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동자처럼 탄생시킨 법성향지 발간하게 되어 기쁨 넘쳐”

재경법성면향우동문회(회장 이치연)는 지난 11일 서울 당산동 향우회사무실에서 김창균 재경향우회장, 이영민 산악회장, 정면화 여성회장, 강명환 전 산악회장, 한정숙 진량초 회장, 하종주 전 회장, 김옥균 김포시 의원, 김창호 안마도향우회장, 이효순 법성면장, 홍길수 법성포초총동문회장, 신현모 번영회장, 성시환 법성문화진흥원장, 김범진 법성향지 편찬위원장, 박종근 발간위원장, 신태승 자문위원장, 나호경 출판위원장, 김삼득 재정위원장, 김효진 운영위원장, 이치연 법성향우회장, 김상규 권오선 김희홍 전 회장, 황기봉 골프회장, 김현준 축구회장, 홍미경 여성회장, 유병철 48산악회장을 비롯해 진량회 위주섭 회장과 회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2020 경자년 신년회 법성향지 출판기념회를 개최했다.

이날 행사는 이형선 감사의 사회로 행사를 시작했다. 이치연 향우회장은 신년사를 통해 이슬방울이 모여 큰 바다를 이룬다는 노적성해(露積成海)의 정신으로 지난 한해동안 향우회 발전을 위해 헌신 봉사해 주시고, 법성향지 발간을 위하여 애향심 가득 담아 후원해 주신 선배님과 후배 여러분에게 감사드립니다고 말했다.

김창균 향우회장도 고향을 사랑하는 마음하나로 법성향지의 거작을 이룩한 출판위원들 노고를 치하하며, 법성의 새로운 30년 역사를 재조명하는 뜻 깊은 날에 감개무량하다고 말했다.

이효순 법성면장은 법성향지 발간을 진심으로 축하드린다. 아울러, 향지 발간을 위해 물심양면 도움을 주신 모든 분과 자료수집 및 향지 편찬에 애쓰신 편찬위원 여러분에게 아낌없는 감사를 드린다고 말했다.

박종근 법성향지 발간위원장은 지난 30년전 고인이 되신 홍성수 회장님과 여러 향우님과 저는 우여곡절 끝에 옥동자처럼 탄생시킨 법성향지를 바탕으로 오늘 개정증보판을 발간하게 되어 기쁨이 넘친다고 말했다.<사진제공 장형준 작가> /서울 김효진 기자 

법성향지 개정증보판 출판위원회

편찬위원장 김범진 발간위원장 박종근 자문위원장 신태승 기획단장 김상규 나병기 김희홍 집행위원장 권오선 최진철 하종주 추진위원장 이치연 운영위원장 김효진 재정위원장 김삼득 편찬위원 김봉준 김춘희 이형선 권오국 문관섭 출판위원장 강춘권 나호경 유병용

 

화보로 보는 법성향지의 탄생

나는 열일곱 살까지 한문만 읽었네. 한문으로는 만만치 않게 읽었네. 그래서 사실 맹자 같은 거 대학 같은 건 선생 없이 나 혼자 그때는 맹자, 대학 같은 거 줄줄이 앞줄까지 다 외우던 판이었어. 그러다가 신식공부를 하고 싶은데 우리 아버지가 보내주지 않으니 댕길 수가 없었어 그때는 머리 깎으면 다 초상난 집 같이 울었네. 아이고 아이고 소리가 나서 쫓아가 보먼 우리아들이 머리 깎았네 해 그러면 동네 아이들도 따라서 울었네. 12살부터 보천교에 미쳐 가지고 밤낮 그거만 허면서 큰 공부를 못 했지. 성 가셔서 아부지가 그것 않는다고 항깨 머리 깎아 . 그걸 않는 표식이 머리 깎는 거 였어 그때 나는 한문은 꽤하는데 일본어는 하나도 모르고 아라비아 숫자 하나 모르니까 환장할 노릇 아닌가? 그래서 고경진씨를 내가 찾아갔단 말이야 그래서 내가 개인 교습을 받았어. 한 사나흘 동안 아라비안 수칙, 처음으로 산학 공부하러 갔단 말이야 ”[신명희 선생 녹취록, 1984]

