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구현/ 시인

적폐(積弊), 오랫동안 누적되어온 폐단이다. 청산(淸算), 과거의 부정적 요소들을 깨끗이 쓸어버리는 것. 문재인 정권의 적폐청산은 이명박 박근혜 정권 시절의 잘못된 관행이나, 정책, 제도 등을 비롯해 비합법적 행위들을 발본색원 하여 바로잡고, 개국 이래 지금까지도 잘못 인식되고 있는 역사적 오류까지도 바로잡겠다는 것이었다. 대통령의 그런 의지는 촛불 세력뿐만 아니라 대다수 국민들의 전폭적 지지를 받으며 집권 초기 사상 유래가 없는 80%대의 지지율을 기록하기도 했다. 그리고 혁신적인 정책들은 오랜 기간 ''정치하는 사람들 다 똑같아''라는 정치에 대한 회의와 불신의 늪에 빠져있던 국민들에게 신선한 희망의 등불이 되어주었었다. 그런데 임기 절반에 회의감을 부르고 있다. 지난 총선 때 현 집권 여당의 핵심 인물이었던 한 의원은 TV토론회에 출연해서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의 잘못된 정책에 대해 조목조목 지적하며 ''이른바 적폐죠''라고 했다. 그 장면을 시청하며 정말 적폐가 청산되고 우리가 바라는 정치, 양심과 도덕과 법질서에 입각한 정치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현실화 될 것이라는 기대에 부풀었던 사람은 필자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로부터 얼마 되지 않아 그의 보좌관이 뇌물을 수수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그는 스스로 정치 일선에서 물러났다. 실망이 컸지만 ''더 이상 그런 일은 없게지?'', 스스로를 진정시키며 기대와 희망의 끊을 놓지 않았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그 기대와 희망의 끊은 썩은 동아줄이 되어가고 있다. 지금까지 이 정권의 핵심인물들로 차기 대권후보로까지 추앙받았던 안희정 전 충남지사를 비롯해 전국 방방곡곡에서 드러나고 있는 개혁파들, 이른바 적폐청산을 주도하는 세력들의 고차원적 적폐 행태를 접하면서 국민들은 씁쓸하다 못해 참담하고 참담하다 못해 허탈한 기분이다. 비위를 저지른 당사자들보다 더 실망인 것은 그들을 끝까지 비호하며 지켜내려고 몸부림치는 윗선들의 모습이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을 보호하기 위해 민주당과 같은 세력이라 자처하는 정치권 밖의 인물들은 물론 대통령까지 가세해서 온갖 명분과 논리를 내세워 대국민 상대로 성명을 발표하고 메시지를 전달했지만 결국 그 관련자들은 구속 수감된 채 법의 심판을 기다리고 있다. 적폐청산 세력들의 비위가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그런 일련의 과정들을 지켜보며 정말로 이해할 수 없는 것 한 가지, 문재인 대통령이 현 윤석열 검찰총장을 임명할 때 ''어떤 귄력의 눈치도 보지 말고 검찰 본연의 임무를 성실히 완수하라''고 했다는데 청와대 핵심인물들과 대통령의 측근들의 비위에 대해 눈치 안보며 수사하는 것을 ''편파수사''''검찰개혁에 대한 반항''이니 하면서 몰아붙이는 까닭을 모르겠다. 검찰이 정말로 편파수사를 하는 것인지? 검찰개혁에 반기를 드는 것인지? 그렇다면 조국 전 법무부 장관 관련 사건을 비롯해서 지금 언론에 대두 되고 있는 청와대 관계자들과 울산시장 사건을 비롯한 모든 사건들을 검찰이 조작해낸 것인지? 검찰에 압수수색영장을 발부해주는 법원도 검찰과 한패인지?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법은 무엇이고 누구와 무엇을 위해 제도화 되었으며 법의 존재 가치는 무엇인지? 믿고 싶지 않은 것들이 현실적 문제로 제기되면서 국민들은 다시 정치에 대한 회의와 허탈감에 빠져들고 있다.

''역시 그 놈이 그 놈이었어. 정치란 그런거였어, 정치를 하다보면 그럴 수밖에 없겠지, 그래도 다른 정권에 비하면 훨씬 나아.'' 여러가지 생각들로 자위를 해보지만 이 정권하에서 이미 드러난 사실만으로도 이건 정말 아니다. 드러난 사실도 문제이지만 그러한 문제들을 대처하는 이 정권 핵심들의 사고 자체는 더 큰 문제다. 지금까지 추구해왔던 양심과 도덕적 순결성과 법에 의한 개혁 논리와 명분이었건만, 그에 역행하는 동지들의 행위가 드러나자 무조건 보호하고 지키려고만 몸부림치고 있다. 그래서는 안 된다.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반성하며 국민들에게 용서를 구해야 한다. 촛불의 힘에 의해 정권을 얻은 이 정권만큼은 역대 어느 정권과는 다른 그런 진솔한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런 자정능력이라도 발휘해야 한다. 그렇게 국민들에게 마지막 남은 희망의 불씨까지도 스스로 불어서 꺼버리는 어리석음을 자행하지 말아야 한다. 그렇지 않는다면 이 정권이야말로 종군 위안부, 강제징용 등 악행을 저지르고도 반성은커녕 경제보복 조치 등 비열한 방법으로 맞서고 있는 아베 정권과 무엇이 다른가? 겉으로 양심과 도덕과 정의를 내세운 채 모든 세력들을 끌어 모아 그 몹쓸 카르텔을 형성하고 뒷전에서 온갖 악행을 저지른다면 이는 야누스의 얼굴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지금 국민들이 허탈해하는 것은 유일하게 믿고 기대했던 현 정권의 유지기반인 양심세력들에 대한 믿음이 무너지고 더 이상 믿을만한 정치세력이 없어지고 있음이다. ''미워도 다시 한 번'' 이제 그 것마저도 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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