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와 자녀(7)

영국이 자랑하는 세계적인 기타리스트 에릭 클랩튼은 1963년 그룹 크림의 멤버로 데뷔하여, 1981‘Another Ticket’ 앨범으로 큰 성공을 거둔다. 그러나 그 이후, 히트곡을 내지 못한 채 긴 슬럼프에 빠져들었다. 그러던 중 1986년 첫 아들 코너가 태어났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술과 마약에 빠진 그의 삶은 변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아들이 노래하는 모습이 담긴 영상을 보게 됐다. 코너가 아빠에게 보내는 노래를 접한 클랩튼은 술과 마약을 끊겠다고 결심한다. 하지만 작업이 맘먹은 대로 되어가지 않자 또 다시 술과 마약에 손을 댔고, 아내는 아들 코너를 데리고 떠나버렸다.

이에 클랩튼은 아들과 다시 만나기 위해, 스스로 알코올 중독치료소를 찾아갔다. 마침내 중독을 벗어나게 된 그는 19913, 아들이 살고 있는 뉴욕 맨해튼을 찾아갔다. 아들과 해후한 클랩튼에겐 가족의 소중함을 다시 깨닫는, 행복한 시간이었다하지만 엄청난 비극이 찾아왔다. 동물원에 함께 가기로 약속을 하고 코너를 만나러 갈 준비를 하던 클랩튼에게, ‘아빠가 오길 기다리던 아들이 아파트 베란다에서 추락해 사망했다는 비보가 전해졌던 것. 아들의 죽음은 어마어마한 죄책감으로 아버지를 덮쳤다. 클랩튼은 사고 직전 아들이 보낸, 처음이자 마지막 편지를 읽었다. 그 편지에는 사랑해요.’라는 단 한 문장이 적혀 있었다. 클랩튼은 하늘에 있는 아들에게 답장을 보내기로 맘먹고, 노래를 만들었다. 바로 이 노래의 제목이 천국의 눈물이었다. 클랩튼은 아들을 그리워하는 마음과 부끄럽지 않은 아빠가 되겠다는 다짐을 이 노래 안에 담았다. 이 곡이 실린 앨범은 1992년 빌보드차트(세계 대중음악의 흐름을 알려주는, 일종의 지표) 1위에 오르는 것은 물론 2천만장 이상의 음반 판매고를 기록하며, 그를 최고의 가수 반열에 올려놓았다.

프랑스의 수학자이자 철학자인 데카르트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한 소녀를 만나 사랑에 빠졌고, 마침내 프란시느라는 딸까지 낳았다. 3년 후에는 알크마르(네덜란드 서북부에 있는 도시. 지면이 바다 표면보다 낮으며, 치즈 및 가축시장으로 유명) 가까이의 은둔처에 모녀를 데려다가 함께 살았다.

그러나 그의 딸은 다섯 살 때, 성홍열(발열과 인후통, 두통, 구토 등의 증상이 나타나는 급성 감염병)에 걸려 죽고 말았다. 이에 그는 크게 상심하여 슬픔에 빠졌다고 한다. 그는 친구에게 딸의 죽음이 인생에서 가장 큰 슬픔이라고 말했다. 이 슬픔을 견디지 못한 때문인지, 그는 숨진 딸을 살려내기위해 인형을 만들기도 했다. 그는 실제 사람과 구별하기 힘들 정도로 매우 정교하게 만들어진 그 인형을 늘 몸에 지니고 다녔다. 덴마크로 떠나는 배 위, 선원들은 그의 배낭에서 인형을 발견하고는 불길하다 여겨 바다에 던져버렸다.

평소 데카르트는 동물을 자동 기계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영혼은 오직 인간에게만 있으며, 다른 동물들은 그저 기계일 뿐이라고 보았던 것이다. 그런 그가,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고 말함으로써 철학사에 있어서 합리주의의 교조로 떠받들어지는 철학자가, 시계태엽과 금속 조각으로 죽은 딸의 대용품을 만들다니. 이 대목에서 우리는 아무리 위대한 철학자라 할지라도, 자녀(의 죽음) 앞에서는 바보가 될 수 있음을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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