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떠난지 37년… 한국 민주화운동의 숨결로 남아

영광의 아들박 열사 생가 새단장기념공간과 유품 전시관 마련

내일(18)이면 5·18민주화운동이 일어난 지 39주기가 된다. 이맘때면 '5·18 주역' 영광사람이 생각난다. 1982년 광주교도소에서 광주 진상규명을 위해 40일간의 단식으로 옥사한 스물아홉 살, 전남대생 박관현.’

문재인 대통령은 2017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오월의 죽음과 광주의 아픔을 자신의 것으로 삼으며 세상에 알리려 했던 많은 이들의 희생과 헌신도 함께 기리고 싶다며 박관현 열사 등 4명을 호명했다.

국립5·18민주묘지가 1997년 완공된 이후 민주주의를 염원하는 많은 추모객이 박 열사의 묘를 찾아 그의 넋을 기렸다. 그가 떠난 지 37년이 흘렀지만 한국 민주화운동의 숨결로 오롯이 남아 있다.

박 열사가 숨을 거둔 지 며칠 후 미국 중앙정보국(CIA) 한국지부는 기밀문서를 본국으로 보냈다. 박 열사의 죽음이 가져올 한국 학생운동의 변화를 분석한 자료였다. 광주교도소에 수감된 전직 학생 지도자의 죽음은 대학생들의 반정부 시위를 촉발했고, 정부가 죽음에 대한 믿을 만한 증거를 내놓지 않는다면 전국 학생들의 새로운 비난에 직면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또 한국의 학생운동은 박 열사 이후로 상징되는 이른바 광주세대(Kwangju generation)’가 주도할 것이며 광주세대가 한국 정치발전에 매우 중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분석했다.

최용주 5·18기념재단 연구원은 광주세대는 한국의 민주화를 이끈 19876월 민주항쟁 세대를 의미한다고 말했다.

역사학자인 이종범 한국학호남진흥원장(65)박 열사의 민주화 발자취는 1980년대 한국 학생운동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 밝혔다.

박 열사의 뜻을 계승하기 위해 1985전남대 80총학동지회가 결성됐다. 동지회는 이후 ()관현장학재단을 만들어 학생 30명에게 장학금 17000만 원을 지급했고 추모 사업을 펼치고 있다. 박 열사의 고향인 전남 영광군 불갑면에는 추모비가, 모교인 전남대에는 박 열사 혁명정신 계승비가 세워졌다.

영광군 불갑면 쌍운리 생가에는 현재 아무도 살지 않는다. 영광군은 2017년 박 열사 생가에 기념관 건립을 추진하다 예산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영광군 관계자는 정부에 기념관 건립 지원을 요청했는데 반영되지 않아 일단 군 예산으로 설계 용역비용을 마련했다고 말했다.

유족들도 아직 풀지 못한 한이 남아 있다. 박 열사의 법적 명예회복을 위해 2013년 광주지법에 청구한 재심이 기각됐기 때문이다. 박 열사는 198045월 시위를 벌인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피고인에 대한 판결은 2심에서 공소기각 결정이 나면서 1심 판결이 효력을 잃어 재심 청구의 대상이 아니다라고 판단했다.

박 열사는 2심 재판 진행 중 숨져 공소가 기각돼 원심의 효력이 상실됐다는 것이었다. 이에 정치권에서 박 열사의 명예회복이 가능하도록 5·18특별법 개정안을 발의했으나 통과되지 못했다.

박 열사의 셋째 누나 행순 씨(70)문 대통령이 민주·인권·희생의 5·18정신을 실천하는 것을 보고 동생이 원하던 세상이 됐다는 생각에 눈물이 났다. 신군부의 혹독한 탄압으로 숨진 동생의 법적 명예가 회복되지 못한 것은 가슴 아프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한편 영광군은 지난 해 박관현 열사의 생가를 구조 변경을 통해 생가 내부에 기념공간과 유품 전시관을 만들고, 5.18 관련 자료를 전시할 계획이다. 생가 새 단장이 완료되면 주변 불갑사 관광지와 연계하는 답사 프로그램도 운영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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