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일순/ 사진가 수필가

다시 답안지 유출 사고가 터졌다. 자녀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행태가 불법이라는 사실도 충격이지만 당사자들이 상당한 지식층이라는 사실이 더욱 놀랍다. 이번에는 의대 교수가 아들을 자신이 다니는 의과대학에 편입시키려고 면접 답안지를 유출했다. 계획은 완벽했지만 아들이 필요치 않은 오답까지 줄줄 외우는 바람에 들통이 났다. 불과 얼마 전에 세상을 시끄럽게 했던 쌍둥이 딸을 위한 부정(父情)의 부정(不正)이 강한 세상의 지탄을 받으며 법정으로 갔지만 자식을 위한 마음은 이를 의식하지 못하는가 보다. 고등학교의 행정실장과 대학 교수의 직위를 맡았던 이들이 교육이란 의미를 알고는 있는 것일까. 결국 이들의 왜곡된 자식 교육과 사랑이 부른 결과는 사회적 퇴출이지만 과연 우리 자신은 여기서 자유로운 것일까.

흥미로운 것은 우리나라 학부형들의 마음이다. 한 결 같이 학력과 성적지상주의를 비토 하지만 정작 본인들의 아이들 성적을 위해선 물불 가리지 않는 적극성을 보인다. 유명인 누구누구는 아이들의 뜻대로 학교를 보내지 않고 자유롭게 키운다는 등 부러움을 보이지만 그것은 자신의 현실과는 거리가 멀다. 정작 내 일이 되면 아이들의 자유는 방치와 격을 같이 하게 되는 것이다. 도대체 상식이 통하지 않는 부분이다. 대한민국 학부형 대부분은 자신의 아이들이 공부로 성공하길 바라고 있다. 가장 중요한 아이의 적성은 관심 밖이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교육열과 가장 높은 대학 졸업의 학력을 보유한 국가지만 정작 졸업 후에 전공으로 먹고 사는 사람이 몇 퍼센트나 되는지 생각하지 않는다. 결국 목적은 졸업장인 셈이다. 물론 최고 학부의 몇몇 전공은 제외가 되겠지만 그 외에는 거반 다르지 않은 모습을 보여준다.

학부형들의 대부분 의견은 교육제도를 탓한다. 맞는 말이다. 누가 봐도 우리의 교육제도는 문제가 많다. 그야말로 빈익빈 부익부다. 부자가 좋은 학교에 합격하고 다시 좋은 자리를 잡아 부자가 될 확률이 점점 더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가난도 이젠 대물림으로 갈 확률 또한 상당히 높아졌다. 흔한 말로 개천에서 용 난다고 했다. 그런데 이젠 그것도 조선시대 말이고 현실은 힘들게 됐다. 강에 사는 부류가 원천 차단을 시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미 사회 전반을 덮었다. 아직 조선시대의 DNA가 우리 몸에 흐르고 있는 셈이다. 그래도 조선에는 과거제도가 있어 등용문을 통과할 기회라도 있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요즘보다 힘들었다. 과거는 어차피 5~10%의 양반들 차지였고 당상관들은 자제들 중 1인을 무시험으로 관직을 차지했다. 이른바 음서제도다. 현대는 고시로 대변되는 당시 과거 역시 좁은 문을 뚫고 들어가는 부류는 상류 5%에 불과했다. 과거시험장에서는 온갖 작당과 부정이 이루어졌다. 거기에 비하면 요즘은 정화가 된 셈이다. 문제는 그 시대를 자꾸만 닮고 싶어 하는 우리의 상류사회다. 등용문으로 통하던 3고시는 마지막 숨통을 쪼여 고사 상태로 만들어 외부 영입으로 길을 돌리고 있으며 법률가는 로스쿨이란 우리 몸에 맞지 않는 옷을 만들어 부자들의 전용 기관으로 끌고 있다. 이제 그나마 가난한 서민들의 출세 길은 거의 막힌 것이다. 조선시대의 모습으로 빠르게 회귀하고 있다. 그나마 약간 다른 것은 시험의 공정성이다. 누구나 같은 조건으로 시험에 응하고 모든 사회적 지위는 시험으로 줄이 세워진다. 다만 부가 개입 된 기울어진 운동장에서의 게임이라는 것만 다르다. 그래서 필사적이다. 바늘귀만큼의 희망이라도 볼 수 있는 방향이 그래도 소위 SKY아니던가. 대한민국 학부형들의 공동 목표가 성적이 된 이유다. 인생의 지향점을 자신의 관점으로 보지 말고 아이들의 것으로 봐야 맞는다는 것을 모르진 않지만 아이의 출세와 성공에 자신의 인생과 목적까지 우겨 넣고 아이들을 몰아세우고 있다. 여기에 편승해 사교육이 공교육을 넘어서고 돈과 지위로 해결 가능한 성적지상주의가 완성되었다. 아이들에겐 올바른 인성이 우선이 아니고 성적을 위한 수단을 가르치고 있다. 배울 만큼 배운 부모가 자식에게 도둑질과 부정을 가르치면서도 부끄러움을 모르는 세상이 되었다. 성적을 위한 수단이면 시비를 가리지 않게 된 것이다. 백년지대계인 교육은 수백 년을 거슬러 조선으로 가고 있다. 5%의 특권층만을 위한 제도로 철옹성을 쌓아가고 있는 대한민국 사회는 비전이 없다. 머리가 좋아 일류대에 진학하는 서민 20% 아이들도 결국 상류사회 진입을 가로 막고 있는 연줄의 횡경막을 넘을 방법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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