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봉주/ 영광군건강가정다문화가족지원센터장, 영광신문 편집위원

중국 서주(西周)의 마지막 왕인 유왕(幽王)시절의 일이다.

부왕(父王)인 선왕(宣王)의 재임기간동안에 백성들 사이에서는 산뽕나무 활과 대나무 전통이 나라를 망하게 한다.”는 동요가 크게 유행하고 있었다.

어린아이들로부터 시작된 노래가 걷잡을 수 없이 퍼져 나가자 조정에서는 이 동요를 법으로 막았으며 산뽕나무로 만든 활과 대나무로 만든 전통(화살통)의 제작 및 판매도 전면 금지시켰다.

하지만 기울어가는 국가의 운명이 법으로 막는다고 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었다.

주나라 궁궐창고 한 구석에는 천 년 전인 하나라 말기부터 용의 침을 담아 보관해 왔다는 비밀상자가 하나 있었다.

돈이 궁했던 선왕이 상자를 열어서는 안된다는 금기를 깨고 강제로 열게 하자 그 침이 도마뱀으로 변하더니 일곱 살 난 궁녀의 몸속으로 들어가 버리고 말았다.

그 궁녀는 환갑을 바라보던 나이가 되어서야 딸아이를 낳았는데 부끄러운 생각이 들어 아기를 성 밖에 몰래 버렸다.

그 무렵 활과 전통을 만들어 팔던 한 시골부부가 있었다.

그들은 산뽕나무 활과 대나무전통을 파는 것이 불법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 체 성안에 들어가 장사를 하다가 포졸에게 쫓기던 중에 성 밖에 버려진 아이를 발견하고는 데려다 키우게 되는데 그가 후에 나라를 파국으로 몰아넣은 경국지색의 미모를 갖춘 포사였다.

갈등이 불러들인 오랑캐

선왕의 뒤를 이은 유왕 2(기원전 781), 중국의 포지방에 대지진이 일어나자 세금을 바칠 수 없었던 지방태수는 대신 여인들을 진상품으로 바쳤는데 그 중에 산뽕나무화살 시골부부가 데려다 키운 포사가 끼어 있었다.

좀처럼 웃지를 않았던 포사는 주색에 빠져있는 유왕의 애간장을 태웠다.

그녀의 유일한 취미는 비단 찢는 소리를 즐기는 것이었는데 비싼 비단을 수없이 바쳐야 했던 백성들의 원성도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하루는 유왕이 비단 찢는 것마저 싫증을 내는 포사의 비위를 맞추고자 위급한 상황을 대비해 설치한 봉화(烽火)를 거짓으로 올리게 하여 급히 제후들을 모이도록 하였다.

전시 상황으로 알고 허둥지둥 군사를 끌고 달려 온 제후들이 멍하니 서있는 모습을 지켜보던 포사가 웃어버리자 유왕은 그 후로도 수차례나 거짓 봉화를 올리도록 했다.

나라를 자칫 벼랑 끝으로 몰아넣을 수 있었던 것은 거짓 봉화뿐만이 아니었다.

포사의 꾐에 넘어간 유왕은 황후와 태자를 폐하고 포사를 새 황후로, 그가 낳은 아들을 태자로 책봉하는 패륜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이에 격분한 폐황후의 친정아버지가 북방 오랑캐족인 견융(犬戎)에게 뇌물을 주어 꼬드기며 주나라를 침공하여 왕을 혼내주라는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제안을 한다.

견융의 침입으로 주나라의 수도 호경이 포위되자 유왕은 위급함을 알리는 봉화를 올렸다.

그러나 양치기 소년에게처럼 여러 번을 속았던 제후들은 아무도 출동하지 않았으며 유왕은 태자와 함께 도망을 가다 체포되어 살해되고 포사는 납치되어 견융의 첩이 되었다.

유왕이 죽었는데도 견융이 당초 약속을 어기고 돌아가지 않자 제후들이 힘을 합해 그들을 쫒아내고 폐위되었던 태자 의구를 평왕(平王)으로 복위시킨 후 수도를 동쪽(東周)으로 옮겼으나 왕의 권위가 땅에 떨어지면서 이후부터 지방 제후들 간에 먹고 먹히는 전쟁과 살인으로 날밤을 새는 춘추전국시대가 막을 열게 된다.

거리장치와 광장 정치

조국 법무부장관의 임명을 둘러싸고 진보와 보수세력 간에 벌이는 거리정치, 광장정치가 도를 넘어서고 있다.

지난 928, 100만이니 200만이니 하며 숫자다툼까지 벌어졌던 서울 서초동 검찰청사 앞 촛불시위를 시작으로 개천절인 3일에는 서울 도심인 광화문광장에서 조국사퇴를 외치는 보수세력의 대규모 집회가 열렸으며 5일에는 다시 서초동 거리를 가득 매운 진보세력들의 집회가 이어졌다.

대규모 군중을 동원하여 자신들이 옳음을 대내외에 알리고자 하는 것을 나무라고 싶지는 않다.

단지 갈수록 어려워지는 경제상황은 아랑곳없이 자신들의 권력비호만을 위해 국민들의 편을 가르고 진영싸움에 함몰시켜 거리로 내모는 모습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좋은 뜻에서 출발했다지만 같은 집회가 자꾸 반복이 되다보면 유왕의 거짓 봉화에서처럼 국민들이 식상하게 됨으로써 아무리 좋은 정책일지라도 불신이 쌓이게 되고 아울러 정책을 제대로 펴나가기가 어려울 수도 있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경국지색 포사만을 끼고 돌던 유왕의 버릇을 고치겠다며 오랑캐를 불러들인 결과가 종국에는 나라까지 거덜내고 춘추전국시대라는 끝간데 없는 전쟁으로 이어지면서 민생을 피폐하게 했다는 역사적인 교훈도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될 일이다.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나라, 기회는 공정하고 과정은 평등하며 결과는 정의로운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국민 간 화합과 상생이 중요하다고 믿기 때문에 드리는 고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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