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일순/ 사진가 수필가

갑작스러운 북미 정상의 만남으로 나라가 들썩였다. 예상하지 못했던 조우가 한 시간을 넘어 북미정상회담으로 평가되었다. 일대 사건이다. 그래서 폄훼하기 좋아하는, 할 수밖에 없는 한국당 일부에선 라는 말까지 나왔다. 이렇게 대한민국은 미국의 일거수일투족에 민족의 운을 걸고 있다. 심하게 꼬집는 사람들은 미국을 아버지에 중국을 어머니에 비유하기도 한다. 사이가 좋지 않은 부모 사이에 끼어서 누가 좋니?’의 유아적 등거리 외교를 하고 있는 슬픈 현실을 말하는 것이다. 열강들 사이에서 긴장의 끈을 조금이라도 늦추면 추락할 것만 같은 불안정한 국정에서, 그나마 보수답지 않은 보수와 진보답지 못한 진보가 뒤엉켜 체면을 불사하고 싸우고만 있으니 답답하기만 하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소위 진보진영에서 주장하는 현 정부의 사대주의 논란이다. 중국 사대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자신들의 마음엔 미국이 어떠한 대상인지 전혀 고려치 않고 있다. 애국을 주장하며 거리에서 농성을 하고 있는 사람들, 그들의 손에 들린 미국의 성조기는 바로 그들의 마음이다. 정확하게 미국 사대주의다. 그러면 미국을 향한 사대사상이 이들에게 국한 되는 것일까. 전혀 아니어서 문제다. 우리 생활 바닥까지 너무 깊게 침전한 미국 사대주의는 심지어 우리의 경제까지 파고 들었다. 예전의 토플과 토익시험이 대표적이다. 우리 국민이 영어를 배우기 위해서 투자하는 경비를 계산해 보면 입이 벌어진다. 왜 사용하지 않는 사람들에게까지 강제로 배우게 하고 우리말인 국어보다 더욱 많은 학과 시간을 배정하고 있는지 궁금해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우리민족은 과거 고려시대까지만 해도 당당했다. 고구려는 중국의 시각에선 잔인하고 교만할 정도로 막강한 나라였고 고조선은 중국의 본토에서 중심이었다. 비록 친일사학자들이 그들 스승의 학설을 이어 고조선을 북한의 일부 지역으로 우겨넣었지만 중국의 1차 사료에서는 분명히 이를 부정하고 있다. 오히려 우리 사학자들만 북한 한사군설을 굳게 믿고 있으니 신기한 일이다. 이런 자존감이 비록 인조의 삼전도 굴욕으로 무참히 무너졌지만 거대한 세력에 굴하지 않고 마지막까지 항전했던 그들의 기개를 우리는 안다. 이렇게 전락한 민족적 자존감은 원나라의 부마국으로 추락하며 모든 관제와 법제, 심지어는 머리까지 그들을 따랐다. 원에서 내린 벼슬을 받고 그들의 언어라도 소화를 해야 지식인 대우를 받았다. 사대주의의 시작이다. 조선은 명나라를 아버지 섬기듯 했고 망해가는 명을 위해 국운까지 걸었다. 의리라는 대의를 명분으로 삼았지만 국제정세를 전혀 살피지 못했던 정치인들의 무지함이 근원이었다. 대신들은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시대적 흐름을 모르고 명에 충성했을 뿐이다. 이들이 사대당파를 만들고 중심엔 노론이 있었다. 살아남기 위한 다툼엔 국가보다 중국의 학문적 사상이 중했던 사람들, 그래서 조선의 선비들은 사문난적(斯文亂賊)이라는 말을 가장 두려워했다. 이들이 지성인이 되는 방법은 중국을 유학하고 중국에서 학문을 배우고 중국의 문물을 익힘은 물론 언어라도 소통이 되는 것이었다. 이완용과 송병준 등이 노론의 마지막 장식을 일본에게 나라를 넘기는 것으로 마감하고 사대는 일본으로 넘어갔다. 다시 일본 유학의 열풍이 터지고 일본말이라도 할 줄 알아야 시대적 지식인으로 대우를 받는 세상이 되었다. 그리고 1945년 미국의 군정이 시작 되면서 그 사대는 미국으로 급속하게 바뀌었다. 이젠 영어를 잘 하면 지식인으로 대우를 받는 세상이 도래한 것이다. 그래서 교육당국은 3대 주요 교과목을 국영수로 만들었고 영어의 교습시간은 가장 중요하게 자리를 잡았다. 소위 글로벌 시대라는 미명으로 영어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영어를 하지 못하면 국제사회 진출이 어려운 것처럼 협박을 하지만 모두 거짓이다. 사실이라면 프랑스 같은 나라는 이미 국제 왕따가 되었어야 옳을 것이다. 외국어는 필요한 사람이 배우는 것이다. 우리처럼 국민 전체가 자국말보다 영어를 더욱 열심히 배우는 나라는 없다. 거리의 간판은 더욱 심각하다. 뿐만 아니라 요즘 나오는 가수들 이름 또한 가관이다. 우리말은 촌스럽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 하지만 한국의 가수로 가장 성공한 젊은이들의 이름은 방탄소년단이다. 굳이 BTS라는 영문식으로 바꿔 부르는 사람들의 머릿속이 바로 사대주의다. 현 정부를 중국의 사대주의자로 몰아가는 수구들의 생각은 아직도 조선시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먼저 자신들을 추종하는 세력의 손에서 미국 국기를 내려놓게 함이 순서다.

저작권자 © 영광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