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시론
고봉주/ 영광신문편집위원




죽음을 뛰어넘는 자식사랑


우리와는 달리 5월의 남극(南極)은 해가 뜨지 않는 암흑의 빙원(氷原)이 된다.


남극의 신사라는 펭귄들은 이 시기를 기다려 번식을 하게 되는데 추위를 피해 내륙 깊숙이까지 들어온 펭귄들은 알을 하나만 낳는다.


그러나 내륙이라도 영하 40~50도 이하로 내려가는 얼음평원 뿐이어서 알을 그대로 두면 금방 얼어 버리고 말기에 아버지 펭귄은 소중한 알을 두 발 위에 올려놓고 따뜻한 솜털로 감싼 체 알이 부화할 때까지 얼음바닥위에 꼼짝없이 서 있어야 한다.


알만 낳아 아빠에게 맡겨 놓고선 장차 태어날 새끼에게 먹일 먹이를 구하기 위해 먼 바다까지 기나긴 장정에 나선 어미펭귄이 새우 등의 물고기를 뱃속에 잔뜩 저장시켜 돌아올 때까지 무려 달포 남짓을 아무것도 먹지 못한 체 남극의 세찬 눈보라와 폭풍을 견뎌내야만 한다.


어미펭귄이 돌아와 부화된 새끼에게 뱃속에 저장해 온 먹이를 게워내 먹이면 그때서야 아빠펭귄은 몸을 움직여 바다로 향한다.


남극의 매서운 눈보라와 설폭풍에 시달려 체력이 소진되고 영양실조까지 겹쳐 몸도 가누지 못한 체 비틀거리는 수놈은 아내펭귄이 가져온 먹이에 눈독을 들일법도 한데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다.


아내펭귄역시 추위에 굶주렸을 남편펭귄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새끼 먹이기에만 바쁘다.


결국 지친 몸을 이끌고 필사적으로 먹이를 찾아 바다로 향하는 아버지 펭귄들은 다리에 힘이 빠져 얼음바닥을 나뒹굴다 일어나지 못하고 죽어가는 수도 많다고 한다.  


이렇게 새로운 생명을 위해 가혹한 고통을 감내하며 결국은 죽음에까지 몰려야하는 어버이 펭귄의 처절한 희생을 그저 본능이라고만 치부해버릴 수 있을런지?




동물들의 자식사랑


내리사랑이라는 자식사랑은 사람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다.


동해바다에서 살다가 이른 봄, 내륙의 하천으로 올라와 산란을 하는 가시고기의 자식사랑은 가히 가학(加虐)적이다.


물고기 가운데 유일하게 둥지를 짓는 가시고기는 주둥이로 강바닥 모래를 퍼내 구덩이를 만든 후 수초로 집을 짓고 단단하게 고정한다.


집이 완성되면 암컷은 3∼4초간의 짧은 산란을 마치고 집을 떠나는데 그때부터 부화하기까지 알을 지키고 새끼를 키우는 것은 온전히 수컷의 몫이다.


몸길이가 고작 7㎝에 불과한 가시고기가 붕어, 거북이 등 자신보다 덩치가 큰 물고기들과 맞서 혈투를 벌이기도 하는데 가시고기의 새끼사랑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알의 부화율을 높이기 위하여 산소를 불어주는데 1000여개나 되는 알들을 둥지에서 차례로 꺼냈다가 다시 넣어 주는 일을 새끼가 부화할 때까지 계속 반복한다. 


둥지를 지을 때부터 새끼가 부화하기까지 보름 동안을 잠 한 숨 자지 않고, 아무것도 먹지 못한 수컷은 알이 부화한 후엔 몸빛은 바래지고 주둥이는 헐어 결국 죽음을 맞게 된다.


자신의 부모가 그랬듯이 자기 몸을 새끼들에게 나누어 주기 위해서다.


새끼들은 이런 희생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빠고기'의 살점으로 자양분을 삼아 생을 시작한다.




죽어서 자식 살리는 두꺼비


가시고기뿐만이 아니다.


유난히 등이 우툴두툴해서 옴두꺼비라고 불리는 두꺼비의 자식사랑도 죽음으로 끝을 맺는다.


