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일순 프리랜서

요즘 우리는 때 아닌 영토 전쟁을 치르고 있다. 그것도 원래는 중국 대륙에서 벌어져야 할 전쟁이 한강 이북의 한반도에서 발발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어느 정도는 자초한 것이기도 하고, 주위 나라의 남다른 탐욕에서 기인한 것이기도 하지만 피할 수 없는 땅 따먹기 전쟁이다. 우리나라를 제외한 세계사 속에 고구려는 어느새 중국의 변방 국가로 편입이 되어 버렸고 고조선은 한강 이북의 평안남도 일대로 축소되어 익혀지고 배워지고 있다. 바로 일제시대부터 현재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 식민사관이 그렇고 중국의 준비된 동북공정이 그렇다. 이런 와중에도 일부 사학자들은 고조선과 고구려 죽이기에 아무런 거리낌 없이 동참하고 있고, 신라는 삼국 통일국가이며 발해는 우리 역사에서 스스로 제외시켜 형식적인 교육에 그치고 있으니, 중국이 버려진 역사의 영토를 탐내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다 하겠다.


 


고조선 지키기


고조선을 지키는 것은 우리 자존심을 지키는 것이고 현재의 역사를 지키는 것이며, 한반도와 고구려의 광활한 땅덩어리를 지키는 것이다. 과거 역사속의 영토를 잃는 것은 그 땅에서 존재했던 모든 문화까지도 함께 잃는다는 것을 알아야 하고, 국가적인 거대한 프로젝트로 다가서는 중국의 역사 전쟁에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 그래서 꼭 필요한 것이 교육이다. 우리가 역사교육을 어떻게 해 왔는지를 한번쯤 되돌아보자는 말이다. 중요 시험에서 제외 된지 오래고, 올바른 역사관을 갖는데 가장 중요한 시기인 중등 교육과정에서 조차 국영수보다 홀대를 받으며 뒷전으로 밀린지 옛날이다. 그리고 일제 강점기 때 우리의 대선배들이 그들에게 배웠던 식민사관은 아직도 유령처럼 우리 곁에서 맴돌고 있으며, 고증 될 만한 것은 모조리 자신들이 없애놓고 실증사학이란 허울 좋은 이름으로 한국사를 일본사를 위한 테두리 안에 가두어 버렸다.


 


식민사관과 동북공정


일본은 단군조선을 부정하고 위만조선을 앞에 내세워 식민의식을 우리에게 각인시키기 위해 노력했고, 중국은 기자와 위만조선을 내세워 단군조선의 실체를 부정함으로써 고조선을 송두리째 중국사에 편입하려 하지만 우리는 이에 대응하는 마땅한 방법이 없이 그저 고구려 지키기에만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여기서 고구려를 지키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고구려의 뿌리인 단군조선을 우리 역사로 굳건히 지키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결코 고조선은 한반도의 북부가 아니었으며 낙랑군 또한 우리가 학교에서 배웠던 대로의 위치가 아니라 중국 하북성 일대임을 이제는 학교에서 정설로 가르쳐야 할 시기가 왔는데도 일제 식민사관의 유령은 아직 우리 주위를 끈질기게 맴돌고 있다. 단군을 신화로 만들어 놓고 그 주위를 배회하며 우리 어리석음을 비웃고 있는지도 모른다.


 


교과서속의 단군


식민사관에 정식으로 반격을 선포하고 요즘도 활발한 답사와 저술활동을 펼치고 있는 모 사학자의 책을 들여다보다가 재미있는 부분을 찾아냈다. “국사 교과서에 단군조선은 없다”라는 문구였다. 고등학교 국사(7차) 32~33쪽에 “「삼국유사」의 기록에 따르면 고조선은 단군왕검이 건국하였다고 한다(기원전2333년)”는 내용이 보이는데, 삼국유사에 그렇게 적혀있다는 내용에 불과하고 다음에 이어지는 “단군의 기록도 마찬가지로 청동기 시대의 문화를 배경으로 한 고조선의 성립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반영하고 있다”는 교과서의 기술은 청동기시대에 고조선이 성립되었다는 뜻인데, 과연 청동기 시대에 와서야 국가가 세워진다는 것이 맞느냐는 것이다. 같은 교과서 27쪽에 “신석기 시대를 이어 한반도에서는 기원전 10세기 경에, 만주 지역에서는 이보다 앞서는 기원전 15~13세기 경에 청동기 시대가 전개되었다”고 기술된 것은 고조선의 건국시기를 15세기 이후로 못 박은 것인데, 삼국유사의 기록이 24세기이고 보면 한반도의 10세기 보다 14세기가, 만주지역 보다도 9~11세기가 늦은 시기에 고조선이 건국했다고 함은 우리 민족사의 시작을 흔들어 놓기에 부족함이 없다(이상 이덕일 저서 발췌)는 이 사학자의 주장은 일견 타당성이 있어 보인다.


