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일순/ 사진가 수필가

가장 가까운 이웃 나라 일본이 아직도 위안부 관련 사과를 전혀 하지 않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박근혜 정부가 생각 없이 받아들인 화해치유재단을 결국 해산 절차를 밟기에 이르렀다. 정권이 바뀌면서 예상 되었던 사안이었다. 일본이 건넨 10억 엔을 받아들이고 24개월만이다. 문제는 이 돈이 배상금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른바 일본이 인도적 차원에서 피해자들에게 나눠 준다는 의미에서 생존 혹은 사망한 피해자 할머니들에게 모두 44억 원을 지급한 상태다. 이 과정에서 준비위원들의 선임과 피해자 면담의 조작설까지 대두 되었다. 있을 수 없는 일지만 현실이다. 피해자 당사자들이 배제된 해결이 불가역적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졌다면 믿었던 국가의 명백한 배신이다. 사과를 전제로 한 배상이 없는 행위는 피해자 할머니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지만 당사자 일본은 전혀 개의치 않는다.

며칠 전 TV에 출연했던 패널 발언에 상당히 공감이 간다. 1965년 박정희 정권하에서 체결된 김종필과 오히라 간의 한일협정이 문제라는 것이다. 항목 중에서 부속협정으로 체결한 청구권·경제협력에 관한 협정이 그것으로 일본에서는 당시 이 협정으로 이미 배상권이 이루어졌다는 생각을 버리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서로 입장이 전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한다고 쳐도 명목이 없는 배상은 있을 수 없다. 특히 국제사회에서 이를 부정하고, 사과는커녕 피해자 할머니들을 위한 어떠한 행사와 운동도 반일본적 행위로 치부하고 있다. 당시 일본이 제공한 돈은 무상자금 3억불과 2억불의 장기저리 정부차관이었다. 이 돈의 일부는 경부고속도로 건설에 쓰이고 상당액의 자금이 포항제철 건설로 흘러 들어가 정경유착의 토대를 만들었다는 것을 알만한 사람은 알고 있는 사실이다. 이후 한국 정부는 강제징용과 위안부 피해자의 배상권과 사과를 거론하지 않았다. 일제가 우리에게 남긴 35년의 상처는 기간에 비해 너무나 컸다. 하지만 이를 따지는 사람은 불과 얼마 전까지 거의 없었다. 객관적으로는 신기한 일이지만 1965년 당시로 돌아가 보면 이해가 된다. 당시 정권은 5억불의 돈과 국민 개인들의 엄청난 피해를 맞바꿔 먹은 것이다. 그래서 현재 우리가 일본에 따져야 할 것은 돈이 아니라 진실한 사과인 셈이다. 하지만 그런 일은 없을 것이다. 일본은 그러한 양심을 갖고 있지 않을뿐더러 우리 정치인의 상당수도 일본에 동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의 정신적 뿌리는 단 35년 만에 한반도에 너무도 깊은 뿌리를 내려버렸다. 그래서 일본은 무서운 나라다.

조선이 망했던 이유를 한말 최고의 학자들은 사대에 두었다. 명이 망하고 청이 들어섰어도 오직 외교는 망해버린 명을 숭상하고 청을 오랑캐로 취급했다. 이른바 명과 하나인 우리는 오랑캐와 격이 다른 나라라는 것이다. 이른바 소중화사상이다. 중화가 망하니 우리는 소중화라도 되겠다는 의미다. 그들의 주축이 바로 끝까지 나라를 팔아먹은 이완용을 중심으로 한 노론들이다. 조선이 당파로 망했다는 말은 사실이 아니다. 노론의 독주를 견제한 것에 불과한 다른 당파들은 상소를 통해 왕권과 노론의 독단을 경계했고 결코 속칭 관피아는 거의 바뀌지 않았다. 소중화사상도 지속 되어 민족주의를 말살했고 결국 민족을 팔았다. 우리 안에서 우리를 없앴던 것이다. 그들의 후손이 아직도 이 나라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 그래서 일본을 경계하고 무서워해야 한다. 중화사대는 이제 일본과 미국 사대가 되어 현실을 유령처럼 떠돌고 개인의 이권을 위해서는 아무런 양심적 제약 없이 나라를 팔 것이다. 잃었던 나라를 되찾고 국권이 회복이 되어도 나라를 팔았던 매국자 처벌이 전혀 없으니 이들은 전혀 두려울 것이 없다. 여기에 군권(軍權)을 회복해 가는 일본의 야심이 더해진다면 우리는 언제 무너질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떨어야 한다. 하지만 정작 더 두려운 것은 우리 국민의 불감증이다.

이완용은 나라를 팔았고 이병도는 혼까지 팔았다는 말이 있다. 역사는 민족의 혼이다. 과거를 돌아보면 현재가 보이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침투해 오는 일본의 저력은 35년 강점기에 뿌리를 내리고 근거를 확보하고 있다. 여기에 매국 역사학자들을 이용한 역사의 침입은 정신까지 흔들고 있다. 문제는 내부 동조자들이다. 동북공정과 식민사관을 돕고 있는 세력은 아직도 굳건하다. 그래서 더욱 두려워지는 일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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