이 옴두꺼비는 알을 품게 되면 스스로 천적인 독사를 찾아가 싸움을 벌인다.


평소에는 피해 다니던 독사에게 싸움을 걸어봐야 결국 잡아먹히고 말겠지만 새끼들의 안전을 위해 뱀의 뱃속에 들어간 후 자신이 갖고 있던 독을 뿜어 독사와 함께 죽는 길을 택하는 것이다.


이후 옴두꺼비의 알들은 독사의 뱃속에서 부화하여 뱀의 몸을 자양분으로 더욱 튼튼한 새끼두꺼비로 태어나게 된다.


자신의 희생을 바탕으로 장차 새끼들의 천적이 될 독사를 죽이고 새끼들에게 영양분도 공급하여 건강하고 안전하게 살수 있도록 하기 위해 목숨과 바꾼 처절한 자식사랑인 것이다.




자오반포(慈烏反哺)


동물들에게 내리사랑만 있는 것은 아니다.


까마귀는 태어나자마자 한달 여쯤 어미와 함께 지낸 후 독립을 한다.


하지만 새끼 까마귀들은 늘 어미 곁을 떠나지 않고 지내는데 어미가 나이 들어 먹이를 구하기가 어렵게 되면 새끼 까마귀는 늙은 어미를 위해 먹이를 물어 나르고 정성껏 돌본다고 한다.


또 형제간에도 우애가 좋아 저녁이 되면 함께 모여 서로의 안부를 확인하고 우애를 나눈 후 각기 보금자리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조금은 과장된 부분이 없잖아 있겠지만 까마귀의 효도가 민간에 알려지면서 자오반포(慈烏反哺)라는 사자성어가 생긴 것 또한 사실이다.




아가페와 에로스 사랑


자식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일, 즉 아무런 전제조건 없이 자식을 위해 희생하고 헌신하는 것을 아가페적인 사랑이라고 한다면 부모에게 물려받은 은혜를 갚기 위해 효도하는 것은 에로스사랑, 즉 조건부 사랑이라고 한다.


하지만 전자의 경우에서처럼 동물들의 자식 사랑도 이리 클진데 사람들의 내리사랑은 오즉할까만 받은 만큼은커녕 그 만분의 일도 다 갚지 못하고 사는 것이 현대를 살아가는 자식들의 심성이다.


며칠 전 가까운 친척 당숙님의 부음을 받고 수원에 있는 한 시립 화장장에 갔다가 벽에 걸린 시 한 수를 읽으면서 필자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팔순을 넘기신 노모를 모시고 살면서도 생업이 바쁘다는 핑계로 아침저녁 잠자리는커녕 안부인사도 제대로 올리지 못했던 죄스러움으로 낯이 부끄러워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학교에 다니는 딸아이에게 쏟는 정성을 손톱만큼 만이라도 어머니에게 드렸더라면 하늘을 우러러 그렇게 부끄럽고 후회스럽지는 않았을 것이다.!    




효도에 경종을 울리는 시


부모보육 그 은혜는 태산보다 높고 큰데


젊은 남녀 많다지만 효자효부 안보이네


시집가는 새 색시도 시부모는 마다하고


장가가는 아들들은 살림나기 바쁘다네


제 자식이 장난치면 싱글벙글 웃으면서


부모님이 훈계하면 얼굴부터 굳어지네


시끄러운 아이소리 잘한다고 손뼉치나


부모님의 회심소리 듣기싫어 빈정대고


제 자식의 똥오줌은 맨손으로 주무르나


부모님의 기침가래 불결하여 밥 못먹네


과자봉지 들고와서 아이 손에 쥐어주나


부모위해 고기 한 근 사올 줄을 모르도다




모두가 아는 일이다.


그리고 마땅히 행해야 하는 일이다.


하지만 그리 못하고 살기에 우리는 언제나 불효자라는 꼬리표를 달고 다니는가 보다.


자식을 위해 목숨을 내어 줄 수 있을 만큼 큰 사랑을 받고서도 행여 우리는 오늘 아침 바쁘다는 핑계로 부모님 아침상 올리는 일에 소홀하지는 않았는지?


어버이 공경은 자신의 미래를 위한 보장보험이라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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