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희 /여민동락 살림꾼

최저임금 갈등, 고용쇼크, 국민연금 논란까지 연달아 터지는 이슈로 대한민국이 소용돌이 치고 있다. 논란은 표류하듯 사회적 대립을 격화시키고 정부의 경제정책은 날선 여론의 도마 위에 올랐다. 각각의 사안별로 갈등은 증폭되는데 내용이 복잡하고 쉬 정리되지 않는다.

지난 816일 세계은행의 발표에 따르면 한국의 국내총생산(GDP)15308억달러로 세계 12위다. 경제성장률이 둔화되고 있다고 하나 한국의 경제규모는 여전히 11~12위로 세계 최상위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게다가 1인당 국민총소득(GNI)28380달러로 순위가 무려 14계단 상승했다(세계 31). 국민소득은 곧 3만 달러를 돌파할 것이고 이 추세라면 2030년경 세계 5대 경제강국이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그런데도 성장에 대한 국민적 체감률은 바닥이다. 양극화는 심해지고 빈곤은 확산된다. 까딱 잘못하면 최하층으로 떨어질 것이라는 불안감이 사회를 잠식한다. 삶은 팍팍하고 나라의 행복지수는 내리막길이다. 그래서 이런 의문이 드는 것이다. 나라의 경제는 매년 성장하는데 국민의 삶은 왜 나빠지기만 할까. 성장의 수혜를 입는 계층은 누구이며, 성장에도 불구하고 빈곤의 나락으로 추락하는 계층은 누구인가.

4차 국민연금 재정계산위원회의 정책자문안이 공개되자 곳곳에서 비난이 쏟아져 나왔다. 1988년에 도입된 국민연금은 초기에는 보험료율 3%와 소득대체율 70%로 시작했으나, 현재는 보험료율 9%, 소득대체율 40%(40년 가입기준)으로 점차 보험료율은 높이고 소득대체율은 낮추는 방향으로 변화해왔다. 이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차 가입자가 수급자로 전환되기 때문에 빚어지는 당연한 결과다. 수급자의 수가 계속 늘어나기 때문에 재정규모에 따른 급여율 조정, 급여율에 상응하는 보험료율 조정 논의는 불가피하다. 보험료율을 올리면 미래 세대의 부담이 커지고 급여율을 낮추면 노후 빈곤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기 때문에 국민연금은 늘 논란 거리였고 사회적 갈등의 단골메뉴가 되어왔다.

그렇다하더라도 국민연금의 수익률은 시장의 사보험보다 훨씬 안정적이고 높은 수준이다. 국가가 지급하는 공적연금이기 때문에 망할 염려가 없으니 안정적이고, 9% 납입해 40%를 받는 구조이니 수익률도 높다. 국민연금을 '용돈연금'이라고 폄훼하거나 심지어 없애자고 하는 것은 이러한 국민연금제도의 본질을 흐리는 마타도어에 불과하다. 따라서 사보험에 돈을 넣느니 국민연금에 되도록 빨리 가입하는 것이 노후 대비에 훨씬 유리하다. 그런데도 많은 국민들이 국민연금을 불신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국민연금의 광범위한 사각지대가 발생하는 한국 복지의 기형적 구조 때문이다. 안정된 직장에서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는 사람은 오래 가입하는데 당장 보험료 내기가 진짜 어려운 사람들은 사각지대에 머무는 '역설적인'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불안정한 노동자, 국민연금의 접근성이 취약한 계층을 상대로 연금정책을 펴고 미래세대와 재정 책임을 공유하는 방식으로 해법을 찾아나가야 한다.

문제는 또 있다. 국민연금의 역사가 짧고 광범위한 사각지대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국민연금 하나만으로는 노후를 대비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기초연금, 퇴직연금 등 전체 공적연금으로 시야를 넓혀 노후 보장 대책을 다층적, 정합적으로 재구성해야 한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는다. 국민연금과 같은 사회보험제도는 안정적인 고용관계를 전제로 했을 때 원활하게 작동된다. 임금이 높고 고용이 안정된 정규직 노동자가 그렇지 못한 저임금 비정규 노동자에 비해 더 많은 복지혜택을 갖는 구조다. 노동시장에서 배제되는 사람은 복지에서도 배제되기 쉽다. 고용의 불안정성은 소득의 불안정성을 낳고 소득의 불안정성은 사회적 보호의 불안정성으로 연쇄작용을 일으킨다. 때문에 고용과 소득보장의 사각지대가 복지의 사각지대와 완벽하게 일치하는 양상을 보이는 것이 한국 복지의 현 주소다.

자본주의 경제는 복지국가의 재정을 뒷받침하고, 복지국가의 재분배 시스템은 시장의 실패를 보완하고 국민경제가 더 효율적으로 작동하는데 기여한다. 최저임금, 고용, 국민연금 문제는 경제와 복지의 불가분의 연관성에 기초해 통합적인 사회경제정책을 설계하고 집행하지 못한 것과 관련이 있다. 자본주의 전성기때 설계된 복지국가 시스템은 민간에서 공공으로, 자본에서 노동으로, 부자에서 빈자로 재분배하는 기능을 수행했다. 지금 이 시스템이 저성장, 심각한 저출산 고령화와 맞물려 큰 위기에 봉착하고 있다. 가난한 사람들이 복지에서 배제되는 복지의 불균등한 발전을 고쳐나가야 한다. 우후죽순으로 양만 늘리지 말고 복지의 질을 높이기 위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어쩌면 지금의 논란은 부품 하나 바꾸는 차원을 넘어서 설계도 전체를 다시 그려야 하는 문제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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