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리 폴슨 지음 / 박향주 옮김 / 문학과 지성사

< 봄은 만물이 눅진해지는 때다. 그리고 흐늘흐늘 녹는다. 온 세상이 녹아서 눅진해지면 냄새가 나기 시작한다. “크-” 봄날 아침 젖을 짜기 위해 암소를 내오려고 외양간 문을 열 때 아빠는 이런 소리를 낸다. 거름 냄새 때문에 제대로 숨을 쉬지 못할 지경이다. 문을 열면, 암소들은 분뇨 진창 속에 배를 깔고 엎드려 있다. 암소들은 몇 번씩 미끄러지며 비트적거린 후에야 단단한 땅으로 끌려 나온다. 아빠와 웨인 형과 나는 때때로 외양간 구석 오물 속에 들어가 암소들이 자리에서 일어나도록 밀고 당겨야 한다. 재미라고는 털끝만큼도 없는 일이다. 나는 열한 살치고는 작은 편이어서 사타구니에 걸쭉한 오물이 닿기도 한다. 있는 힘껏 늙은 암소 다리를 밀 때 암소가 갑자기 버티던 힘을 풀면, 나는 번번이 코를 박고 엎어진다.   13쪽에서 >

   이 부분을 읽을 때 겨우내 외양간에서 지내던 황소를 이른 봄날 집 앞 논에 매놓아 햇볕을 쬐게 하던 모습이 생각났다. <겨울방>은 소년 엘든이 농장에서 부모님과 형, 그리고 고향과 젊은 시절을 그리워하며 똑 같은 이야기를 되풀이하는 할아버지들과 살아가는 이야기다. 엘든은 농사일과 집안일을 하면서 사계절의 변화에 따른 냄새와 소리와 빛을 유심히 관찰하고 소, 돼지 잡는 비릿하고 역겨운 광경도 삶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인다. 풍성한 곡식과 고기를 곳간에 쌓아둔 겨울 밤, 엘든네 식구들은 따뜻하게 난롯불이 피워져 있는 겨울방에 모여 할아버지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저자는 책이 책 이상의 것이 될 수 있다면, 책이 더 많이 보여 줄 수 있고 더 많이 담아 낼 수 있다면, 냄새와 소리와 빛을 담았을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 책은 이미 이런 것들을 담고 있어서 저 먼 미국의 미네소타주 통나무 오두막과 농장의 냄새와 소리와 빛을 느끼게 한다.


  흙에서 너무 멀어져 있고, 생활반경이 콘크리트와 아스팔트 위로 한정된 요즘 아이들에게 꼭 읽히고 싶은 책으로 5-6학년이 읽기에 적당하다. 어른들에게는 아련한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만들고 아이들의 마음은 푸근해 지게 만들 만한 책이다. 읽은 후 책속의 냄새와 소리와 빛을 상상해보게 하고 이제껏 자신이 경험한 냄새, 소리, 빛을 계절별로 정리해보는 것도 의미가 있겠다. 첫눈도 내렸고 본격적인 겨울로 접어들었다. 이불속에 발을 모으고 둘러앉아 지금과는 많이 달랐던 부모님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들려주어 아이들에게 겨울방의 추억을 갖게 해주는 것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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