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훈/ 전 한농연 영광군연합회장 대추귀말자연학교장
정부는 지난 10월 25일, “우리나라 경제 위상 및 대내외 여건 등을 고려하여 세계무역기구(WTO) 개발도상국 지위를 포기한다”고 선언했다. 한농연을 포함한 농업계 단체는 그동안 누차에 걸쳐 “개도국 지위 포기 시 관세 및 보조금 혜택 축소로 인해 대한민국 농산물의 생산기반 자체가 붕괴될 위험이 있으므로 절대 불가하다”는 입장을 주장해 왔다. 그런데도 정부는 국익 차원의 결정이 필요하다는 입장만 반복하다가 개도국 지위를 더 이상 주장하지 않는다는 논리로 개도국 지위를 주도적으로 포기하고 만 것이다.
그런 뒤 11월 4일 우리나라를 비롯해 중국⋅호주 등 총 16개국이 참여하는 RCEP 협정문에 서명하고 만다. 이 합의는 관세 인하를 수용하지 못한 인도가 합의를 보류함에 따라 최종 타결은 내년으로 미뤄졌지만, 인도를 제외한 15개국의 합의가 끝난 만큼 사실상 타결됐다고 본다. 이 때문에 농업계는 이제는 정말 우리 농업의 미래를 담보할 수 없다며, 망연자실하고 있다.
RCEP는 아세안 10개국과 한국⋅일본⋅중국⋅일본⋅호주⋅뉴질랜드 등 16개국이 참여하는 초대형 FTA라 할 수 있다. 특히 중국을 비롯한 농업 강대국이 대거 포함돼 그 어느 때보다 우리 농업에 미치는 영향이 클 것으로 우려된다. 실제 지난 2017년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발표한 ‘Post-FTA 농업통상 현안 대응 방안’에 따르면, 2015년을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RCEP 회원국에 대한 농산물 수입규모는 66억8천만 달러이고 수출규모는 31억5천만 달러로 약 두 배 이상 차이가 난다. 또한, 2013~2015년 평균을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對 RCEP 회원국을 통한 수입액은 우리나라 전체 농산물 수입의 38.1%를 차지할 만큼 막대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ASEAN 및 중국과는 비교적 낮은 수준으로 FTA를 체결했기 때문에 RCEP 협상 수준에 따라 우리 농업에 미치는 영향은 기하급수적으로 커질 수 있다. 특히 율무, 감자, 고구마, 대두, 녹두, 팥과 같은 곡물류와 배추, 당근, 수박, 양파, 마늘, 고추, 생강 등과 같은 과채류의 영향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위생 및 식물위생조치(SPS) 완화 수준에 따라 현재 검역으로 수입이 제한되고 있는 사과, 배, 복숭아, 감귤과 같은 과일류도 심각한 타격을 입을 것으로 우려된다. 이처럼 RCEP 체결 시 타 산업보다 농업 부문의 피해가 가장 큼에도 불구하고 ‘거대 경제 블록 형성을 통한 안정적 역내 교역⋅투자 기반 확보’라는 긍정적 효과만 강조하고 있는 정부의 안일한 태도에 실망을 금하지 않을 수 없다. 각종 농업보조금 규모는 축소돼 농업계 피해가 커질 것이 뻔함에도 이렇게 농업을 희생양 삼는 협정으로 말미암아 농업계 내에서는 비관적이다.
이와 관련해 농촌 현장에서는 세계 최대 농업 강대국 사이에 낀 우리나라의 농업이 생각하는 것보다 피해가 더 클 수 있다고 전망하고 있다. 미국의 WTO 개도국 지위와 관련된 문제 제기는 중국 측을 겨냥한 것이라는 게 통설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이번에 중국이 주도하고 있는 다자간 자유무역협정(RCEP)에 서명한 것은 자칫 국내 농축산물 시장이 미국과 중국 G2 국가 간 힘겨루기의 희생양으로 전락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큰 것이다. 개도국 지위 상실과 RCEP 타결 여부에 따라 그 비중은 더 커질 수 있으며, 상황에 따라 이들 두 국가에 시장 추가 개방의 빌미마저 제공할 수 있다.
이에 한농연은 문재인 정부의 갈길 잃은 중⋅미 등거리 정책이 자칫 국방안보 뿐만 라니라 식량안보마저 심각하게 위협할 수 있음을 분명히 경고한다. 정부는 자국민의 이익을 최우선 과제로 생각하고 무엇보다 향후 개도국 지위 상실과 RCEP 최종 타결 시 농업 부문의 피해를 줄이는데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다가올 위기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실효성 있는 농업 회생 및 발전 방안을 책임 있게 제시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 실제 개도국 지위 문제와 관련해 정부가 내놓은 대책은 대부분 기존에 진행하던 사업의 연장선이었으며, 농업계가 요구한 내용은 어느 것 하나 반영되지 않았다. 실재적인 농업발전기금의 실천방향이 제시되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혀왔지만 들리는 것 메아리일 뿐이었다. 상생과 더불어 살아가는 나눔경제에 대한 포괄적인 논의가 국민을 상대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농업인 기본소득 개념의 공익형 직불제 확대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된 만큼 좀더 농업인들에게 도움이 될 소 있도록 재정 확충도 적극 모색해야 할 것이다.
영광군 역시 이제 양보다는 질을 높이는 농업으로의 발상전환을 꾸준히 선도적으로 정책을 발굴하고 추진해 줄 것을 요청한다. 또한 농업을 통한 방계 산업에 대해 주도적으로 사업을 확장하고 사업여건을 만들어줘서 젊은이들이 영광군에 와서도 뭔가 해먹고 살만한 거리를 찾을수 있도록 획기적인 여건을 조성해 줄 필요가 있다.
2019년이 이제 한달여 밖에 안남았다. 남은 기간 동안이라도 우리 앞에 닥친 문제를 어떻게 헤치고 나아갈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내일을 위한 멋진 마무리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