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2.10 월 11:20
> 뉴스 > 여론마당 > 금요소고
     
진(眞)과 가(假)
곽일순/ 사진가 수필가
2018년 10월 01일 (월) 11:14:29 영광신문 press@ygnews.co.kr
   

요즘 미디어의 가짜 뉴스 때문에 몸살을 앓고 있는 것은 죄 없는 국민이다. 특히 일부 종편의 확인되지 않은 방송과 기사는 많은 혼란을 준다. 이젠 언론의 발표도 스스로 판단하고 진과 가를 구분해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그만큼 대한민국은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는 무책임의 국가가 되었다. 정치인과 공무원은 자신의 재임 기간에 저지른 과오와 손해에 조금도 책임을 지지 않고 언론인은 가짜 뉴스를 내 보내고도 사과를 하지 않는 것이 보통이다. 그래서 현대는 진짜와 가짜가 공생하는, 그것도 자그마치 대등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기현상을 보이고 있다.
진짜와 가짜가 가장 판을 치는 분야는 문화예술이다. 얼마 전 유명 가수가 자신이 그리지 않은 그림으로 활동을 하고 수익을 챙기다가 기소가 되었다. 하지만 결국 무죄를 선고 받았다. 기획은 당사자가 했기 때문이라는 것이 무죄의 이유다. 이른바 예술 기획이다. 과연 일반인이 그런 짓을 저질렀다면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 명백한 사기다. 회화는 고도의 기능을 바탕으로 하지만 무시되고 여기에 무엇을 그리라는 ‘지시’에 저작권이 있다는 판결이다. 이제 화가가 되는 방법은 아주 쉬워졌다. 초등학교 때부터 신동 소리를 들으며 중고교까지 손이 닳도록 입시 준비를 하지 않아도 상관이 없다. 어디에 무엇을 그릴지 지시만 해주면 된다. 서예도 마찬가지다. 무명 서예가에게 문장을 정해주고 육체 중 하나를 골라 주문은 해서로 수결은 행초로 쓰라는 등의 구체적 지시만 해주면 그 작품은 내 낙관을 찍어서 판매를 해도 된다. 내가 기획을 했기 때문이다. 사례는 많다. 음식으로 이름을 날리는 요리사 혹은 유명 배우 등도 회화의 기초도 모르지만 유명 화가가 되었다. 바로 이름 팔아먹기다. 그래서 이들이 그리는 장르는 추상화가 될 수밖에 없다. 알 수 없는 형상을 어지럽게 그려 놓고 자신의 마음을 나타내 보았다는데 무슨 말이 필요할까. ‘뭔가 느낌이 있다.’는 평 아닌 평으로 칭찬을 하는 무리들이 더 얄밉다. 대중을 속이는 가짜 화가다. 초등 때부터 대학교까지 그림 잘 그린다는 말을 들으며 하루도 거르지 않고 붓을 잡고 있는 전공자들을 무능의 늪으로 빠뜨리는 사람들이다.
서예도 마찬가지다. 중국은 서법으로 한국은 서예로 일본은 서도라고 칭하지만 문자를 주로 삼는 예술이다. 그런데 추구하는 방향은 많이 다르다. 특히 현대 서예(Modern Calligraphy)라는 장르는 일부 서예가들이 스스로 창조한 사생아요 이단이다. 굳이 서법을 공부하거나 고전을 익힐 필요가 없다. 정통 서예를 하는 사람의 입장에선 그림에 더 가깝다. 본인 말고는 읽을 수가 없으니 뜻을 알 수가 없고 파자(破字)는 물론 마음대로 구성한 포획은 이미 글씨가 아니다. 서예는 읽는 문자를 위주로 조성된 미의 예술이다. 그래서 판독을 위한 법이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들도 가짜 서예가로 본다. 정통 서예를 하는 사람도 문제는 있다. 형만 익히고 연줄을 따라 입상이라도 몇 번 하면 스스로 대단한 서예가가 된다. 서예는 우리 문화권의 위대한 예술이다. 결코 쉬운 것이 아니다. 단언컨대 갑골문에서 시작하는 서법을 익히지 않은 서예는 사상누각이다. 정동영 서법연구가는 현재 한국에서 활동하는 국전 심사위원도 서법을 제대로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말한다. 그만큼 형(形)에 치우지고 스승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하는 한국 서예다. 그래서 계보라는 말이 나오고 계보가 없으면 아무리 글씨를 잘 써도 인정을 받지 못한다. 심지어 얕보고 폄훼까지 한다. 하지만 실상은 현재 한국을 움직이는 서예가들의 작품도 서법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하물며 지방에서 전시회 때나 몇 작품 쓰거나 중봉(中鋒)인지 측봉(側鋒:扁鋒)인지 구분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더 말해서 무엇 하겠는가. 이른바 본인들만 대단한 서예가다. 사진도 다르지는 않다. 일 년이면 500개가 넘는 공모전에 심사위원들의 입맛에 맞춰 무작위 출품을 하고 입상이라도 몇 회 하면 바로 대단한 사진가가 되어 버린다. 스스로 발전을 포기하는 어리석은 행위지만 본인이 느끼지 못하니 방법이 없다. 모든 분야에는 항상 가짜와 진짜가 있다. 구분은 의외로 쉽다. 아는 것이 많다고 생각하면 가짜요 모르는 것이 많다고 생각하면 진짜다. 공부의 정의는 ‘모르는 것이 많다는 사실을 깨달아 가는 과정’이다. 그래서 모르는 것이 많은 사람들은 항시 겸손하고 매사에 고개를 숙인다.

영광신문의 다른기사 보기  
ⓒ 영광신문(http://www.ygnews.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전체기사의견(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전체기사의견(0)
영광신문 | 기사제보 | 제휴안내 | 광고문의 | 불편신고 | 개인정보취급방침 | 청소년보호정책 | 이메일무단수집거부 | 편집규약
전라남도 영광군 영광읍 물무로2길 37번지 | ☎061-353-0880-0881 | fax 061-353-0883 | 청소년보호책임자 : 채종진
등록번호(전남 아00220) | 등록연월일: 1997-02-27(창간) | 발행인 편집인 대표이사: 박용구
Copyright 2009 영광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press@yg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