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봉주/ 영광군건강가정다문화가족지원센터장, 영광신문 편집위원

런던 스모그 사건

1952124, 영국의 런던은 그야말로 암흑천지였다.

잿빛 하늘과 짙은 안개로 태양빛이 차단되면서 기온이 급강하하고 한 낮임에도 앞을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세상은 어두웠다.

산업혁명 이후 화석연료 사용이 급증했던 영국에서는 가정이나 산업체에서 모두 석탄을 연료로 사용하고 있었는데, 대기 중으로 배출된 다량의 미세먼지가 때마침 나타난 무풍현상과 기온역전으로 인해 외부로 빠져나가지 못하고 한 곳에 정체하면서 일어난 현상이었다.

매연과 짙은 안개가 합쳐져 스모그를 만들었으며 연기 속에 있던 아황산가스가 황산안개로 변하면서 런던시민들의 호흡기에 치명적인 질환을 가져왔다.

호흡기 장애와 질식 등으로 사건 발생 후 첫 3주 동안에만 4,000여명이 죽고 만성 폐질환으로 8,000여 명의 사망자가 늘어나는 총 12000여명이 목숨을 잃는 등 런던스모그 사건은 모든 나라에 대기오염의 심각성을 일깨우는 계기가 되었다.

기발한 미세먼지 저감대책?

사상 최악의 미세먼지가 한반도를 공습하였다.

국립환경과학원은 서울의 초미세먼지(PM 2.5) 농도가 관측을 시작한 이래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미세먼지보다도 우리의 입을 더 가리게 만든 것은 정부가 내놓은 저감대책이었다.

뒤늦게야 대통령까지 나선 정부환경대책회의에서 기발한 정책이 나왔다.

미세먼지를 저감하고자 5천억원을 들여 야외용 공기정화기를 설치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이다.

조명래 환경부장관은 기자회견에서 "서울 도심 등에 야외용 공기정화기를 일정한 간격으로 설치하면 초미세먼지가 상당히 저감될 것이라는 분석 결과가 있다"고 했다.

하지만 조장관은, 그가 성공한 예로 들었던 중국의 경우처럼 축구장 절반 크기의 공기정화기를 서울 도심 곳곳에 세울만한 부지가 있을 지와 네덜란드에 새워진 높이 7m의 스모그 프리타워의 공기정화 범위가 고작 반경 1.8m정도 밖에 안된다는 것을 간과하고 있었다.

깨끗한 공기를 마시기 위해 마스크를 벗고 좁은 원안에서 서로 다툼을 벌일 서울시민들의 모습이 측은해 보일 것 같은 생각이 드는 건 왜일까?

전문가도 놀라게 한 서울시 대책

서울시는 한 술을 더 떳다.

미세먼지를 줄이기 위해 서울시의 공공건물에 광촉매 페인트를 칠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이 페인트는 빛을 받으면 물질의 화학 반응을 촉진해 미세먼지가 달라붙었을 때 분해해서 독성을 없앤다는 것인데 페인트 성분 중 산화티타늄(TIO2)이 이런 기능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했다.

하지만 페인트의 이런 기능이 과학적으로 확실하게 입증되지 않았기 때문에 너무 즉흥적인 대책을 들고 나온 게 아니냐는 전문가들의 지적이 있었음에도 서울시는 올 10월 착공하는 중구 시네마테크에 이 페인트를 시범적으로 칠할 예정이다.

환경 전문가들은 효과와 부작용이 아직 확실히 검증되지 않은 상황에서 가성비(가격 대비 효과)는 생각하지 않고 보여주기 식으로 성급하게 정책을 내놨다고 지적을 하고 있다.

광촉매 페인트 가격은 일반 페인트의 최대 5배로 3500를 시공할 경우 1,000만원이면 될 일을 5,000만원이 들게 된다는 것이다.

서울시 건물 전체를 광촉매 페인트로 칠했을 때 들어가야 하는 천문학적인 돈을 만들기 위해 박원순시장의 말처럼 서울시에 조폐창을 따로 두어 돈을 마구 찍어낸다면 가능할 일일지도 모르겠다.

미세먼지는 서울에만?

미세먼지에 대한 국민들의 감정은 공포를 넘어 이젠 분노로 치닫고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청원이 폭주하면서 지난달 27일부터 일주일 동안 올라온 청원만도 1500개를 넘었다고 한다.

맘 놓고 숨을 쉬어보고 싶다는 호소에서 부터, 정부기관에 대한 욕설과 협박까지 청원양상은 다양하지만 이들 모두는 한결같이 미세먼지 해결책을 원하고 있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당시 임기 내 미세먼지 배출량을 30% 감축하겠다.”는 공약을 했다.

그리고 며칠 전, 정부는 미세먼지 대책으로 신규 석탄화력발전소 건설의 전면 불허와 노후 경유차 운행제한 확대, 클린 디젤 정책 폐기 등의 대책을 잇달아 내놓았다.

하지만 탈원전을 기조로 한 에너지정책의 변화가 없는 한, 미세먼지가 아닌 또 다른 곳에서 터져 나올 수도 있는 경제적인 후유증을 간과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미세먼지는 중국에서 유입되고 있다는 것이 정설인데도 정부는 중국과 협력을 강화하겠다는 원론적 입장만 되풀이할 뿐 중국에 대해 저자세로 일관하고 있는 것도 국민들의 불만이다.

또한 미세먼지는 서울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전국 어느 곳이나 매우 나쁨 정도의 미세먼지가 일상화되어가고 있는 상황인데 정부에서 내놓은 정책이라는 것이 서울 도심에 공기정화기를 세우고 건물외벽에 페인트나 바르는 참으로 기가 막힌 아이디어들뿐이다.

서울지역 외의 국민들은 소위 기득권층이 말하는 개돼지(?) 같은 중생이어서 미세먼지 정도는 마셔도 괜찮다는 얘기인지 모르겠다.

런던의 스모그가 1주일간 머문 후 4000여명의 사망자가 나오고 그 후유증으로 8000여명이 죽어갔다.

정부가 기막힌(?) 정책들을 내놓으며 이렇게 갈팡질팡하고 있을 때 우리 국민들이 소리 없이 죽어가고 있다면 이 책임을 누가 질 것인가.

중국에서 날아오는 미세먼지를 막기 위해 서해바다에 대형 천막을 치자고 제안했던 어느 네티즌의 비아냥거림이 정부의 기발한 미세먼지 대책과 오버랩 되어 씁쓸하게 들려 올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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