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세의 달인(1)-이사

지금까지 우리는 자기 한 몸의 출세나 부, 권력을 포기하면서까지 거절의 결단을 내린 위대한 정신들을 살펴보았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부와 명예, 권력을 위해 소신을 꺾거나 심지어 그것들을 향해 돌진해간 철학자들이 있다. 먼저 중국 진나라의 법가사상가인 이사(李斯, ?~기원전 208) 이야기이다.

원래 초나라 출신인 이사는 순자(荀子)에게서 배우고, 진나라로 가서 여불휘(시황제의 친아버지)의 식객(食客-밥을 얻어먹는 문객)이 되었다. 그 후 시황제에 의해 발탁되어 승상(丞相-천자를 보필하던 최고관직)이라고 하는 막강한 벼슬에 올라 제도개혁과 정비에 앞장서게 되었다. 그는 시황제로 하여금 중앙집권체제를 구축하고 화폐단위와 도량형(度量衡)을 통일하게 했다. 그러나 사치와 방탕의 상징인 아방궁(阿房宮)을 짓도록 함으로써 백성들에게 엄청난 고통을 안겨주었는데, 이 아방궁은 동서로 약 700m, 남북 약 120m에 이르는 2층 건물로 1만 명을 수용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를 건설하는 데 죄수 70만 명이 동원되었지만 시황제의 살아생전에는 완성되지 않아, 2세 황제(호해)에 의해 나머지 공사가 진행되었다. 아방궁은 기원전 207, 항우가 진나라를 멸망시킬 때 불에 타고 말았는데, 불길이 3개월 동안 꺼지지 않았다고 하니 그 규모를 가히 짐작할 수 있겠다.

이사는 또한 진시황에게 불로장생(不老長生) 약초를 구하도록 건의한다. 이에 그 약을 구하겠다고 나선 이들이 진시황의 방사(方士-술법을 하는 자. 도사와 동일시) 노생과 후생이라는 자들이었다. 그러나 이들은 많은 돈을 받아먹은 뒤, 도리어 시황제의 부덕(不德)을 욕하며 도망을 치고 말았다. 이에 시황제는 유학 책들을 불태우고, 함양(진나라 수도)에 있는 유생들을 체포하여 무려 460여 명을 구덩이에 매장하도록 하였던 바, 이것이 역사상 그 악명 높은 분서갱유(焚書坑儒) 사건이다. 여기에서 재미있는 일화가 하나 있는데, 앞서 말한 노생은 불사약을 구하려 다니다가 귀신의 계시가 담겨있다는 일종의 예언서를 발견하여 가져왔다고 한다. 그런데 그 책 속에는 놀라운 내용이 들어있었는데, 그것은 진나라의 멸망은 호()에 의해서다라는 것이었다. 이를 본 시황제는 그 를 북방 오랑캐로 해석하여, 자신이 세운 제국을 지키기 위해 만리장성을 쌓게 하였다는 것.

그러나 진시황제가 죽은 후, 이사는 환관(내시) 조고(趙高)와 공모하여 시황제의 막내아들 호해를 2세 황제로 옹립하고, 시황제의 장남인 부소와 장군 몽염을 자살하게 만들었다. 그리고는 우둔한 2세 황제(호해)를 마음대로 조종하며 국정을 농단했다. 결국 호해 때 진나라가 멸망하게 되었던 바, 그 예언서가 말한 는 다름 아닌 시황제의 아들 호해(胡亥)를 가리켰던 것이다.

한편, 얼마 지나지 않아 이사와 조고와의 사이에 암투가 벌어진다. 이사는 백성들의 분노와 반란을 가라앉히기 위해, 황제 호해에게 아방궁 건설의 중단을 건의한다. 그러나 호해의 노여움을 사서 결국 옥에 갇히고 말았다. 이사는 옥중에서 호해에게 억울함을 호소하는 변명의 글을 올렸으나, 모두 조고에게 차단되었다. 조고는 이를 빌미로 호해에게 이사가 그 아들과 함께 반란을 꾀하고 있다고 모함했다. 그러고는 이사가 만든 혹독한 형벌 규정을 적용하여 그를 고문한 끝에, 모반을 자백 받았다. 결국 이사는 기원전 2087, 수도인 셴양(함양)의 시장터에서 처형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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