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일순/ 사진가 수필가

달력만 바뀌었지 날은 이어지는데 사람들은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데 몰두한다뭔가 달라진 것 같은 느낌이 들고 혹은 새로운 결심을 해야만 될 것 같은 분위기를 모든 미디어가 만들어가고 있는 탓도 있겠지만 우리 머릿속에 깊이 자리 잡은 오랜 풍습이기도 하다.

 양력을 받아들이면서 설날은 민속의 의미로 밀려나고 실질적인 원단은 양력으로 자리를 잡았다모든 기록은 양력으로 남기고 기관의 회기도 마찬가지로 양력이다아직 음력이 필요한 곳은 바다에서 삶을 찾는 사람들뿐이다들물과 썰물 그리고 물 때간조 등은 태양이 아닌 달에 의해 정해지기 때문이다하지만 농사를 짓는 연세가 많은 노인들은 절기는 음력이 맞다면서도 실질적으로 농사에 적용하는 절기는 양력으로 만들어진 ‘24절기사계를 나타내는 춘분과 추분하지와 동지는 태양의 4계다동지는 해가 길어지기 시작하고 하지는 해가 짧아지기 시작하는 날이다그래서 태양의 빛 미트라를 숭배하는 신자들은 태양이 커지기 시작하는 12 25일을 태양신 미트라 탄생일로 믿는다실제 기독교를 정교로 인정한 로마의 콘스탄티누스 대제는 금요일 밤부터 토요일까지의 주일을 자신이 믿는 미트라교의 상징인 태양의 날(sunday)로 옮기도록 만들었고 그 전통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어 소수의 종파를 제외하곤 대부분 일요일에 예배를 본다.

 흥미로운 사실은 우리 민속의 근간으로 생각했던 절기가 양력이라는 것이다대부분 절기는 음력이라는 선입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만 앞에 언급했듯이 양력이다태양황경령도(太陽黃經零度/지구가 태양의 둘레를 도는 길)에서 345도에 이르는 각 15도 점에 붙여진 기후의 전환점과 그 명칭이 24절기다. 345도는3 6일의 경칩이요 다음은 당연히 3 21일인 처음 춘분의 0도이다또 하나의 착각은 양력은 서양문물이 들어오면서 시작되었다는 인식이다하지만 24절기는 중국 주()나라 때 화북지방의 기상 상태에 맞춰 붙여진 이름이다태음력은 태양의 움직임과 일 년 기준으로 11일의 차이를 보였고 이를 맞춰가기 위한 방편이 윤달이다그래서 태양의 운행을 따라 황하유역의 기상과 동식물의 변화 등을 15도씩 나누어 기록한 것이24절기의 이름이다유럽에서 지구가 원형이라거나 태양을 돈다는 발언을 하면 목숨을 잃었던 시기가 16세기였다하지만 동양에선 이미 기원전 1046~256년에 지구가 태양을 도는 길(황도)까지 파악했고 각도에 따라 달라지는 자연의 변화까지 완벽하게 알고 있었다당시 우리는 기원전 108년까지 고조선 시대에 해당한다.

 유가에서 가장 중요한 경전인 사서삼경이 있다그 중 가장 중요한 것이 역경(易經)이다주나라 시절 완성이 되었기에 현재 우리에게 친숙한 이름은 주역(周易)으로 알려진 엄청난 내용의 이 책이 기원전 수세기 전에 씌었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하다하지만 우리는 신사대사상에 빠져 서역과 미국의 물질 숭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니 안타까운 일이다물론 먹고 사는 일이 우선이지만 먹고 살만해지자 그들이 찾는 건 바로 우리의 정신적 유산이지 않은가사서삼경이라는 유가의 교과서를 떠나서도 노자와 장자로 대표 되는 노장사상이 있고 공자와 70년의 터울을 두고 치열하게 학문을 다퉜던 묵가의 묵자가 있었다특히 묵자는 기원전 5세기에 이미 공산화의 꿈을 꾸었고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무조건적인 사랑의 강렬한 지침을 남겼다여기에 한비자와 주자(朱熹)까지 더해지면 학문은 빛을 더한다그렇다고 중국 찬양론으로 받아들이면 곤란하다어차피 우리의 기원은 중국 본토였고 고조선은 중국의 중심부였다여기서 발상한 문화와 문명은 공유의 의미에서 봐야 맞다바로 한문문화권이다동남아시아의 거의 모든 국가를 아우르고 있는 문화를 부정할 이유는 없다.단지 한나라가 중국을 통일해서 문자 이름이 한문(漢文)이 되었지 한나라 이전에도 동일 문자를 사용했었음을 알아야 한다우리가 천년 이상을 교과서로 삼았던 문자와 사상을 부정함은 심각한 자기부정이다실제 삼국사기를 들여다보면 우리 천문학은 중국보다 우월했다서울대 박창범 천문학교수의 저서에 의하면 중국의 천문 기록보다 삼국사기의 천문과 자연현상 기록이 훨씬 정확하다고 말한다중국과 우리 사이에 특별한 다름도 우열도 없는 것이다학문이 같았고 터전이 혼재되어 나타나는 마당에 굳이 자기부정을 할 이유는 없다.끝으로 24절기는 우리가 기원전부터 사용했던 태양절기라는 것만은 기억해 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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