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일순/ 사진가 수필가

유난히 사건사고와 화재가 많았던 무술년 한해가 저물고 있다. 책가방이 무겁기만 했던 어린 시절엔 1년이 참 길었다. 나이에 따라 시간의 느낌이 많이 다른가보다. 아침을 먹은 기억밖에 없는데 저녁 밥상을 마주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깜짝 놀란다는 선배의 말이 이젠 예사롭지 않다. 나이만큼 세월은 빠르게 지나가고 있다. 젊음은 나이를 먹어 쌓아가지만 늙음은 곶감처럼 세월을 빼먹고 있다는 말이 새삼 실감이 나는 12월 끝줄이다.

황금개 운운하며 억지 희망을 심으려했던 무술년은 샌드위치 세대라는 유행어를 남기고 개띠들에게 다시 맞지 못할 마지막 무술년을 기억시켰다. 무술년의 간략한 역사를 보면 1418년이 세종대왕 즉위한 해이고 1478년은 성종 9년차로 특이한 일이 없었다. 1538년 중종 33년차 역시 별다른 사건사고는 없었으며 1598년은 선조 31년으로 다사다난했던 해였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818일 사망으로 왜란이 막을 내리고 이순신 장군 역시 노량해전으로 대승을 거두고 1216일 사망한 해이기도 하다. 1658년은 효종 9년차로 제2차 나선정벌에 나섰던 해였고 1718년 무술년은 숙종 44년차로 극심한 가뭄과 기근에 시달렸던 해였다. 1778년 정조 2년차는 기억될만한 일은 없었고 1838년 헌종 4년차는 큰 사건은 없었지만 가뭄으로 기우제를 10회나 올렸던 기록을 갖고 있다. 1898년 고종 35년차에는 흥선대원군이 사망했고 제주민란과 만민공동회가 열렸던 역사적인 해였다. 고종의 뜻으로 해산이 되었고 독립협회 역시 해산이 되었다. 이어서 제국신문과 황성신문이 창간 된 언론의 역사를 새로 심은 해이기도 하다. 1958년은 대한민국에서 최초로 비행기 납치사건이 일어난다. 대한민항의 부산에서 출항한 창랑호가 북한 공작원 6명에게 납치당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사람은 돌아오지만 비행기는 돌아오지 못하고 단 3대의 여객기로 운영하던 대한민항은 큰 타격을 입고 만다. 당시 피랍자 중에 김기원 공군대령이 있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나중에 김대중 납치사건에서 일본 공작 책임자로 활동한다. 피랍자에서 이름을 김재권으로 바꾸고 김형욱에게 발탁되어 중정으로 들어가 납치자로 변신한 것이다. 당시 주일공사였던 그는 요즘도 활동하는 전 주한대사 성 김의 부친이기도 하다.

해마다 기본적인 사건과 사고가 사회를 채우지만 올해는 남북관계라는 대단한 이슈가 초반부터 한반도를 뜨겁게 달궜던 해였다. 현 정부의 가장 큰 역할은 아무리 평가절하를 해도 전쟁의 위협에서 국민을 벗어나게 해준 것이다. 일촉즉발의 위기에서 나눈 정상의 악수는 전 국민에게 안도의 숨을 내쉬게 해주었다. 국가를 그 지경으로 몰아넣었던 원흉들은 아직도 못마땅한 시선으로 어떻게든 폄훼를 하려하지만 현 정부의 성과를 덮기엔 역부족이다.

올 한 해도 수많은 정치인들이 포토라인에 섰다. 그리고 그들의 한결 같은 주장은 한 점 부끄러움 없는 삶을 살았다였다. 사법농단에 연관된 판사들은 제 식구 감싸기 솜방망이 징계로 국민을 기만했고 구속영장은 모두 기각시켜 버렸다. 반년이 지났지만 결과는 없다. 결국 그렇게 끝날 것이라는 예상이 압도적이다. 법원 고위층에선 관행으로 보기 때문이라고 한다. 국회가 나서야 하는 사안이지만 나서는 모습을 보이지 않음은 뭔가 석연치 않음을 보여준다. 이들은 이명박 전 대통령을 위시해 한결같이 부끄럽게 살지 않았음을 강조하며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어쩌면 진심일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해왔던 일상을 갑자기 범죄시하는 부류가 오히려 이들에겐 이상한 일이고 사회적 혹은 정치적 농단으로 보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명박 전 대통령을 필두로 이들은 분노하고 정의로운자신을 포기하지 못하는 것이다.

개는 예부터 인간과 친하고 충성을 상징했다. 좋은 동물이다. 특히 12지간의 해석은 술천예격(戌天藝格)이다. 하늘로부터 예술성을 부여 받은 것이 개띠라는 의미다. 무술년에 시작된 남북관계를 최소한 왕래가 가능한 관계로 개선해 원수가 아닌 친구가 되는 계기로 삼는다면 역사에 심을 수 있는 무술 2018년이 되지 않을까. 생각이 다르고 이념이 달라도 피를 나눈 형제는 천륜이다. 중국도 가고 러시아도 가는데 내 형제가 사는 바로 이웃만 막혀 있다는 사실이 이해가 힘들다. 2018년을 통일을 향한 첫걸음을 내딛은 해로 기록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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