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일순/ 사진가 수필가

대한민국은 음주에 한해서는 관용의 잣대를 상당히 높게 잡는 경향이 있다. 주위에서 끊임없이 음주관련 사건 사고가 벌어져도 별로 개의치 않는다. 하지만 알코올이 사람을 얼마나 파멸시키고 있는지는 통계를 통해 알아볼 필요가 있다. 뇌세포를 죽이고 알코올성 치매를 유발하며 근육을 약화시키고 간에 치명적인 손상을 준다는 정도는 상식이지만 이런 것들은 지극히 개인적 결정인 관계로 굳이 언급할 필요는 없겠다. 하지만 음주로 인한 각종 사고와 범죄는 국민들에게 큰 피해를 주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특히 술이 죄라는 기이한 주장은 이해가 힘들다. 술잔을 손에 들 때는 음주 후의 자신을 통제할 자신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알코올이 인체에 들어가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이성을 관장하는 쪽의 뇌를 마비시키는 일이라고 한다. 다시 말해 이성이 자신을 다스리지 못하는 상태가 된다는 말이다. 술이 취한 상태에서 저지르는 웬만한 범죄는 감형 대상이 된다. 술이 취해서 한 행동은 자의식이 없는 상태여서 그렇다고 한다. 술이 죄라는 논리가 된다. 그래서 술이 취해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주장이 통하는 법리다. 술에 관한 한 무한대 관용이 적용되는 음주공화국이 바로 우리나라다. 술이란 자신이 통제 가능한 정도까지가 음식이고 자신의 통제를 벗어나면 마약과 다름이 없다는 개인적 생각이다. 뇌와 관련된 글머리를 잡다보니 술과 연결이 되고 말았다.

새 달력을 펼치면 대부분 가장 먼저 결심을 한다. 결심의 대상이 무엇이든 신년은 새로운 계획과 결심을 부르기 마련이다. 하지만 미국의 유명한 프리랜서 작가 데이비드 디살보는 그의 책 제목을 나는 결심하지만 뇌는 비웃는다.”로 잡았다. 나는 생각을 하지만 행동은 뇌가 다른 명령을 내려 엉뚱하게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결심은 그냥 결심으로 끝나고 행동은 다시 현실적인 뇌의 명령체계로 들어간다. 데이비드의 목적은 우리를 움직이는 뇌를 잘 이해하고 활용하는 방법을 알리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진다.” “인내는 쓰고 열매는 달다.” “우주()가 나를 도와준다.” 등을 달콤한 거짓말이라고 말한다. 단지 우리에게 결심을 유발시키는 혹은 그럴 것이라 믿게 하는 허구의 실체로 본다. 사람의 행동을 제어하는 중심인 뇌는 미안하지만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다. 전혀 나에게 충실하지 않다. 특히 잘못을 저지르고 반성문을 작성하는 순간에도 뇌는 핑계를 동시에 생각한다. 엄밀히 따져서 나의 뇌는 내 생각을 반영하지 않는다. 그리고 착각을 양산해 자신의 인격에 철저한 방어막을 치고 페인팅(painting)을 한다. 만일 인간에게 착각이라는 현실성 면역력이 결핍되면 자살률은 현재보다 몇 배가 상승할 것이다. 특히 알코올 중독 증상을 보이는 사람들의 자기도취 착각은 과대망상증 수준이다. 이른바 무불통(無不通)이다. 정치 사회 경제 문화를 모두 꿰뚫는다. 한국 남자의 중하위권 지식층 대부분 역시 자신의 지식이 중간층 이상은 된다는 믿음을 굳게 갖고 있다고 한다. 또한 자신이 지극히 도덕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상대를 얕잡아 보고 무시하며 절대 꿇리지 않는 기개를 보인다. 만일 인간에게 자신을 정확하게 판단하는 능력이 있다면 세상의 유지는 힘들어진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착각이다. 실체는 나의 뇌가 세상에 속고 있는 현상이다. 연속극을 보며 악역을 향해 욕을 하고 극중의 배우가 울면 같이 눈물을 흘리는 엉뚱함을 갖고 있는 것이 뇌이기도 하다. 현실과 가상을 착각하고 구분하지 못한다. 신년의 결심을 허무하게 만드는 뇌의 명령에 결코 실망할 필요는 없다. 그래도 우리에게 당당하게 살 수 있는 착각을 선물하지 않는가.

언제나 후회하며 발전하는 것이 인간이다. ‘인감을 부탁하던 친구에게 그때 서운하더라도 거절했어야 했는데’, ‘한번만 참았어도 사고는 면했을 텐데’, ‘그때 팔았어야 했는데등 당연한 결정을 방해한 실체가 바로 나의 뇌라는 사실을 인지해야 한다. 그래서 사람은 생각과 행동이 정작 다르게 나타나는 경우가 허다하다. 책을 읽으면 집중해야하지만 얄미운 뇌는 자꾸 잡념을 불러들인다. 집중하려고 애쓰는 당사자는 생각일 뿐이다. 둘 사이의 일치점은 선조들의 공부법에서 찾아야 한다. 불일치는 과학적 분석이고 해결은 수행이다. 특히 정치인들의 극심한 불일치는 국가를 흔든다. 남명 조식 선생이 허리에 차고 다녔던 방울과 칼의 의미를 알아야 한다. 이렇게 생각이 뇌를 제어함을 돈오(頓悟)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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