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일순/ 사진가 수필가

요즘 중앙 정가를 보면 온통 내 말 잔치로 도배를 하고 있다. 상대의 의견이나 말은 전혀 인정하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공격의 대상으로 삼는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을 가장 신뢰하고 믿지만 그렇게 신뢰하고 믿는 자신도 상대편에선 다시 상대일 뿐이다. 특히 정치판에서의 우김은 자신의 눈과 판단을 절대 벗어나지 않으니 문제다. 그나마 한 걸음 물러나서 세상을 보던 합리적인 정치인은 극단적 선택을 했다. 노무현과 노회찬 그리고 정두언이다. 개인적으로 이들의 공통점을 결백증에서 찾아본다. 평생 소신을 위해 살았고 최선의 노력을 했던 사람일수록 단 한 번의 실수나 모욕을 견디지 못하는 것이고 보면 이들의 선택이 조금은 이해가 간다. 며칠 전 노회찬 전 의원의 기일에 많은 창원 시민이 시내에 갖춰진 추모 천막을 찾았다고 한다. 국민의 눈으로 세상을 보려 노력하는 정치인은 진실하다.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을 외칠 자격이 있다. 세상을 자신의 눈과 판단에만 맡기는 요즘 정치인들이 본받아야 할 인물이다. 굳이 정치판이 아니어도 편협한 사례는 주위에서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거의 모든 사람은 자신을 판단의 기준치로 삼는다. 흔한 표현에 아는 만큼만 보인다.’는 말이 있다. 이보다 적절한 표현은 없다. 자신이 터득한 지식의 위는 파악이 힘들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은 모든 판단을 자신의 관점에서 내린다. 자기보다 우월한 상대는 보지 못할뿐더러 인정하기 힘든 구조가 현대인의 맹점이다. 다른 말로 설명하면 착각으로 사는 사람들이다. 만일 이러한 착각이 없다면 얼마나 우울할까. 병이요 약이다.

일부 야당 의원들이 최근 이러한 현상의 전형을 보이고 있다. 모든 정세를 개인의 눈으로 보고 개인이 판단을 내린다. 심지어 상대 행동의 의미도 자신이 해석하고 결론까지 짓는다. 여기에 모든 분쟁 사안을 자신의 논점으로 끌어들이면 말이 통하지 않는다. 최근 60대 여성 택시기사를 추행한 교감의 해임건의안이 법원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판사는 택시기사가 나이와 사회적 경험이 많아 충격을 그다지 받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에 기각한다고 밝혔다. 여성 택시기사가 받았을 모멸감과 수치심을 판사가 알아서 판단한 것이다. 이젠 남의 감정까지 관여를 하는 세상이 되었다. 일부 야당 의원들 역시 자신의 눈으로만 모든 사안을 보고 판단한다. 온 국민이 일본의 수출규제에 분노하고 일전을 불사하고 있을 때도 그들은 오히려 자신이 속한 정부를 공격하고 친일론빨갱이론으로 본론을 호도하기에 여념이 없다. 이른바 정부 탓이다. 100년 전 일제강점기로 들어가던 시대의 노론 일당과 소름이 끼치도록 닮았다. 이유는 간단하다. 세상을 보는 방법이 같기 때문이다. 모든 판단의 오류는 생각이 자유롭지 못하다는 데에 있다. 왜 판단과 결정을 자신의 관점으로만 꽁꽁 묶어 놓는지 이해가 힘들다. 결국 국민의 대다수 분노가 자신들을 향하고 있다는 사실 조차도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다. 나름 제시한 애국의 방법이 일본을 편들고 있다는 현실을 눈치 채지 못하고 있는 그들이 소위 대한민국의 보수 세력이다. 이젠 김문수 전 도지사가 친일론까지 들고 나왔다. 그리고 중앙 유력지 정치평론가는 친일파를 앞세워 이번 한일관계를 타파하자고도 했다. 그래서 닫힌 주관은 무서운 것이다. 올바른 판단은 물러섬에 있다. 한 발만 뒤로 물러서서 관찰하면 글자가 아니라 문장을 볼 수도 있겠지만 욕심이 물러섬을 용납하지 않는다. 어디 정치인뿐이겠는가. 각 분야에서 활동하는 일반인들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상대를 조금도 인정할 수 없음은 물론 깎아내리기에 여념이 없다. 특히 실력이 얕을수록 증상은 심하다. 이른바 자격지심이다. 이렇게 생각은 굳어지고 내면에 옹벽을 쌓는다. 그래서 상대가 하는 행동이나 말은 무조건 반대다. 공부 능력이 없으니 아는 게 없지만 자신에 대한 무한신뢰는 모든 것을 덮어준다. 판단의 절대적 오류다. 모든 분야에서의 노력을 우리는 공부라고 부른다. 중국말로는 무술로 알고 있는 쿵푸. 공부의 정의는 알아가는 것이지만 오히려 욕심을 덜어내고 겸손해지는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노자는 위학일익(爲學日益/학문은 날마다 쌓아가는 것이요) 위도일손(爲道日損/도는 날마다 비워내는 것이다)이라고 했다. 공부란 내가 모르는 것이 많다는 것을 깨우쳐 가는 과정이다. 아이들은 어른이 고개를 숙여주기 전에는 정수리를 보지 못한다. 숙여주는 마음을 모르니 아이들이 자만하는 것은 당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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