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집불통 철학자(2)-장자

영광백수 출신/ 광주교육대 교수/ 철학박사

많고 많은 말 가운데 가장 하기 어려운 말이 , 아니오라고 한다. 그 중에서도 또 하나를 고르라면 아니오가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련 없이 (NO)’를 외친 철학자들이 있다.

중국 전국시대의 철학자 장자(莊子)는 그의 아내가 죽은 뒤, 벼슬살이를 청산하고 여러 곳을 떠돌아다녔다. 그는 세상의 권세나 부귀를 우습게 여겼다. 그러던 어느 날, 송나라의 학자 조상(趙湘)이라는 사람이 찾아왔다. 그는 진나라로 사신(使臣) 길을 떠날 때 불과 몇 량의 수레로 출발했지만, 돌아올 때는 선물이 가득 찬 100여 량의 수레를 이끌고 돌아왔다며 자랑을 했다. 그리고는 장자에게 하는 말이 나는 누추한 집에서 사는 재주는 없어도, 한마디 말로 군주를 기쁘게 하여 100량의 수레를 끌고 오는 재주는 있다오.” 하였다. 이에 장자는 진나라 왕이 언젠가 병이 들어 의사에게 고름이 가득 찬 종기를 손으로 터뜨려 주면 한 량의 수레를 선물로 주고, 입으로 빨면 다섯 량의 수레를 준다고 하였소.”라고 쏘아붙였다. 이것은 후안무치한 행위로 명예와 부귀를 바꾸어온 데 대한 통렬한 비난이었다.

언젠가 초나라의 위왕(威王)이 장자의 명성을 듣고, 그를 재상(宰相-장관급 벼슬)으로 등용하고자 하였다. 그래서 천금(千金)의 선물과 함께 대부(大夫, 고위공직자) 두 사람을 보내 그를 모셔오도록 했다. 대부들은 석 달을 헤맨 끝에 장자를 찾았다. 그러던 어느 날, 마침내 물가에서 낚시질을 하고 있는 그를 발견하였다. 두 사람이 다가가자 장자는 낚싯대를 잡은 채 돌아보지도 않고, “듣자 하니 초나라 조정에는 죽은 지 3천 년이나 지난, 신령스런 거북이 있다지요? 왕은 그것을 비단으로 잘 싸서 종묘(宗廟)에 모셔두고, 길흉(吉凶)을 점친다고 합니다. 그러나 만일에 그 거북이 정말로 신령스럽다면, 죽어 그 껍질로서 사람의 존경을 받겠소, 아니면 살아서 진흙 속에서 꼬리치며 살겠소?” 하고 물었다. 이에 대부 가운데 한 사람이 대답하기를 당연히 흙탕물 속에서 자유로이 꼬리를 치며 사는 편이 좋겠지요.” 하였다. 이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장자는 그럼 어서 돌아가시오! 나도 살아서 흙탕물에 꼬리를 젓고 싶은 사람이오.”라고 소리치는 것이었다.

이와 비슷하지만, 조금 다른 이야기도 전해온다. 위에서 말한 두 사람이 장자를 찾아와 왕의 선물을 전하며 이렇게 말했다. “우리 주군께서 선생님을 재상으로 모시고자 합니다. 저희와 함께 가시지요.” 이 말을 들은 장자가 물었다. “자네들, 교제(郊祭:교외에서 지내는 제사)에서 희생되는 소를 본 적이 있는가?” “본 적이 있습니다.” “그 소를 어떻게 기르던가?” “몇 년 동안 잘 먹이고, 수놓은 옷을 입혀서 호화롭게 사육하지요.” “그래. 아무리 그렇지만, 끝내는 종묘로 끌려 들어가 죽게 되지.” 이에 두 사람은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그러자 장자는 말하기를 그때를 당해 죽기 싫다며 갑자기 돼지새끼가 되겠노라 아우성을 친다 해서, 소가 돼지로 변하던가? 어서 돌아가게. 나를 더 욕되게 하지 말고.” “하지만....” 대부 가운데 한 사람이 말을 덧붙이려 하자, 장자가 말을 끊었다. “차라리 나는 더러운 시궁창에서 유유하게 놀고 싶다네. 왕에게 얽매인 존재는 되기 싫으이. 죽을 때까지 벼슬 같은 것은 하지 않고, 마음대로 즐기며 살고 싶단 말일세.”

둘 가운데 어떤 이야기가 사실이건 간에, 장자의 뜻은 이러하지 않았을까 싶다. ‘내가 까닥 잘못하여 정변(政變)에 휩쓸린 탓으로 몸이 죽기라도 한다면, 그 후에 찾아오는 물질의 복, 인간의 명예가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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