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구현

사랑과 행복이란 것이 실은 아무 것도 아닌 것이다.

그 아무 것도 아닌 그 것은 사랑이며 행복이라는 관념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소한 절기에 내리는 비는 온 세상을 향해 하늘이 뿌려주는 축복의 꽃잎이란 생각이 앞선다.

마른 풀잎 위에, 나뭇가지에, 웅크린 새들의 둥지 위에, 달리는 차창에, 강물 위에, 갯벌 위에...세상 어느 것에도 구별과 차별을 두지 않고 소곤거리듯 흩뿌려지는 천상의 아리아, 지상의 울림.

그 고요한 교향곡을 들으며 아무 것도 아닌 ''사랑''''행복''을 생각한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사랑''이나 ''행복''이라는 것이 실은 아무 것도 아닌 관념에 불과한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이렇듯 겨울비의 속삭임에 혼자 느끼는 정취는 분명 행복이라는 그 무엇이다.

딱히 이런 것이라고 정의할 수 없을지라도 어느날 문득 친구나 아내 또는 나와 인연을 맺은 그 누군가가 고맙고 소중하다고 느껴질 때 이 또한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는 그 무엇이다.

그런데 사랑과 행복에 있어 내가 느끼는 그 ''무엇''이란 ''무엇''일까?

사랑은 바람 속 나뭇가지이고. 행복은 그 가지 끝에 매달린 이파리다.

내가 너를 애타게 보고파 할 때, 네가 내 곁에 있어 한없이 좋을 때, 너의 실수나 어떤 잘못도 밉지가 않고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해할 수 있고 용서가 가능할 때 그 것은 바로 사랑이란 그 무엇이기도 하지만, 너의 전화가 귀찮아지고, 네가 옆에 있어 불편해지고, 너와 함께 마시는 커피 한 잔의 맛이 쓰다고 느껴질 때 그 것은 이미 사랑이 아니다. 그래서 사랑은 바람의 방향이나 세기에 따라 나부끼기도 하고 흔들리기도 하고 꺾이기도 하는 바람 속 나뭇가지처럼 상황에 따라 쉴새 없이 변하는 그 무엇이다.

언제나 충족되지 않는 삶이지만 그 것을 채워가는 과정 속의 조바심도, 결코 완벽하게 채울 수 없는 인간으로서의 욕망이 끝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 끝없음에 결코 포기하지 않는 삶의 또다른 희망을 만들어가는 것도 모두가 내 안에서 발현되는 주체적 행복이다.

비록 가지 끝에 매달려 나부끼다가, 흔들리다가 때가 되면 스스로 떨어져서 또다른 생명의 밑거름이 될줄 아는 이파리의 모습은 그래서 흔들림과 수많은 변화의 과정 속에 휩쓸려 살면서도 스스로의 길을 만들어갈 줄 아는 행복의 또 다른 그 무엇이다.

사랑도 행복도 실체가 없고 본질이 없는 것이기에 아무것도 아니지만 우리 인간의 관념 속에서 끝없이 추구되는 것이라서 우리는 그 구체적 실현과 실천방안에 대해 탐구해야 한다.

사랑은 나와 싸워서 나를 이기려함이 근간이 되고, 나 자신을 이해하고 인정하며 사랑하는 것이 곧 행복의 근간이 된다.

내 자신을 사랑할 수 없으면 그 누그도, 그 무엇도 사랑할 수 없다.

''남들은 부모 잘 만나서 부자로 살고 출세도 쉽게 하는데 왜 나는 그런 운명을 타고나지 못했을까?, 남들은 얼굴도 잘생기고 몸도 건강한데 왜 나는 그렇지 못할까?'' 등등의 자기 비하적 생각들은 상대적 열등감을 유발하고 그 열등의식은 자기 학대로 발전되며 자기 학대는 온갖 불만과 불평의 요인이 되어 자기 자신을 나락의 길로 끌고 갈 뿐만 아니라 주변까지 힘들고 불편하게 하며 돌이킬 수 없는 불행을 낳는다.

그 운명을 극복할 수 있는 것은 자기 존중이며 자신에 대한 끝없는 확신과 사랑이다.

그래서 우리는 니체의 말처럼 ''아모르 파티(Amor Fati)너의 운명을 사랑하라.

인생을 즐겨라.''에 귀 기울여야 한다.

세상을 살다보면 때론 절망을 할 때도 있고 자신의 운명에 대해 비관적 회의감에 빠져들 수도 있다. 인생에 있어 그런 난관도 필요하다. 그러나 그런 난관 때문에 절망은 하되 포기는 하지 말 일이다. 절망을 새 희망의 출발점으로 반전시키는 열정과 의지가 필요하다. 그리고 집착은 버려야 한다. 열정과 의지란 자기 사랑에 의한 합리적 행동양식으로 발전시키기 위한 것이지 불행의 씨앗이 되는 집착의 노예로 전락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君問窮通理(군문궁통리그대여 출세 방법을 

묻는가? 漁歌入浦深(어가입포심포구로 들어오는

어부가나 들어 보게.

왕유의 시처럼 그렇게 집착도 버릴줄 알아야 한다.

사랑과 행복은 절대 불가분의 관계로서 그냥 주어진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이다.

아모르 파티를 외치며 포구로 들어오는 어부의 노랫소리 들어보자.

속삭이듯 조용히 내리는 겨울밤 빗소리에도 취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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