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구현/ 시인

‘1884년 여름, 영국 선원 네 명이 작은 구명보트에 탄 채, 육지에서 1,600킬로미터 떨어진 남대서양에서 표류하고 있었다. 이 보트에는 선장 토머스 더들리, 일등 항해사 에드윈 스티븐스, 일반선원 드먼드 부룩스가 타고 있었다. 그리고 네번째 승무원은 심부름과 잡일을 하던 열일곱살 소년 리처드 파커였다. 중략. 파커는 구명보트 한 쪽에 누워 있었다. 바닷물을 마시다가 탈이 났기 때문이다. 중략. 고통 속에 하루하루를 보내던 19일째 날, 선장 더들리는 다른 사람을 위해 희생할 사람을 제비뽑기로 정하자고 했다. 중략. 더들리는 기도를 올리고, 파커에게 때가 왔다고 말한 뒤 주머니칼로 파커의 목에 있는 정맥을 찔렀다. 그렇게 세 남자는 파커의 살과 피로 나흘을 더 연명했다. 중략. 이윽고 구조의 손길이 나타났다. 더들리는 당시 상황을 일기에 놀라운 완곡 어구로 표현했다. 24일째 되던 날, 아침 식사를 하고 있는데, 드디어 배가 나타났다. 생존자 세 명 모두가 구조되었다. 이들은 영국으로 돌아가자마자 체포되어 재판을 받았다. 브룩스는 검찰측 증인으로, 더들리와 스티븐스는 피고인으로 재판정에 서게 되었다. 이들은 파커를 죽이고 그를 먹은 사실을 순순히 자백했다. 그리고 어쩔 수 없었노라고 주장했다.

당신이 판사라면 어떤 판결을 내리겠는가? 마이클 샌델. ‘Justice:정의란 무엇인가중에서. 그리고 샌델은 상황을 단순화 시켜 법의 문제는 논외로 하고 그 소년을 죽인 짓이 도덕적으로 허용될 수 있는 행동인지만 결정하면 된다고 가정을 한다. 피고 측이 주장한 바, 병에 걸려 쇠약해진, 곧 죽을 상황에 있었던 파커였고, 더들리나 스티브와는 달리 그에게는 부양할 가족도 없거니와 그가 죽는다 하더라도 살길이 막막해지거나 슬퍼할 아내도 없기에 파커를 죽여서 그를 식량 삼아 세 사람을 살릴 수밖에 없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강변한다. 이에 대해 샌들은 두 가지 반론을 제기한다. 첫째, 파커를 죽여 얻은 이익이 희생보다 정말로 컸는가? 에 대한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는 점과, 둘째, 모든 것을 고려해 볼 때, 그 이익이 희생이라는 비용보다 크다고 하더라도, 무방비 상태의 파커를 죽여서 먹는 행위는 사회적 이익이나 비용을 계산하기에 앞서 결코 용납될 수 없다는 느낌을 여전히 지울 수 없지 않은가? 라는 의문을 제시하며, 구명보트 사건을 바라보는 두 가지 사고방식은 정의에 대한 서로 다른 시각을 보여준다고 문제 제기를 한다.

어떤 행위든 그 행위가 초래하는 결과에 전적으로 달려 있다는 주장과, 도덕적으로 볼 때, 결과가 전부는 아니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어떤 권리가 그토록 기본적인 것이라면, 타고난 권리든, 신성한 권리든, 빼앗을 수 없는 권리든, 절대적 권리든 간에, 그것을 어떻게 가려낼 수 있는가? 그리고 그것들이 기본 권리인 이유는 무엇인가? 라는 문제 제기를 하며 공리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그 것에 반하는 어떠한 희생도 감수해야 한다는 제레미 벤담의 공리주의론 까지도 반박한다. 다수의 행복을 위해서라도 죄 없는 아이의 인권을 침해하는 행위는 잘못이다는 것이다.

조국 법무부 장관 한명을 임명하는 데서부터 임명이 끝난 후 까지도 한달 이상 온 나라가 시끄럽다. 국론은 극도로 양분되어있다. 정치적으로 이해관계에 얽힌 사람들은 자신들의 입장에서 이런 소란쯤이야 자신들의 기득권을 위해 감수할 수 있겠지만 일반 대다수 국민들은 피곤하다. 도대체 정의가 무엇이고 자유가 무엇이며 평등은 어떻게 가능할 수 있을까? 그리고 도덕과 양심의 기준은 무엇인가? 헷갈리게 하는 조국 논란. 그 헷갈림의 혼란스런 터널을 빠져나올 수 있는 방편으로 마이클 샌델의 저서 정의란 무엇인가?’중 극히 일부이지만 장문을 인용해보았다. 이제 그 논란의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조국 논란은 법의 문제가 아니다. 도덕이나 양심의 문제도 아니다. 그 것들의 가치를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의 문제인 것이다. 자유·평등·정의·도덕·양심 등이 현 정권의 힘이었고 국민들로부터 지지 기반이었다. 그러한 가치 기준은 도대체 무엇인가? 문재인 대통령과 조국 장관이 국민들에게 답해야 한다. 검찰 개혁에 대해 반대할 국민은 거의 없다. 그러나 검찰개혁을 강조하는 조국 장관의 행보를 보면 진짜 검찰 개혁을 하고자 하는 것인지? 검찰 길들이기나, 검찰을 정권의 꼭두각시화 하려는 것인지? 의구심을 떨쳐버릴 수 없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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