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협과 농업인이 힘을 모으는 농업인 행복시대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 동심동덕(同心同德)의 자세로 농업·농촌과 함께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가는 농협들이 늘어가고 있다. 특히 청년 농업인과 다문화가족, 귀농·귀촌인이 보다 쉽게 영농활동을 영위하고 농촌에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있는 역량이 필요하다. 영광신문은 농협중앙회 김병원 회장이 제시하는 이야기들을 순차적으로 게재한다. <편집자 주>

 

희망의 출구가 되어주는 농촌

1984년 유엔 식량농업기구(FAO)는 당시 곡물 생산 능력으로 세계 인구 60억 명의 2배까지 먹여 살릴 수 있으리라고 발표했다. 물질적 생산력을 갖춘 자본주의 시대는 경제학의 아버지 애덤 스미스가 말한 보이지 않는 손의 합리성으로 인류에게 번영을 가져다준 듯했다. 인구가 증가할수록 기아 문제가 심각해질 거라는 두려움이 있었지만, FAO의 발표가 두려움을 완화해주었다.

하지만 예측은 실패했다. 식량 생산은 늘어났지만 현재도 여전히 지구촌에는 10억 명이 넘는 인구가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고, 굶주림이나 굶주림과 관련된 원인으로 하루에도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고 있다. 이 문제는 인류의 생존을 위해, 그리고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반드시 극복해야 할 과제다. 게다가 FAO에서는 현재 76억 명 인구가 2050년이 되면 100억명으로 늘고, 식량 수요도 50퍼센트 증가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농업은 인류가 존재하는 한 결코 사라질 수 없으며, 여기서 더 발전시키지 못한다면 인류 역사상 가장 심각한 문제에 처해질 수 있다.

인류의 식량부족 문제는 인구 증가뿐만 아니라 그 밖의 여러 변수들로 인해 갈수록 가중되고 있다. 이런 주제들은 최근의 영화에서도 부각되고 있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설국열차>는 칸별로 분리된 계급들의 투쟁을 그리고 있지만, 시각을 바꾸면 사람들이 왜 설국열차를 탈 수밖에 없었는지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뜨거워진 지구를 식히고자 살포한 화학물질이 지구를 빙하기로 만들었고, 가까스로 살아남은 사람들이 필사적으로 열차에 올랐던 것이다. 그런가 하면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인터스텔라>는 대기를 뒤덮은 황사 먼지와 병충해 때문에 식량 고갈 상황과 맞닥뜨린 인류가 농사를 지을 수 있는 새로운 행성을 찾아 떠난다는 설정이다.

이 영화들은 기후 변화에 대한 경고이자 잘못된 해결책을 선택했을 때 오히려 인류의 생존을 위협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실제로 지구 온난화를 비롯한 기후 문제로 세계 곳곳에서 물 부족 또는 물난리를 겪고 있으며, 이로 인해 가장 타격을 받는 부분이 바로 농업분야다. 지구촌을 위협하는 기후 변화가 식량 부족과 농산물 가격 급등, 기아 및 영양실조를 더욱 더 심화시키고 있다.

최근 세계적인 기업들은 기후 변화와 식량 부족 등으로 인해 발생한 미래 먹거리 문제에 발 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특히 현재도 세계 농식품 시장 규모가 8,000조 규모로 IT와 자동차 시장을 합한 것보다 큰데, 이 점이 매력적으로 보였을 것이다. 구글, 아마존, 소프트뱅크 등 세계적인 기업들은 이미 농업을 공략 타킷으로 삼았다.

구글이 운영하는 비밀 연구소 구글 X’의 총괄자인 아스트로 텔러는 농업이 차세대 먹거리 사업이라는 입장을 밝히면서 이렇게 말했다.

현재 농업은 규모가 최대이면서 가장 효율이 낮은 산업으로, 이를 극복하면 엄청난 기회가 열릴 것이다.”

남들이 보지 못하는 가치를 만들어온 그들의 눈에 농업은 기회의 땅이자 미래 가치의 보고로 비친다.

