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희/ 여민동락공동체 일꾼

인간사회는 원전사고에 대처할 수 없다. 그 재앙적 파괴력 앞에서는 인간이 지금껏 쌓아올린 과학기술문명도 힘을 잃는다. 이번에 발생한 한빛원전 1호기 열출력 사고는 까딱하면 체르노빌 폭발사고와 같은 대재앙이 일어날 수도 있었던 아찔한 사고였다. 원전 사고의 파괴적 위험성에 비해 단순 조작 실수였다는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의 해명은 무책임하고 어이없다. 심지어 언론과 환경단체가 공포를 조장하고 부풀린다면서 강경 대응을 하겠다는 식으로 엄포를 놓기도 했다. 국민적 불안과 비난여론이 거세지자 결국 한수원측은 원인 규명과 재발방지대책이 이루어지기 전까지는 1호기의 가동을 중단하겠다고 발표했다. 영광 한빛원전 1~6호기는 현재까지 공식적으로 확인된 것만 총 173건의 사고와 고장이 있었다. 크고 작은 문제가 끊이지 않으니 한빛원전에는 '누더기 원전'이라는 별칭이 따라다닌다. 사고의 위험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날 수 있는 근본적인 대책이 없고서야 항시 불안감을 안고 살아야 하는 상황이다.

내가 사는 집은 한빛원전으로부터 30km 정도 떨어져 있는데 '방사선비상계획구역' 안에 들어간다. 만약 한빛원전이 폭발하기라도 한다면 즉각적인 대피와 소개가 이뤄지는 지역이다. '방사선 비상'이란 원자력 시설에서 발생할 수 있는 여러가지 사고와 고장 중 방사능 물질이 외부로 누출되거나 누출될 우려가 있는 사고 상황을 말한다. IAEA(국제원자력기구)에서 설정한 '비상계획구역'은 긴급보호조치를 위한 대책 마련을 위해 설정하는 구역이다. 원전에서 반지름 35km'예방적 보호조치구역', 원전에서 반지름 530km'긴급보호조치 계획구역'으로 정하고 있다. 원전 사고 발생 시 대피 구역은 정해져 있지만 방사능 물질이 공기를 타고 퍼져 나가는 것을 인위적으로 막을 방법은 사실상 없다. 영화 '판도라'를 보라. 이 좁은 땅덩어리에서 방사능 피폭을 피해 안전한 곳으로의 대피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정말로 체르노빌 사태와 유사한 사고가 눈앞에서 터진다면 어찌될 것인가. 숨이 막힐만큼 끔찍하다.

1986426, 12358. 벨라루스 국경에 인접한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사고는 전쟁 위의 전쟁이었다. 210개부대 34만명의 군인이 안전보호 장비도 갖추지 못한 채 사고 수습에 동원됐다. 삽을 들고 원자로 지붕에 올라간 이들의 귀와 코에서는 피가 흘렀다. 러시아 환경 단체에 따르면 체르노빌 사고로 인해 무려 150만명이 사망했다고 한다. 사고 후 벨라루스는 485개 마을을 잃었다. 그 중 70개 마을은 땅 속으로 영원히 매장됐다. 벨라루스 국민의 5분의 1이 현재 오염된 지역에 거주하고 있다. 오염지역 거주민 210만명 중 어린이가 70만명이다. 벨라루스 국민의 주요 사망원인은 방사선 피폭이다.

고방사능 입자란 뜨거운 원자로에 납과 모래를 뿌릴 때 생성되는 미립자다. , 모래, 흑연의 원자가 합쳐져, 충격으로 공기 중에 높이 떠 위로 올라갔다, 멀리 떨어진 곳까지 날아갔다. 수백 킬로미터를... 기관지를 통해 인체 내로 흡입된다. 특히 트랙터나 트럭 운전기사, 즉 밭을 갈거나 시골 길을 달리는 사람들이 많이 죽는다. 이 입자가 침투하는 기관은 사진을 찍으면 ''이 안다. 가루체처럼 구멍이 수백개 뚫려 있다. 사람이 죽어간다. 타간다. 사람은 영원하지 않지만 고방사능 입자는 죽지 않는다. 사람은 사망 후 1천 년이 지나면 흙으로 돌아가지만 '불타는 입자'는 계속 살 것이다. 그리고 이 먼지는 또 다시 누군가를 죽일 수도 있다.”- <체르노빌의 목소리> 중에서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는 <체르노빌의 목소리>에서 "두려움만이 우리를 가르칠 수 있다"고 했다. 핵발전소 사고가 가져온 재앙의 실체를 확인하고 되새기는 작업만이 안전불감증에서 벗어나 사태를 제대로 볼 수 있다. 그는 체르노빌은 과거에 관한 이야기이지만 미래를 닮았다고 했다. 대형 참사 앞에서 '어디'를 묻는 것은 부질없다. '나는 괜찮겠지' 하는 생각은 더더욱 의미가 없다. 미시적이고 개인적인 차원의 노력만으로는 절대로 핵 위험에서 벗어날 수 없다. 적어도 핵 앞에서는 내 이웃이 위험한데 나만 안전할 수 있는 길이란 없다. 핵 위험과 방사능 공포는 그만큼 광범위하고 치명적이다. 첫번째는 체르노빌, 두번째는 후쿠시마였다. 세번째는 어디가 될 것인가? 대한민국이 되지 말란 보장이 있는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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