출간 목전에 눈을 감으신 두 분

1901년에 진내리에서 태어나 일제강점기에 서울 휘문고등보통학교와 일본 리쓰메이칸(立命館)대학을 졸업하고, 광복 후, 법성포수산중학교(5년제)(현 법성 중·고등학교) 초대 교장을 역임한 상산(上山) 신명희 선생은 광주사범학교를 정년퇴임하고 향리로 돌아와 향토사를 집대성하기 위하여, 1984년부터 광주 송원여자고등학교 국어 교사였던 김일록(1928년생) 선생을 데리고 한말부터 광복 이후까지의 역사적인 현장을 구석구석을 찾아다니며 자세히 알려 주었고, 남궁길홍(1944년생) 선생은 이 두 분들의 이야기를 빠짐없이 녹음하였다. 뿐만 아니라 팔십이 넘은 나이에 법호견문기(法湖見聞記)를 써 김일록 선생에게 전했다. 그러나 그토록 염원하던 법성향지의 꿈을 이루지 못한 채 1986년에 홀연히 눈을 감았고, 신명희 선생의 법호견문기를 저본으로 밤낮으로 향지 집필에 온 정성을 다하신 김일록 선생도 출판을 목전에 두고 1987년에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다. 이후 김영남(1932년생) 선생이, 이 두 분의 유고를 이어 받아 집필을 마쳤다. 이렇게 이 향지는 4년 여 세월동안 집필에 혼신을 다하신 두 분의 선생을 잃었고, 이 두 분 선생의 혼이 어린 이 향지를 출간하기 위해 신용상, 박진채, 임선혁, 황재선, 남궁길홍 선생과 장재필, 당시 영광군수를 비롯한 뜻있는 여러분들이 후원하여 1988년에 영광군 11개 읍면 가운데 처음으로 세상에 첫선을 보였다. 그러나 출간이후 이 향지는 이런 저런 이유로 한동안 구설에 휘말렸고, 이를 안타까워한 홍성수, 당시 재경법성향우회장을 비롯한 향우회 임원들이 구심점이 되어 강종윤, 최상, 장백언, 나두원 선생 등이 뜻을 모아, 법성조창 천년기념사업의 하나로 다시 출간하기로 결정하고, 김영남 선생이 다시 집필하여 재경향우들의 후원으로 1992년에 개정판이 발간되었다. 그러나 이 또한 한글이 병기되지 않은 한문 위주로 써, 한문세대가 아닌 여러 사람들이 이해하기 어려워 법성향지의 증보 및 개정문제가 여러 차례 논의 되었다.

재경 향우들에게는 너무나 벅찬 과제였다

법성은 조선 중종 9(1514)에 흔히 옹성이라 불리던 성을 쌓고 법성진이 명실상부한 군영이 자리한 지역이다. 이로부터 500년이 지난 2014년에 재경법성향우·동문회에서는 이를 기념하여 법성향지를 증보하기로 결정하고, 2019년에 이를 출간하기로 결정하였다. 2019년은 재경법성향우회가 창립된 지 30주년인 해이자, 1988법성향지를 처음 발간하고 한 세대인 30년 세월이 지난해다. , 법성이 영광군에서 떨어져 나와 독자 행정권역이 된지 230주년이 된 해다. , 지금부터 230년 전인 조선 정조 13(1789)에 지금의 법성지역은 고종 32(1895)까지, 자그마치 106년 동안 영광군수 관할지역이 아닌 법성첨사의 독자 행정 권역이었다. 그래서 조선 후기 영광지역은 영광군수가 법성지역을 뺀 나머지 지역만 관장했었다. 2015년에 결성된 편찬위원회에서는 이와 같이 오랜 지역 사를 채집하여 집필하다 보니 그 량이 방대하여 기록물로 완간하기에는 너무 벅차 2017년에 이르러 고을 주민들이 향토사를 쉽게 이해하고 고향을 그리는 향우들의 정서에 맞추어 그림으로 보고 쉽게 이해 할 수 있는 향지를 제작하기로 방침을 바꿔 편찬하기로 하였다. 이에 따라 2019년에 발간하는 법성향지는 세 단원으로 구성하였고, 제호를 화보로 보는 법성향지로 결정하였다. , 1단원은 화보로 보는 우리고을사로, 2단원은 화보로 보는 마을 유래, 3단원은 법성포편년사를 수록하였다. 그리고 집필과정에서 채집된 모든 사료는 법성문화진흥원에 제공하여 계속사업으로 이어 가도록 하였다.

법성을 사랑하려거든 법성의 역사를 읽어라, 다른 사람에게 법성을 사랑하게 하려거든 법성의 역사를 읽게 하여라.”

우리 모두가 다 알고 있듯이 법성향지는 내 노라 하는 학자나 저명한 사람들에 의해 저술된 기록이 아니다. 오직 순수하게 고향을 사랑하는 법성사람들의 손으로 역사의 굽이굽이에서 도리를 다했던 민초들이 엮은 책이다.

주민 스스로 전승해온 법성포단오제의 배경에는 세대를 이어 기록해 놓은 마을의 역사가 있다. 이렇게 세대를 이어 온 법성포사람들의 기록정신은 국가무형문화재 제123호로 지정된 법성포단오제의 자양분이 되었고, 그들이 남긴 기록은 지금도 법성포의 역사적 사실을 증명해 주고 있다. [국립영상기록원 제작 법성포단오제중에서

일찍이 단채 신채호 선생께서는 나라를 사랑하려거든 역사를 읽을 것이요, 다른 사람에게 나라를 사랑하게 하려거든 역사를 읽게 할 것이다.’라고 하셨는데, 이 말씀 가운데 국가를 법성으로 바꾸니 법성향지의 중요성이 쉽게 와 닿습니다.

법성을 사랑하려거든 법성의 역사를 읽을 것이요, 다른 사람에게 법성을 사랑하게 하려거든 법성의 역사를 읽게 할 것이다.” [김창균 재경영광군향우회장의 축간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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