그런가 하면 4차 산업혁명을 통해 그동안 농업 침체의 원인이 됐던 여러 제약 조건을 극복해낼 수 있으리라는 전망이 가능해진 것이다. 그런 기대를 입증하듯 이미 스마트팜을 주력으로 하는 농업 기업들이 하나둘 늘어가고 있다. 새로운 기술과 자본이 결합한 형태로 변화될 거라는 예측들이 나오고 있다.

최근 멋지게 양복을 입고 트랙터를 운전하는 일본의 한 청년이 이슈가 됐다. 그는 직장 농업인이라는 새로운 아이콘을 구현해냈다. 전통적인 농사의 개념을 넘어 논밭을 직장으로 여기게 될 시대가 머지않은 듯하다.

이제 우리나라 청년들도 새로운 시각으로 농업을 바라보고 인식을 새롭게 해야 한다. 정부 역시 산업 분야로서 농업뿐 아니라 과학기술, 환경 등 다각적이고도 세심한 관리를 해나가야 한다. 그리고 농업이야말로 국민 모두가 소중히 가꿔가야 할 미래 산업이라는 인식을 가질 수 있도록 꾸준히 노력해야 한다.

과거 기성세대는 정 할 일이 없으면 농사나 지으러 내려가야지라고 했다. 하지만 다가올 시대는 그곳에 미래가 있으니 가서 성공을 일구어내겠다라는 신념을 갖고 농업, 농촌을 찾도록 해야 한다. 아직도 희망의 출구를 찾지 못하는 이 땅의 많은 젊은이가 미래의 블루오션인 농촌에서 당당한 삶을 만들어갔으면 한다.

 

학습된 성취감이 필요하다

20세기 자동차 산업의 선구자라고 하면 미국의 헨리포드나 독일의 다임러, 벤츠 등을 떠올린다. 그래선지 자동차가 미국이나 독일의 발명품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실제로 미국 · 독일 · 프랑스 등을 중심으로 자동차 산업이 발달한 것은 사실이지만, 자동차를 만든 나라는 다름 아닌 영국이다.

증기기관을 활용해서 차량을 만들려는 시도는 이전에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처럼 바퀴 4개가 달릴 증기자동차는 1801년에 최초로 등장했으며, 이를 만든 사람은 영국의 리처드 드레비식이다. 당시는 마차가 주된 교통수단이었지만, 시간이 지난수록 증기자동차가 대중 운송수단의 자리를 차지하게 됐다. 당연하게도 마부와 마차업자들이 큰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었다. 일자리를 잃고 산업 영역을 잃어버리게 된 그들은 변화의 흐름에 조직적으로 저항했고, 그렇게 끌어낸 법이 바로 붉은 깃발법이다.

붉은 깃발 법은 1865년에 제정되어 30여 년간 시행됐다. 이 규정에 따르면 자동차 한 대에 운전사와 기관원 그리고 붉은 깃발을 든 기수가 반드시 탑승해야만 했다. 그리고 자동차의 최고 속도는 시속6.4킬로미터, 시가지에서는 3.2킬로미터로 제한했다. 기수의 역할은 55미터 앞에서 차를 선도하는 것이었다. 이런 조치는 자동차가 마차보다 빨리 달릴 수 없게 하기 위해서였다. 이 우스꽝스럽고 시대착오적인 법 때문에 자동차라는 혁명적 수단은 결국 말보다 나은 게 없는 애물단지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로 인해 영국은 자동차산업을 가장 일찍 시작했음에도 뒤처질 수밖에 없었고, 결과적으로 독일 · 미국 · 프랑스에 주도권을 내주고 말았다. 오늘날 붉은 깃발 법은 새로운 기회를 가로막는 특정 이해집단의 그릇된 관행과 관성, 변화를 거부하는 조직의 고질병을 상징하게 됐다.