 


숨은 음모


그러면 고조선의 건국이 한반도가 아닌 만주로 보았을 때(15~13C) 그 고조선이 과연 단군조선이었을까? 우리 국사 교과서가 단군조선도 기자조선도 다루지 않고 위만조선부터 등장하는데 이것이 우리 애들이 배우기에 전혀 하자 없이 적합한 것인지를 살펴보자. 단군조선이 삼국유사에 24C에 건국이 되니 15C경의 고조선은 기자조선이거나 위만조선이어야 한다. 일본이나 중국측의 주장대로 단군조선을 부정하고 보면 기자나 위만조선인데, 먼저 기자의 기록을 보면, 중국 고대 은나라의 신하로 은 주왕에게 간쟁하다 투옥되었던 인물로 후에 주의 무왕이 은을 무너뜨리고 주나라를 건국하자 옥에서 풀려난 그는 두 왕을 섬길 수 없다하여 “동쪽 조선으로 갔다.”고 기록이 전한다. 여기서 간과하면 안되는 것이 기자가 동쪽으로 갈 때에는 이미 “조선”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면 시기적으로 위만조선보다 앞서는 기자가 자기 나라를 떠날 때 이미 존재 했던 조선은 어느 조선일까. 하지만 우리 교과서는 어느 조선의 왕인지도 불명확한 「준왕(準王)」을 몰아내고 위만이 스스로 왕이 되었다(기원전194년)는 내용만 기록하고 있으니 참으로 한심한 일이다. 여기에 식민사관의 유령이 숨어있다. 단군조선의 인정은 요령성을 포함한 드넓은 만주 땅이 대한민국의 영토라는 것을 인정함이니 교과서에 정식 고조선의 명칭은 위만조선부터 등장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단군만 부정하면 기자나 위만 은 중국인이니 자연스럽게 고조선은 중국의 역사로 편입되어 버린다는 말이다. 이것이 식민사관이요 중국의 동북공정의 진실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스스로 교과서에 단군조선이라는 정식 국호 한번 쓰지 못하고 있다. 아직 이 땅에 살아 있는 증인들이 많이 있는데도 감히 밝히지 못하는 일제 강점기의 진실을 보더라도 우리 민족의 주체성은 많이 망가져 있음에 틀림이 없다.


 


중국 베끼기


역사 침탈을 항의할 때 항시 대두 되는 것이 일본과 중국인데 오늘은 어떻게 된 것이 우리의 국정교과서를 비판해야 하는 경우에 이르고 말았다. 한에게 멸망하기 이전의 고조선은 그들이 말하는 대로 일개 제후국은 아니었음을 알아야 하고 교과서는 식민사관의 그늘에서 벗어나야 한다. 삼국지 한조의 위략에 “우거왕(위만의 손자)이 한나라에게 무너지기 전에 조선상(朝鮮相) 역계경(歷谿卿)이 우거왕에게 권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동쪽의 진국으로 갔다. 그때 그를 따라가 산 백성이 2천 여 호나 되었는데, 그들도 조선에 조공하는 번국과는 서로 왕래하지 않았다.”고 적고 있는데 조선에 조공하는 번국(藩國)이 있었음을 시사하는 내용이고, 이어서 후한서 동이열전에 “원삭 원년(BC128년)에 예군 남려 등이 우거왕을 배반하고 28만 명(이병도는 대폭 축소하여 2만으로 표기)을 이끌고 요동에 귀속하자 한무제는 그 지역에 창해군을 ....”이라는 기록은 역시 예(濊)나라는 고조선의 번국이었음을 알 수가 있으며 고조선은 여러 조공하는 번국을 거느리는 황제국임을 증명한다. 그런데 교과서는 이를 오히려 축소 왜곡하여 우리 역사관을 혼란에 빠뜨리고 단군조선의 실체를 없애고 위만을 내세워 우리 역사를 몽땅 중국에 내 주려하고 있다. 이는 분명 청산되지 못한 역사관에서 오는 주체성의 부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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