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영진/ 사회복지법인난원 영광노인복지센터장

나무사이 어디선가 들리는 새소리와 낙엽 바스락거리는 소리, 눈이 부시게 맑은 햇살, 높은 하늘위에 떠가는 구름이 가을의 정취를 충분히 느끼게 한다. 가을은 사람의 눈과 귀를 집중하게 하고 후각을 자극해 사색할 수 있는 즐거움을 주는 계절인 것 같다. 유난히 무더웠던 여름이 지나서인 지 요즘 출근길은 단풍나무와 함께 낙엽 밟는 재미가 색다르다. 옥에 티라면 신발에 묻지 않게 요리조리 피해 다니는 것이 있다. 건강에는 좋다고 하지만 그 냄새만큼은 감당하기가 쉽지 않은 은행나무 열매다. 이처럼 사람이나 식물, 동물들은 저마다 품어 내는 향이 있다. 사람 몸에서 나는 체취가 아닌 이미지로 연상되어지는 향기. 가까이 지내고 싶은 사람이 있는 반면 멀리하고 싶은 사람도 있다. 사람의 향기는 어떻게 만들어질까 생각해 본다. 상처를 안아주는 사람에게서는 사랑의 향이 진하다. 누구나 상처 하나쯤은 안고 있다. 그 상처를 말없이 안아주고 이해해 주는 사람에게서는 배려가 빛이 난다. 약간은 손해 보는 듯 사는 사람에게는 봉사와 너그러운 마음을 느낄 수 있다. 내 것만 지키고 전혀 손해 보지 않으려고 하는 사람은 너무 인간미가 없어 보인다. 따뜻한 말을 해주는 사람에게는 인정과 예의의 향기를 느낄 수 있다. 한 학자의 연구에 따르면 사람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한 사람이 평생 5백만 마디의 말을 한다고 한다. 말 한마디에 천 냥 빚을 갚기도 하지만 평생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주기도 한다. 꽃에 향기를 따라 벌과 나비가 날아들 듯이 사람은 따뜻한 말 한마디에서 향기가 난다. 예전에 김혜자씨가 주인공으로 나왔던 엄마가 뿔났다라는 드라마가 있었다. 딸이 결혼하겠다고 데려온 남자가 맘에 들지 않는다. 상대방 부모를 만나 퇴짜를 놓고 올 요량으로 안사돈을 만났는데 결혼 날짜까지 잡고 집에 들어와서 남편에게 한다는 말이 내가 미쳤나봐, 결혼날짜를 잡아 버렸어!” 사돈 될 사람의 공감능력에 자기도 모르게 마음이 움직였던 것이다. , 자신의 이름을 내건 토크쇼를 25년간 이끌었던 토크쇼의 여왕 오프라 윈프리. 오프라는 단순히 말을 잘 하거나 방송을 매끄럽게 이끄는 진행능력보다는 다른 사람의 말을 귀 기울여 들을 줄 알고 마음을 보듬는 능력이 있으며 타인의 상처를 어루만질 줄 아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탁월한 공감능력을 가지고 있고 그 공감력으로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과 지지를 얻었던 것이다. 오프라의 토크쇼에 초대된 사람은 마법에 걸린 것처럼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그리고 오프라는 게스트의 모든 이야기를 주의 깊게 듣고 진심으로 공감하며 위로를 건넨다. 그 모습에서 사람들은 그 게스트가 마치 자신인 것처럼 느끼며 오프라에게 위안을 받고 그녀를 친구처럼 여기게 된다고 한다. 이런 공감력은 말을 많이 하기보다는 상대의 말을 진심으로 들어줄 때 가능하다. 침묵의 기술이라는 내용 중에 "그대 입에 문을 만들어 달아라. 그대 입술을 멋대로 열어두느니, 차라리 보물이 가득 든 그대의 금고를 활짝 열어두어라. 훗날 비난받을지도 모를 말이 그 입에서 튀어나오지 않도록 조심하라." 대부분의 사람들은 상대의 말을 듣기보다는 말을 많이 하게 된다. 내 말을 내세우게 되면 상대는 입을 닫게 된다.

며칠 전에 은행에서 일을 보는데 마감시간은 다가오고 일은 쉬 처리되지 않아 애가 탔다. 급한 마음에 횡설수설하며 당황하고 있는데 차분하게 설명해 주고 기다려 준 은행직원의 도움으로 업무를 마칠 수 있었다. 너무도 감사한 일이었다. 헌데, 은행을 나오는 내 손에는 신용카드 한 장이 들려 있었다. 카드실적이라며 내민 은행직원의 카드 신청서를 뿌리칠 수 없었다.

바람에 흩어지는 꽃향기와는 달리 사람의 향기는 가슴에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고 했다. 상대가 하는 말을 들어주고 진심으로 도움을 줄 때 사람은 마음을 열게 된다. 몸에 뿌린 향수만이 그 사람이 담고 있는 향기는 아니다. 지금까지 걸어온 길, 해 왔던 말들과 행동들이 지금의 향기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현재도 내가 만들어 내고 있는 나만의 향. 깊어가는 가을처럼 사람향기 물씬 나는 깊음 있는 내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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