마차보다 빨리 달릴 수 없는 자동차 이야기를 먼 나라의 바보 같은 일화로만 치부할 수는 없다. 어느 시대, 어느 조직이든 변화와 혁신을 거부할 때 붉은 깃발 법 같은 시대착오적인 판단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기업의 변화관리 프로젝트를 담당해온 어느 컨설턴트는 이렇게 말했다.

“10년 전 당시의 인터뷰 기록을 보니, 지금과 똑같은 불만과 문제점들이 적혀 있었다. 그리고 그 원인들도 그때와 별반 다르지 않다.”

협동조합도 지난 수십 년 동안 변화와 혁신을 외쳐왔지만, 조합원과 국민의 눈높이에서 봤을 때 만족스러운 결과를 냈다고 자부할 수 없다. 오히려 외부의 힘에 떠밀려 변화해야 했던 가슴 아픈 역사가 있다.

변화와 혁신이 안 되는 것은 구성원들이 변화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서가 아니다. 변화를 위해 노력해봐야 크게 달라질 것 같지 않다는 비관주의와 근시안적 냉소주의가 만연하게 때문이다. 이를 두고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교의 마틴 셀리그먼 교수는 학습된 무기력이라고 했다.

마틴 셀리그먼은 원숭이를 대상으로 한 실험을 통해 이 개념을 설명했다. 연구팀은 먼저 원숭이 우리에 바나나를 매달아 놓았다. 그러고는 원숭이들이 바나나를 먹기 위해 줄을 타고 올라갈 때마다 찬물을 뿌려댔다. 여러 차례 시도해보지만 번번이 강한 물줄기를 맞고 바닥으로 떨어지자 줄을 타고 오르려는 원숭이들이 점점 줄었고, 마침내 누구 하나 줄을 타지 않게 됐다.

그 다음 연구팀은 이런 경험을 하지 않는 새로운 원숭이를 무리에 넣었다. 새로 온 원숭이는 당연히 바나나를 먹기 위해 줄을 잡으려 했지만, 우리 안에 있던 대장 원숭이가 제지했다. 새로 들어온 원숭이 때문에 다른 원숭이들까지 덩달아 찬물 세례를 받게 되리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연구팀은 원래 있던 원숭이와 새로운 원숭이를 한 마리씩 교체했고, 마침내 우리에는 직접 찬물 세례를 받아본 원숭이가 한 마리도 남지 않게 됐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찬물 세례를 받아 본 적이 없으면서도 바나나를 먹기 위해 줄을 타고 오르는 원숭이가 없었다는 것이다. 이유는 모르지만, 이들에게 우리에 매달린 바나나는 따먹으면 안 되는 대상이 돼버린 것이다.

변화에 대한 무기력감에 빠진 구성원이 늘어날수록 조직은 변화의 힘을 잃어버린다. 변화와 혁신을 위한 실행 계획들을 아무리 잘 만들어놔도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오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이 학습된 무기력 때문이다.

협동조합은 그동안 조직은 물론 구성원 역시 변화에 대한 고정관념을 떨쳐내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왔다. 기능이 중첩되는 조직을 통합했고, 불필요한 의전은 과감히 줄였다. 수직적이고 완고한 조직문화를 수평적이고 자율적인 문화로 바꿔왔으며, 직원들에게 스스로 주어진 책임만큼 권한을 주려고도 노력했다. 많은 규정과 규제가 발을 묶어 새로운 일에 도전하지 못하게 하는 건 아닌지 그간의 관행을 들여다보기도 했다. 하지만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고 하지 않았던가. 학습된 무기력을 끊어내지 못하고, 붉은 깃발 법처럼 변화를 거부하는 시스템이 여전히 작동하는 한 우리의 노력은 물거품이 될 것이다.

새로운 것을 시도하려 할 때 누군가가 그게 되겠어?”라고 한다면 그래도 해봐야지!”라고 응수할 일이다. 찬물 세례에 굴하지 않고 위로 올라가려는 시도가 필요하다. 누군가는 끝내 이겨내고 바나나를 손에 쥘 것이다. 한 사람이 성공의 체험을 보여주면 더 많은 시도가 뒤를 이을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학습된 성취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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