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일순/ 사진가 수필가

다시 막말과 욕설로 시끄럽다. 국감장에서 벌어진 국회의원 나리들의 이야기다. 솔직히 지겹다. 이젠 전 국민에게 노출된 국감장에서 막말을 뛰어넘은 욕설까지 터져 나왔다. 끄지 않은 마이크를 타고 나왔으니 전국에 생방송 된 셈이다. 보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SNS는 친절하게 퍼 나르기를 하고 있다. 의구심은 이들의 진정성이다. 과연 진심으로 소리를 지르고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는 것인지 지역구의 유권자를 대상으로 벌이는 퍼포먼스인지 구분이 어렵다는 말이다. 주위에서 겪은 사람들의 말로는 그 자리를 벗어나면 서로 웃고 다정하게 농담까지 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한다. 역겨운 국민의 시선은 이들에겐 없는 것 같다. 당장 세간의 관심은 끌겠지만 본인 이미지의 재고는 뒷일로 치는 모양이다. 정치인의 퍼포먼스는 예전에나 먹혔지 지금은 아니라는 것을 본인들만 모르고 있다. 그만큼 국민의 향상된 의식을 아직 따라오지 못하고 있다.

옛날부터 남자의 3가지 금기는 3뿌리를 조심하라는 것이었다. 한 가지는 여성에게 해당되진 않지만 남녀를 불문하고 가장 중요한 것이 혀뿌리라는 것은 다르지 않다. 고전을 읽다보면 설화(舌禍)’를 많이 접할 수 있다. 쓸어 담을 수 없는 것이 말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지만 그래서 극히 조심하는 사람은 의외로 드물다. 사람이 스트레스를 가장 많이 받는 대상이 바로 당사자인 사람이다. 바로 말 때문이다. 가리지 않는 말과 상대의 기분을 고려하지 않는 화법은 모든 스트레스의 근원이다. 혀로 비롯되는 화는 때로 목숨과 관련되기도 한다. 중국 전당서 설시(舌詩)편에 들어봄직한 유명한 시구가 있다. “입은 재앙을 여는 문이고, 혀는 자신을 베는 칼이니, 입을 닫고 혀를 깊숙이 간직한다면, 어디서나 몸이 편하리라.”라는 시다. 당이 망한 뒤 후한 등의 여러 왕조에서 재상을 지낸 풍도에게 처세술을 묻자 지어준 시구다.

아무리 말의 중요성을 강조해도 통하지 않는 부류가 바로 정치권이다. 요즘에도 쏟아져 나오는 막말이 너무 많아 거론이 무의미할 정도다. 심지어 국감장을 비롯한 공적 장소에서 터져 나온 욕설 파문은 SNS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말은 곧 자신이라고 했다. 항상 화내는 사람의 이미지와 웃는 사람의 이미지는 확연히 다르다. 인상도 달라진다. 화를 내더라도 품위가 있어야 하는 까닭이다. 이럴 때 쓰기 위해 인간에겐 이성이라는 것이 있다. 중학교 교과서에서도 얼음처럼 차가운 이성을 가르쳤고 우리는 그것을 배우며 자랐다. 이상한 것은 참지 못하는 부류다. 좋은 학벌을 보유하고 높은 사회적 위치와 권력을 점하는 순간부터 이성은 반감된다. 참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고운 말씨를 구사하지 않아도 된다. 그야말로 특권층의 특권이다. 이들이 장악한 사회의 뒤안길에는 가 없다. 모든 식물은 씨앗에서 나오고 모든 인성은 말씨에서 나온다. 글에도 씨가 있고 마음에도 씨가 있다. 특권층은 중요한 씨를 망실했다. 흥미로운 것은 씨가 없는 사람들이 항상 사회를 지배하고 흐트러뜨린다는 것이다. 그리고 흐트러진 사회를 다시 원점으로 다잡아가는 층은 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바로 우리들이다. 그들이 개와 돼지로 취급하는 주위의 우리들인 대다수의 서민들이 사회정화의 허브가 되고 있다는 사실이 참 아이러니하다.

요즘 사회를 보면 두 부류다. 거짓을 사실화해서 속이려는 사람과 거짓의 융단폭격에서 조금의 사실이라도 밝히려는 사람의 부류다. 전자는 사익을 추구하고 후자는 공익을 추구한다는 것만 다르다. 입으로 나오는 것은 설화(舌禍)요 글에서 나오는 것은 필화(筆禍). 앙상블을 이루는 쌍화(雙禍)는 사회적 정의를 구정물 통으로 몰아넣고 있다. 여기에 매일 터져 나오는 정치인들의 막말과 욕설은 이미 도를 넘었다. 국민의 대표로 법을 만드는 기관이 너무 저질이다. 그리고 가장 법을 지키지 않는다. 자신들이 입법기관이니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심기가 깔려 있는가 싶다. “()은 입으로 들어오고 화()는 입에서 나온다.”고 했다. 은나라 마지막 왕족 비간(比干)은 혀를 함부로 놀려 심장에 일곱 개의 구멍이 뚫렸고 사기를 쓴 사마천은 궁형(去勢)의 치욕을 당했다. 특히 기득권의 거짓말은 심각한 사회적 병폐다. ‘일언부중 천어무용(一言不中 千語無用:한마디 말이 맞지 않으면 천 마디가 무슨 소용인가)’이다. 설화(舌和)가 필요한 시기다. 혀로 받은 스트레스를 풀어주는 것도 역시 혀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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