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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훗날 역사(歷史)는 그를 간신(奸臣)이라 불렀다
고봉주/ 영광군건강가정다문화가족지원센터장, 영광신문 편집위원
2018년 10월 01일 (월) 11:15:37 영광신문 press@ygnews.co.kr
   

중국은 오랜 역사만큼이나 역사서에 이름을 올린 충신과 간신들이 많은 나라다.
대표적인 간신 중에 중국 최초의 통일국가인 진나라 말엽 조고(趙高)라는 환관이 있었다.
부지런하고 법률에 정통했던 그는 온갖 아첨과 모사로 진시황의 환심을 사 행부새령사(行符璽令事) 등의 벼슬에 오르며 호해황자의 스승으로도 발탁이 된다.
진시황이 재위 37년째 되던 해 그의 마지막 여정이 된 전국 순행 길에 나서자 그도 호해황자의 수행을 핑계로 따라나서게 되는데, 시황이 평원진을 지나던 도중에 병으로 드러누워 위중하게 되자 조고는 그 때부터 천부적인 모사기질을 발휘한다.
진시황은 병세가 날로 악화되자 태자를 세우는 일이 급선무라 여겨 만리장성 공사현장에 나가있던 첫째황자 부소에게 황제자리를 상속한다는 칙령를 써 보내도록 조고에게 명한다.
그러나 사이가 좋지 않은 부소의 황위계승에 불안을 느꼈던 조고는 시황제가 죽자 승상 이사와 모의하여 부소의 자결을 명하고 만만해 보이는 어린 황자 호해를 황태자로 세운다는 위조칙령을 공표하면서 진나라는 서서히 멸망의 길로 접어들기 시작했다.
승상이 된 환관
조고는 시황제의 장례가 끝난 뒤 호해를 2세황제로 옹립하고 그를 사치와 향락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도록 한 뒤 황제의 대리인으로 군림하며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른다.
자신의 뜻에 반하거나 조금이라도 거부감을 갖고 있는 신하는 가차 없이 제거를 했는데 간언(諫言)을 하던 대신(大臣) 몽의를 비롯하여 숱한 충신들이 조고의 손에 죽임을 당했다.
심지어 호해를 끄드겨 시황제의 공자 12명과 10명의 공주까지도 황제의 권력에 위해가 된다는 이유로 함양의 저작거리에서 사지를 찢어 죽였다.
아방궁을 짓고 황제도로를 건설하느라 백성들은 고혈을 짜내는 세금은 물론 강제부역에도 끌려가야 했는데 이에 따른 징벌도 난무하여 시장바닥에는 참형을 당한 시체가 산처럼 쌓여갔다고 사기는 기록하고 있다.
같이 모반을 꾸몄던 승상 이사 역시 끝내 조고의 모함으로 반역죄를 뒤집어쓴 체 함양시가지에서 머리와 허리가 잘리는 잔인한 요참형으로 죽고 삼족이 멸족을 당했으며 2세 황제 호해도 조고의 강요와 핍박을 견디지 못해 자살을 했다.
호해가 죽은 후 황제가 되려는 역심을 품었던 조고는 신하들의 반대에 부딪히자 자신이 자살하게 했던 부소의 아들 자영(子嬰)을 3세 황제로 옹립하지만 자영의 속임수에 넘어가 처참하게 죽임을 당함으로써 영원할 것 같았던 그의 권력도 땅에 떨어지고 말았다.
진승과 오광의 난을 필두로 전국이 반란에 휘말리는 3개월여 동안 황제자리를 지켰던 자영은 초왕 항우(項羽)에 의해 피살이 되었으며 최초의 통일제국 진나라는 그렇게 멸망을 했다.
한 사람의 비뚤어진 권력욕이 종국에는 대제국까지도 망하게 할 수 있다는 뼈아픈 역사적 교훈이 아닐 수 없다.
지록위마(指鹿爲馬)
정사를 돌보지 않고 사치와 향락에 빠져있던 호해황제 앞에 어느 날 조고가 황제를 위해 말(馬) 한 마리를 준비했다며 사슴 한 마리를 가져왔다.
자신의 말(言)이 곧 황제의 말(言)이라고 생각한 조고는 자신의 힘이 조정에서 어느 정도인지 가늠해 보고 싶었던 것이다.
조고는 “이것은 분명히 사슴인데, 어찌하여 말이라고 하는가?”라며 크게 웃는 호해를 향해 정색을 하며 주위의 관원들에게 이것이 사슴인지 말(馬)인지를 묻는다.
많은 신하들이 그의 위세를 두려워 해 말(馬)이 맞는다고 아첨을 했지만, 조고의 의도를 알아채지 못하고 사슴이라고 진실을 말한 몇몇 관원은 그날 밤 조고에 의해 모두 죽임을 당했다.
만화가 고우영은 그의 만화책 초한지에서 조고의 모양새를 키가 작고 뚱뚱하며 쥐가 기어다닐 듯 살살거리는 얼굴로 그려 놓았다.
간신 짓도 모자라 황제까지 넘보았던 그의 추악한 행위와 얼추 비슷해 보이는 구석도 있다지만 그의 악행이 그런 외모에서 비롯되었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어찌되었든 그의 거만함은 삼족이 멸족을 당하는 비참한 죽음으로 돌려졌으며 그의 간악한 처신은 지금까지도 간신배의 표상으로 남아있는 것만은 확실하다고 하겠다.
비단 국가적인 대사(大事)에만 국한된 것은 아닐 것이다.
작은 일을 침소봉대하며 온갖 아첨과 아부로 지록위마의 예처럼 주군을 현혹하고 눈과 귀를 가려 큰일을 그르치게 하는 간신배들은 어느 시대나 어느 사회를 막론하고 있게 마련이다.
모든 기관의 수장들이 조고 같은 아첨꾼을 솎아내는 혜안이 없을 때 단명을 했던 진나라처럼 스스로 무너질 수 있다는 역사적 교훈을 깊이 새겨들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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