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일순/ 사진가 수필가

재벌이란 명사가 한국에만 있다는 특이함을 차치하고라도 그들의 역할론은 상당히 회의적이다. 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물론 본받을 대상에서 상당히 벗어나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정부가 들어선 이래 70여 년을 권력과 결탁하고 특권층끼리 겹사돈을 맺으며 튼튼한 기반을 다져온 부류가 현재 우리나라에서 소위 재벌이라 불리는 사람들이다. 대기업의 역할을 철저히 외면하고 자신들의 부와 명예만을 좇아 평생을 바친 사람들이 내세운 알량한 명분이 애국이었으니 조금은 당황스럽지만 그것을 수단으로 제시한 당사자는 바로 정부였다. 그래서 우리는 코흘리개 유소년시절부터 우리 기업의 물건을 사주는 것이 애국이라는 세뇌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성인이 되고 중년이 되었다. 그리고 대한민국 재벌의 탐욕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얼마 전 삼성바이오의 분식회계 사건은 다시 재벌들의 진면을 보여주기에 족했고 우리 대기업의 부도덕성과 권력의 이동, 재산의 흐름을 학습시켜 주었다. 산중 절간에서 수행만 힘쓰는 고승에게 스님은 높은 수행을 쌓았으면서 세상에 나가 중생을 계도하는 일은 하지 않으십니까?” 물었더니 산중 수행이지만 덕이란 자연스럽게 산 밑으로 흘러 들어갑니다.”고 답했다. 김수환 추기경이 그랬고 성철 스님이 그랬다. 가르침으로 계도하지 않고 존재만으로 국민의 지침서가 되었고 지주가 되었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거창하게 애국은 아니더라도 국민들의 마음을 모아 부를 쌓았으면 산 밑의 중생에게 교훈이 흘러내리듯 부 역시 흘러내려야 한다. 하지만 넘치는 요소요소에 가족들이 다시 그릇을 받쳐놓고 경제적 흐름을 받아먹는 문어발 구조를 만들어 이른바 재벌가를 형성하고 있으니 이미 존경과 존중의 대상은 아니다.

며칠 전 미국에선 재벌이 통 큰 기부를 해서 화제다. 주인공은 로버트 스미스라는 억만장자로 조지아주 애틀랜타 소재 모어하우스 컬리지 졸업식에서 졸업생 전체가 빌려 쓴 학자금 478억 원을 모두 갚아주겠다는 발언으로 식장을 흥분의 도가니로 만들었다. 특히 빚 걱정 말고 세상에 나가서 일을 하라.”는 그의 발언은 세계를 감동시켰다. 미국과 별반 다르지 않은 우리 대학의 학비융자금 제도는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초년생들을 빚쟁이로 만들고 있지만 그들의 현실일뿐 사회는 물론 국가에서도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리고 웬만한 유명 대학은 기업에서 인수해 장사의 대상으로 만들어버렸다. 학비는 천정부지로 치솟고 비인기 학과는 폐지하고 있다. 돈벌이가 안 되기 때문이다. 우리 기업의 참 얼굴이다. 왜 우리나라 기업인들 중엔 로버트 스미스 같은 사람이 없는 것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한국에서 돈을 버는 방법의 노하우를 부도덕성에서 찾아야하기 때문이다. 간단한 예로 고위층 임명 청문회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의 필수 과목이 바로 불법이다. 한국에서 기득권자가 되는 방법은 바로 비정상적인 삶이다. 아무리 일을 해도 정상적인 노동으로는 부를 쌓지 못한다. 때로는 불의와 타협을 하고 자신의 양심을 최대한 합리화시켜야 한다. 노동의 대가는 작고 비루하지만 불의와의 타협은 크고 달콤하다. 풀어서 말하면 재벌과 특권층 축재에는 정상이 없다는 것이고 바른생활 인간도 없다는 뜻이다. 한국에서 로버트 스미스가 나오지 않는 이유다.

박근혜 당시 후보의 가장 큰 공약은 반값 등록금이었다. 솔직히 믿지 않은 사람들도 많았지만 중도보수층의 표심에는 많은 영향을 끼쳤다. 결국 허언으로 끝나고 등이 휘는 서민층의 실망은 터진 풍선이 되었다. 기업이 장악한 우리 대학의 등록금은 세계에서 유래를 찾기 힘들 정도지만 정치인들은 의연하다. 교육은 나라의 미래다. 그래서 뉴욕대 의과대학은 모든 학생들의 등록금을 면제해주고 있으며 미국은 학자금보조제도가 잘 운용되고 있다. 유럽은 우리처럼 대학생이 상품이 아니다. 부도덕이 정치를 지배하는 한 이러한 현상은 조금도 바뀌지 않을 것이다. 정치인에겐 한 표의 대상이고 기업인에겐 돈벌이의 대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우리 젊은이들에게 유명 작가는 청춘이니까 아프다고 세뇌를 한다. 아프게 만든 원인 제공자가 누구인지 잊게 하는 것이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속이지만 고래의 춤은 먹이를 얻기 위한 필사의 몸부림일 뿐이다. 타협과 결탁은 비정상적인 사회를 만들고 이러한 사회는 다시 부정한 기득권을 창출한다. 이들이 가장 선호하는 수단과 방법은 속임수를 위한 세뇌이다. 그래서 한국의 재벌에겐 통 큰 기부가 없다.

저작권자 © 영광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