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구현/ 시인

불을 자유롭게 사용하고자 한 인간의 욕구에서 촛불은 생겨났다.

그리고 자신의 몸을 태워 어둠을 밝히는 모습에서 희생과 사랑, 정의, 영혼, 등을

나타내는 종교적 상징물로 쓰이기 시작했다.

기독교에서 촛불은 세상의 빛인 예수를 상징한다.

부활절이나 성탄절 때 촛불을 밝히고 예배 또는 미사를 드리거나 행진하는 의식도 여기서 비롯했다.

불교에서 촛불은 무명과 탐욕을 몰아내서 어두운 사바세계를 밝히는 지혜와 광명의 불씨로써 진리와 정의, 희생과 자비를 상징한다.

우리의 무속신앙인 굿판에서 촛불은 이승과 저승을 연계하는 매개체 역활을 담당한다.

또한 조왕신(화신)이 내려오는 섣달 그믐날 밤 대청 부엌 외양간 장독대 곳간 측간

할것 없이 온 집안에 촛불을 켜놓고 잠자지 않고서 마중하는 풍습도 있었다.

그렇듯 촛불은 동서양 구분 없이 예배 축하 탄생 결혼 죽음 영혼 등 경건한 의식에 사용되어왔다.

그리고 이제 그 촛불은 종교적 상징을 넘어 그릇된 것들을 응징하는 물리적 힘의 상징으로써까지 그 기능을 확장시켜나가고 있다.

1989년 공산주의 정권을 상대로 종교의 자유와 인권존중을 요구하며 광장에서 촛불시위로 공산주의 정권을 무너뜨렸던 체코슬로바키아 브라티슬라바의 촛불이 그랬고,

우리나라에선 1992년 온라인 서비스 유료화를 반대 했던 촛불로부터 시작해서 2002년 미군 장갑차에 의해 사망한 여중생 추모의 촛불,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소추안 통과 반대의 촛불,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 2009년 용산 참사 추모 촛불, 2011년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한 반값등록금을 촉구했던 촛불, 2013년 국가정보원 여론 조작 사건에 대한 항의의 촛불, 2014년 세월호 침몰 사고의 진상 규명을 요구했던 촛불, 20161112일 박근혜 정권 퇴진을 위해 서울 광화문 일대와 부산 광주 제주도 등 전국 각지에서 밝혀진 대규모 촛불이 그런 것이었다.

그런 촛불의 힘은 결국 박근혜 전 대통령을 탄핵시키는 엄청난 힘으로 작용했고, 반사적으로 문재인 대통령을 당선시키는 정권 교체 혁명의 불꽃이 되었다.

 

 

헐벗은 가녀린 몸매/실오라기 하나 걸쳤다//

어둠과/비바람에 맞서다/끝내 죽을 지언정/

그 무엇과도 타협하지 않는다//오로지/이 한몸 불태워/어둠을 밝히고자 한다//불의에 기생하는/모든 치부가 들어 날 때 까지//훨훨 타다//당신의 손에서/촛농의 무덤으로/역사의 빛이 되리라.이광철 ''촛불의 역사'' 전문

1990년대 초 음력 4월 초 이레날 저녁시간, 서울의 종로2가에선 부처님 오신날 전야제 행사의 일환으로 여러 스님들과 신도들이 어두운 사바세계를 밝히는 연등 속 촛불을 들고 행진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무순 연유에선지 느닷없이 앞서 가던 스님들끼리 몸싸움이 벌어지고 아수라장이 되었다.

길거리 필자의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20대 여성이 혼잣말로 무심코 던진 한 마디.

'', 그런다고 답이 나오나?''

까만 어둠 속에서 한 자루 촛불이 켜져 있음으로 주변이 환하다. 그러나 그 불빛은 어둠을 밝히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다.

스스로를 태워서 어둠을 밝힌다는 건 나 자신을 낮추는 일이고 더욱 작아지는 일이며 그렇게 나를 키워가는 일이다.

불꽃에 녹아내리는 촛농은 그냥 눈물이 아니다.

진정한 기쁨과 행복과 아름다움이 배태되어가는 밑거름이다.

우리가 촛불 앞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를 올리며 소망을 비는 것만으로 바라는 것이 이뤄지진 않는다.

불꽃이 타오를수록 점점 작아지고 낮아지는 촛불의 외형을 보면서 촛불 앞에 무릎을 꿇고 앉은 나도 낮아지고 작아지는 촛불의 정신을 배우고 실천함으로써 간절한 소망을 향해 한 걸음 더 다가설 수 있다.

기도할 때 촛불을 켜야하는 까닭이다.

그리고 그 것이 촛불의 진정한 의미이고 가치다.

촛불에 대한 한가지 오류는 촛불 앞에 선 모두가 스스로 무릎을 꿇게 하는 자성(自省) 상징이 아니라 무릎을 꿇리는 강제적 힘의 상징으로써 광화문 촛불 쯤으로 잘못 인식하고 있음이다.

2019년부터는 어떤 이유로든 상대를 무릎 꿇리는 물리적 힘의 상징으로써, 무기로써의 상징뿐만이 아니라, 스스로가 무릎을 꿇게 하는 자성의 촛불, 거센 비바람에도 꺼지지 않는 불꽃이 모두의 마음 속에 타올라서 온 세상에 환히 밝혀지길 소망해본다.

이카루스의 날개는 되지 말아야 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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