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희/ 여민동락 살림꾼

따뜻하고도 두려운 겨울이다. 올해 90세가 되신 어르신께서 내 평생 이런 겨울은 처음이라고 하셨다. 철을 혼동한 개나리가 꽃망울을 터뜨렸고 높은 기온과 계속되는 겨울 가뭄으로 농부들의 근심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지금 세계는 기후재앙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야생동물 5억마리가 희생된 호주 산불은 기상이변으로 인한 기온 상승으로 전 국토가 불쏘시개로 변하면서 발생한 기후재난이다. 지난해 전 세계 153개국 과학자 11000명은 기후 비상사태에 대한 경고’(Warning of a Climate Emergency)라는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성명은 지금의 상황을 파멸적 위기로 규정하고 전면적이고 꾸준한 변화가 없다면 세계는 '미증유의 고통에 직면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갑자기 날아든 소행성과 충돌해 지구가 망할 가능성과 기후변화로 인한 자연재앙으로 인해 지구가 망할 가능성 중 어느쪽이 더 높을까? 단언컨대 후자다. 소행성 충돌은 현대 과학기술력으로 충분히 예측가능하지만 기후대재앙은 절대로 예측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자본주의가 쌓아올린 무한 성장의 바벨탑은 생태 위기라는 전무후무한 재난을 만나 무너져 내리기 일보직전이다. 기후위기는 자본주의를 탄생시킨 인류가 협동에 기반한 농업 생산방식 대신 경쟁에 기반한 산업 문명을 선택한 대가인 셈이다. 농업과 협동의 가치를 복원하는 것으로 삶의 패러다임을 재구성하는 것은 지구환경 위기를 타개할 방법이다.

기후변화와 농업의 관계는 생각보다 복잡하다. 농업은 기후변화의 가해자이면서 피해자이고, 새로운 해결자 역할도 할 수 있다. 농업은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의 13.5%를 차지하는데다 농산기업 중심의 관행농 증가에 따른 연료 연소, 즉 이산화타소 배출량까지 증가하고 있다. 이는 가해자의 모습이다. 동시에 농업은 기후변화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는 가장 취약한 분야이기도 하다. 한반도의 기후도 점차 아열대성으로 변하고 있는 추세인데, 이에 대한 대응을 하지 못할 경우 2100년까지 약 700조원의 피해 비용이 발생할 것이라고 예측된다. 기온이 1높아질 경우 벼 생산량은 152천톤이 감소해 2100년까지 총 608천톤이 감소할 것이라고 한다. 농산기업 중심의 관행농법은 식량 생산량의 증대를 위해 농약의 사용, 기계화, GMO작물 생산방식을 도입함으로써 식품안전성이 악화됨은 물론 농업을 온실가스 배출의 원천으로 만들었다. 여기에 기후변화로 인한 농업 피해가 가중되면서 식량 생산량이 감소하고 몬산토, 카길과 같은 다국적 농산기업의 식량 독점이 심화되면서 식량 분배의 불평등으로 인한 소요사태로 잇따르고 있다. 이것은 피해자의 모습이다.

그럼에도 농업은 다른 어떤 분야보다 기후변화의 해결자가 될 수 있다. 농업은 이산화탄소를 흡수에 토양에 고정시키는 역할을 한다. 벼 생산지의 경우 이모작을 한다면 토양의 탄소 고정 효과에 의해 흡수량이 배출량의 4배 가까이 된다. 옥수수의 경우에는 16, 콩은 23, 고구마의 경우 31배의 탄소를 토양에 붙잡아 둘 수 있다. 기후변화에 의한 피해가 커지면서 농업 관련 국제단체들은 식량위기와 기후변화에 동시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소농과 유기농 중심으로 농업을 재편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농업이 가진 기후변화 해결자로써의 자정능력을 극대화하면서 가해자이자 피해자로써의 모습을 제거해 나가야 한다. 각국 농민들의 연대단체인 '비아캄페시나(La Via Campesina)'는 기후변화와 식량위기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식량자급률, 식품안전성, 식량 가격 및 접근성, 농법의 친환경성 문제가 동시에 담보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유기농을 기반으로 식량자급률을 높이고 이를 기후변화 대응책과 연계해 육성 지원하는 정책이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식량위기와 기후대재앙을 막기 위해서는 생명공생을 위한 협동이 이루어져야 한다. 기후변화 시대에 온실가스 배출을 억제하는 친환경 유기농업이 가진 대안적 기능은 이미 검증됐다고 볼 수 있다. 남은 과제는 관행농을 줄이고 농업 전반을 소농과 유기농 중심으로 재편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가격과 품질면에서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유기농업 지원 대책들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농민이 농업의 주인이 되지 못하는 현실에서 기후변화와 빈곤의 확산을 막을 수 있을까. 농업이 농민에게 주어지고 거대 농기업 아닌 지역의 소농들에게 농업의 권리가 주어질 때야말로 기후변화와 빈곤을 둘러싼 지구촌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농업정책에 대한 결정권을 농민에게 환원해야 한다. 지구환경을 지키고 인류 공동의 미래를 위한 새로운 식량경제 패러다임을 짜야 한다. 이는 더 이상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인류생존의 필수불가결한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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