혀있는 닭의 운명에 비유하기도 합니다.

즉 망태 안 닭장속의 닭들의 운명처럼 언젠가 하느님이 부르면 인간은 죽음을 피할 방법이 없는 것처럼 닭장속의 닭들도 인간이 닭고기가 먹고 싶어 걔네들 중에 한 마리를 선택해 잡으면 피할 수 없는 죽음으로 이어지는 것과 같다!!“ 라고 표현하기도 하지요.

삵 장군은 이미 여기에 나름 깊은 생각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앞마을을 바라보면 근심걱정거리가 일순간에 사라지게 되는 것이지요. 온갖 종류의 닭들과 알맞은 크기의 닭들로 먹을 것이 가득한 앞마을은 먹을거리가 가득하고 항상 골라먹는 재미를 다 갖춘 유봉마을로 삵 장군은 일순간에 안 좋은 생각들은 새까맣게 다 잊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물론 뒤를 보면 白虎장군이 으르렁대면서 동족들을 내놓으라고 억압을 가하고 으르렁대지만 까짓것 인간들도 제 살고 마을 사람 풍요하게 살게 해달라고 서해바다 인당수에 심청이를 고작 공양미 삼백 석에 재물로 던지는 판인데 삵 장군이 자기 동족들 중에 제비뽑기를 하거나 노약자순으로 골라 白虎장군과 약정에 의해 재물로 던져주면 이런 태평성대가 어디에서 감히 구가할까?“ 하는 게 삵 장군의 생각을 온통지배하고 있었습니다.

이렇듯 모든 동물은 숙명적인 먹이사슬로 끊을 수 없는 천적관계를 유지하는 건 태초에 조물주가 신비지경에 가깝게 만들어 놓은 圖式관계로 자연 생태계가 파괴되지 않는 선에서 욕심을 버리고 각자가 처지에 맞게 낮은 자세로 살기를 바랬던 것입니다.

옥당골 불갑마을의 앞쪽 유봉마을에 사는 장닭 장군이라고 생각이 없어서 이곳에 정착한건 아닙니다.

장닭 장군은 사실 삵 장군을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태평성대를 구가하며 이곳 마을에서 동족들과 아주 잘 살았습니다. 다만 질병에 강인한 동족 중의 개량하고자하는 동족들의 종류가 따로 없고 항상 늘어지게 살면서도 일부 수탉이 새벽같이 일어나 기상을 위한 노래를 불러도 꾀꼬리 같은 목소리라고 평하는 것이 아니라 왜 단잠을 깨우냐고 온통 지적질을 받고 온갖 무리들로부터 항의만 당하고 살아왔기에 동족들이 엄청 스트레스를 받고 겨우겨우 연명하듯 살아가는 모습이 너무도 안타까웠던 것입니다.

그런데 난데없는 천적인 삵 장군을 만나 호시탐탐 노리는 삵 장군을 피하기 위해 동족의 닭들이 부지런해지고 각각 제 역할을 실천적으로 행동으로 옮기며 아침부터 늦은 저녁까지 하루도 게을리 하는 적이 없었습니다. 자연히 육질이 좋은 닭들로 재탄생되고 어디를 가든 새벽녘에 힘찬 수탉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되자 희망찬 하루의 시작을 장닭장군의 영도력 덕분이라는 주변의 쏟아지는 칭찬에 항상 鼓舞的이었습니다.

다만 정기적으로 삵 장군에게 동족의 닭들을 일정 제물로 정해 상납하지 않으면 안 되는 숙명적인 관계가 그로서는 풀래야 풀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다만 끊임없이 동족들과 마라톤회의를 갖고 머리를 맞대어 천적에 대응논리를 찾기에 오늘도 부산할 뿐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장닭 장군은 이와 같이 매일 거침없이 수천 만 마리의 암탉을 거느리고 남부럽지 않게 살고 있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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