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성상고 김 유 경(교사)>

“선생님, 선생님도 수련회비 내시죠?”

"선생님들도 우리와 같이 극기훈련을 받나요?“

야영 수련활동을 며칠 앞두고 아이들이 수업시간에 하는 질문들이다.

언제부턴지 사제간의 정이 넘쳐야 할 교실풍경은 각박해지고, 이해타산에 빠른 학생들이 늘어가고 있는 것 같아 서글프다.

올해로 교직에 몸담은 지 17년째, 신규교사가 되었을 때 ‘언니 같은, 누나 같은’ 선생님이 되어야지 마음먹고 자취를 하며 아이들과 지냈었다. 오후에는 남아서 숙제를 도와주고, 아침 자율학습 시간에는 부족한 과목을 열심히 가르쳐 주었다. 너무나 친근하게 해주었던지 하교 후에는 내 자취방으로 찾아온 남학생들이 군내버스 시간이 안 맞는다며 밥상을 펴고, 숙제를 하느라 (아니면 처녀 선생님의 방에 오래 머물고 싶어서인지) 마지막 군내 버스 시간까지 버티다 가는 아이들이 많았다.

할머니와 사는 아이, 아버지가 도박에 빠져 가정을 팽개쳐 버린 아이, 선생님 생일선물이라고 가장 예쁜 슬리퍼를 천원에 장에서 샀다며 꼭 신어야 한다고 떼쓰던 아이, 가정환경은 서로 다르지만 너무나 귀엽고 사랑스러운 아이들이었다. 지금은 서른 살이 넘었을 그 아이들이 사회의 구석 구석에서 중추적 역할을 하고 있을 생각을 하면 항상 가슴이 벅차오르곤 한다.

요즈음은 교육하기가 힘들다고 느낄 때가 많다. 수업태도는 진지하지 못한 것 같고, 수업시간에 인생 이야기를 해주면 따분한 표정으로 듣고, 5교시에는 잠이 올까봐서 간단한 손동작이나 놀이박수 등으로 환기를 시키려고 해도 관심이 없다. “ 선생님 우리가 무슨 유치원생인줄 아세요, 유치하게!” 일반적인 학생들의 반응이다. 컴퓨터 게임, 채팅, 음악, 영화를 넘나드는 학생들은 더 이상 손놀이에 관심을 갖지 않는 것이다.

제자가 전화를 했다. 6년전에 실업고를 졸업하고 H전자에 취업한 '연옥이'

학교다닐 때 가장 말썽 피우고, 공부 안하려고 하고, 오토바이 타고 가다 사고나서 응급실에 실려가고, 나를 무던히도 놀래키던 애 바로 그 애다. “선생님 나 혼자 남았어요, 동생 장가보내고, 엄마 아빠께 신세 안지고 제힘으로 시집 갈 거예요. 요새는 쇼핑도 안나가요! 속 들었죠? 한번 찾아 뵐께요, 건강하세요!” 그래! 고맙다. 잘 살아주니 대견하고 기특하구나.

오늘은 수현이가 나를 감격시켰다. “선생님 저는 집에 가면 이번 수해 때 젖은 이불을 손빨래로 해야 해요. 동생이 많아 밥도 챙겨줘야 하고요. 엄마는 편챦으시고 아빠는 집을 나가셨어요.” 그.......래? 가슴이 쏴아 하고 쓸어 내리는 것만 같다. 내 제자들인데. 나는 어두운 아이들, 힘들게 버티는 아이들은 왜 보지 못했을까? 갑자기 할 일이 많아 졌다. 아이들을 봐도 실망스럽지 않다. 힘이 솟는다.

수행평가에 반영한다며 "우리 고장 특산물 알아오기"를 숙제 내주었다.

영광 굴비를 직접 가져온 학생, 고추장 굴비 화보를 통채로 잘라온 애, 동동주가 유명하다며 동동주 빈병을 가져온 아이도 있다. 성의가 괘씸하니 수행평가 최고점은 당연. 하늘을 바라본다. 높고 푸른 하늘이다.

오색 단풍이 울긋 불긋 우리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것처럼 아이들의 성격과 개성이 나를 힘들게 하지만 그 아이들의 다양한 미래와 직업을 보는 것 같다. 오늘은 무슨 날인가? 초코렛 하나와 함께 메모를 남겼다. "선생님 아까 화나셨죠? 죄송해요. 앞으로도 밝은 미소지어 주실거죠?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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