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와 자녀(3)

중국 춘추시대의 유학자이자 공자의 제자인 증자(曾子)는 효성이 지극했던 것으로 전해지며,효경(孝經)의 저자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그의 아버지는 아들에게 매우 모질었던가 보다. 어느 날 증자가 참외밭을 매고 있는 아버지 곁을 지나가다가, 참외줄기를 상하게 만들었다. 이에 화가 난 그 아버지는 작대기로 그를 때려, 정신을 잃은 채 쓰러지게 만들었다. 온 집안 식구들이 물을 끼얹으며 야단법석을 떨었다. 하지만 정작 그 아버지는 하나 뿐인 자기 아들이 죽는다는 사실 자체보다도, 스승의 가르침에 따르지 못했다는 사실을 더 부끄러워하였다. “선생님께서 아시면, 제자 중의 한 사람이 자기 자식을 죽였다고 얼마나 슬퍼하실까? 설령 그것이 실수였다고 할지라도 말이다. 실수가 없게 하려는 것이 선생님의 평생에 걸친 가르침이 아니었던가? 나는 죄인이로다.”

얼마 후, 의원의 치료로 증자가 깨어났다. 모든 사람들이 (-증자)이 효자이기 때문에 하늘이 살려준 것이다.”고 칭송하였다. 그런데 증자는 깨어나자마자 고통을 무릅쓰고 일어나 아버지에게로 갔다. 그리고는 저의 주의가 게을러서 저지른 실수이기 때문에, 아버지께서 힘들여 교훈을 주셨습니다. 손이 몹시 아프시겠습니다.”라고 빌었다. 그러고 나서 자기 방으로 들어가 거문고를 뜯으며 명랑하게 노래를 불렀다는 것이다.

이보다 더 비정한 아비가 있다. 묵가의 시조인 묵자(墨子)는 철저한 규율로 조직을 다스려나갔는데, 그 조직의 우두머리 가운데 복돈이란 사람이 있었다. 어느 날 늘그막에 얻은 그의 아들이 살인을 저질렀을 때 일이다. 비록 죽을죄를 저질렀으되, ()나라의 혜왕은 복돈에게 은혜를 베풀고자 하였다. “선생은 나이도 많고 또 다른 아들이 없으시니, 과인이 이미 형리에게 아들을 처형하지 말도록 조처를 취했습니다.” 그러나 당연히 감읍(感泣)할 줄 알았던 왕의 귀에 청천벽력 같은 복돈의 음성이 들려왔다. “모름지기 살인자는 사형에 처하고, 남을 해친 자는 형벌을 받는 것이 묵가의 법입니다. 저로서는 묵자의 법을 따르지 않을 수 없습니다.”
결국 그는 자기 아들을 사형에 처하도록 했다고 한다. 물론 당시 묵가 조직에는 국가의 법률과는 다른, 독자적인 법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군주가 사면한다 할지라도 묵가의 기율이 허락하지 않으면, 그 아들을 구할 방도가 없는 것이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주저 없이 아들의 죽음을 주장한 아비의 행동이 과연 옳은 것일까?

유가의 경전인논어에는 정반대의 이야기가 나온다. 초나라의 대부 섭공자고가 공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 무리에 몸소 바름을 실천한 이가 있으니, 그 아비가 양을 훔치자 아들이 아비가 훔쳤다고 증언을 했습니다.” 이에 대해, 공자는 우리 무리의 바름은 그와 다릅니다. 아비는 자식을 위해 숨겨주고, 자식은 아비를 숨겨줍니다. 바름은 그 안에 있습니다.”고 대답한다.맹자에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나온다. “순임금이 천자(天子-중국의 최고 통치자)로 있을 때, 만약 순임금의 아비인 고수가 사람을 죽였다면 사법 담당자인 고요는 이를 어떻게 처리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맹자의 대답은 이랬다. “고요는 법을 집행하기 위해 고수를 잡으러 나섰을 것이고, 순임금은 천자 자리를 헌신짝처럼 내던져버리고 아비인 고수를 업고 외딴 바닷가로 달아나 죽을 때까지 즐거이 살면서 천하를 잊었을 것이다.”

물론 세습귀족 중심의 세상을 바꿔보겠다고 일어선 묵가의 입장에서, 유가처럼 점잖은 윤리는 허용될 수 없었을지도 모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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