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희/ 여민동락 살림꾼

4년 전, 다섯 살이던 큰 아이가 어느날 아침 유치원에 가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갑자기 왜 그러는 것일까. 수차례 이유를 물었지만 아이는 "그냥, 가기 싫어요"라는 말만 되풀이 했다. 처음에는 그러려니 했다. 하지만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가지 않겠다고 하자 심상치 않은 이유가 있음을 알았다. 사흘이 지나고 아이가 입을 열었다. "엄마, 000이 약 올리고 괴롭혀요."

당황스러웠다. 해결 방법은 떠오르지 않았지만 일단 시간을 갖기로 했다. 아이의 문제를 부모가 대신 해결하는 것만은 피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무것도 묻지 않고 사흘을 기다리니 아이가 다시 유치원에 가겠다고 했다. 나는 아이에게 '피하지만 말고 그 친구에게 싫으면 싫다고, 하지 말라고 솔직하게 너의 마음을 이야기하라'고 타일렀다. 아이는 괴롭혔던 아이에게 말하는 연습까지 하고 나서 다시 유치원에 나갔다. 지금은 그때 갈등이 있었던 그 아이와 친구로 잘 지낸다. 기질과 성향이 너무 달라 가끔은 부딪칠 때도 있지만 크게 힘들어하지 않는다. 어느덧 초등학교 2학년이 된 아이는 엄마 '껌딱지' 생활을 졸업하고 친구들과 어울리는데 더 열중한다. 친구 때문에 재미있고 기쁠 때도 있지만 친구 때문에 괴롭고 화가 나고 슬플 때도 있다.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타는 아이를 보면서 엄마인 나도 함께 롤러코스터를 탄다. 아이가 친구와의 관계에서 만족과 행복을 느낄 때는 안심하다가도, 괴롭거나 힘들어하면 나 또한 속이 상한다.

아동심리학자 마이클 톰슨은 책 <어른들은 잘 모르는 아이들의 숨겨진 삶>에서 "부모들이 아이들의 사회적 삶에 대해 좀 더 폭넓은 이해를 가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아이의 삶에 스민 고통과 집단의 힘을 인식할 수 있을 때 당신은 과민 반응을 보이지 않고 안정된 균형 감각으로 그 힘든 상황을 견뎌낼 수 있고, 그러한 태도는 아이에게 엄청난 도움이 된다어떤 무리의 아이들이 어떤 행동을 하는지 통찰력을 가지면 조금 더 어른스럽고 안정된 방식으로 아이들을 대할 수 있다고 충고한다.

모든 아이들은 연결에 대한 강한 욕구가 있다. 유아기에는 부모와의 애착이었다가 아동기를 지나가면서는 다른 아이들, 다른 어른들과의 관계로 나타난다. 아이에게는 부모의 말보다 또래집단에서의 인정이 점점 더 중요해진다. 우정과 인정 사이에서 아이들은 험로를 헤쳐나가고 있다. 아이들은 서로의 마음에 상처를 주고 놀려대고 배신하기도 한다. 아이들은 또래집단에 속하는 순간부터 이른바 '집단의 법칙'에 강한 영향을 받는다. 한 교실에서 학교폭력이 발생했을 때 폭력에 관계된 이들은 피해자와 가해자라는 두 분류로만 나뉘지 않는다. 소수의 피해자와 소수의 가해자 사이에는 늘 다수의 방관자들이 존재한다. 이 다수의 방관자들은 섣불리 나섰다가 집단에서 배제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에 피해자를 도우려는 아무런 행동도 하지 못한 채 폭력을 방조한다. 아이들은 혼자 있을 때보다 집단에 소속되어 함께 있을 때 도덕적 책임감이 분산되기 때문에 남의 감정을 이해하고 헤아리는데 더 둔감해진다. 방관한 그룹 중 일부는 자신의 비겁함을 자책하며 죄책감을 느끼기도 하지만, 일부는 집단의 권위에 순응하며 도덕적 책임감으로부터 도피한다.

따라서 약자에 대한 괴롭힘을 방지하고 학교폭력을 예방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구성원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방관자들에게 집중하는 것이다. 폭력적인 상황에 내던져진 친구를 바라보지만 말고 도와주는 것이 시민의식의 핵심이다. 아이들이 섣불리 공격과 배제에 가담하지 않도록, 약자를 배려하고 협동하도록 가르쳐야 할 몫은 어른들에게 있다. 아이들은 학교 생활을 통해 또래 집단과 관계를 맺는다. 학교는 아이들의 사회다. 아이들은 관계맺음에 서투르거나 좌절을 경험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 좌절을 극복할 힘도 관계속에서 나온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맺는 관계의 다른 이름은 '우정'이다. 우정은 아이들에게 정서적 지지와 안정을 제공하는 바탕이며 영혼을 풍요롭게 해 준다. 앞으로도 나는 아이가 겪는 관계맺음의 희로애락을 지켜보며 불안해하고 고민할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다 내 아이의 성장의 과정이라는 점, 그리고 그 성장의 바탕에는 우정의 힘이 있을 거라는 점을 믿어야겠다. 간섭보다는 믿음이 아이에게는 더 큰 힘이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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