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품 팔아 모아 만든 돌탑과
법성에서 홍농으로 가는 길목, 백제불교도래지에 마련되는 꽃동산을 마주보고 있는 곳에 섬세한 솜씨의 돌탑들과 탐스러운 국화꽃들로 지나는 이들이 호기심을 자아내는 작은 절 용화사가 있다. 입구의 작은 안내판을 보지 못했더라면 용화사의 외형만을 보고 누구도 그곳이 절이라는 것을 눈치 채지 못했을 것이다.
가을바람과 햇빛을 받고 피어 더욱 향기를 발하는 용화사의 국화꽃들은 지난여름부터 박정조(사진) 주지스님의 손에 의해 길러진 것들로 지나는 이들의 눈을 유혹한다. 그 사이로 들어가는 길을 안내하듯 쌓여진 돌탑들은 스님이 발품을 팔아 전국에서 모아온 돌들로 만들어졌다.
8개의 둥근 아치위에 올라선 탑의 모양은 불교의 도를 담은 팔정도(八正道, 중생이 고통의 원인인 탐(貪) ·진(瞋) ·치(痴)를 없애고 해탈(解脫)하여 깨달음의 경지인 열반의 세계로 나아가기 위해서 실천․수행해야 하는 8가지 길 또는 그 방법)를 구상해 형상화한 것으로 스님이 지난시절 공사찰(조계종에서는 각 사찰들에 4년 동안 적임자를 주지로 선임․발령한다)주지로 임하며 머물렀던 절에서도 모양이 조금은 다르지만 이런 돌탑들을 만들었다고 한다.
이곳에서 6년째 살고 있는 스님은 8세부터 절밥을 먹기 시작해 강원도, 충청도, 경상도, 제주도 등의 공사찰의 주지로 일 해왔고 이곳을 마지막 휴양지로 정하게 되었다.
우연히 제자의 도움으로 알았지만 들어오기까지 사연이 많았던 이 절에는 스님이 손수 만든 것들이 대부분이다. 아직 제대로 된 법당도 없는 가난한 절 용화사는 스님의 철학을 그대로 보여주는 곳이다.
“4년 반 동안 만든 건데, 5년이면 완성이 될 줄 알았거든......”
“요즘엔 내가 농사일로 바빠서 쉽지가 않아요.”
“돌탑이 다 완성 되었을 때 왔으면 보기 좋았을 텐데......”
“젊은 사람들 오면 보라고, 여기 국화 옆에는 장미도 심고 취나물도 심었어요.”
“요즘 사람들이 취나물이 뭔지 모르잖아...... 먹기도 하고 보기도 하라고 심었지.”
“내가 돌탑을 만들고 꽃도 심고해서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것도 사실은 포교활동이라고 봐야죠. 이거 보고 들어오는 사람들이 있을 테니까......(웃음)”
스님은 이제 시대가 바뀌어서 사찰에서 화두나 하고 목탁만 두드려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일하는 것도 공부인데, 모두가 힘들 때 절에서 가만히 앉아 시주만 받으려하면 안되는 것이라고 어느 종교나 마찬가지이겠지만 스님들도 스스로 무언가를 만들어가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스님은 요즘 농삿꾼이 되었다.
손님이 집안에 들어서는 것도 모르고 고추 따기에 열심이셨던 스님의 손은 여느 사찰의 스님들의 손처럼 곱지 못하다. 까맣게 그을린 얼굴에 굳은살과 상처가 보이는 거친 손이 그동안 혼자서 해왔을 일들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고추농사로 빚도 갚고 법당도 곧 만들겠다는 스님의 희망을 담은 솔직한 말에 오히려 손님의 마
음이 철렁하다.
가을을 맞은 앞마당에는 30여개의 호박이 줄을 서듯 가지런히 놓여있고 돌탑들이 마당을 둘러싸 또 하나의 성을 이룬다. 그리고 뒤쪽의 비닐하우스에는 농가 못지않은 상당량의 고추가 빨간빛을 더해가고 조그맣게 자리 잡은 텃밭의 배추도 탐스럽다.
스님의 서재로 들어가면 외풍을 막기 위해 손수 만든 돌로 만든 벽난로와 소밥그릇에 만든 작은 연못이 예쁘다. 겨울에 고구마를 구우면 참 맛있다며 놀러오라는 스님의 머릿속에는 이런저런 아이디어들이 참 많기도 하다.
사진 찍히는 것을 무척이나 쑥스러워하던 스님은 돌아가는 손님에게 무엇인가를 주려고 애쓴다. 연세에 비해 청년같이 날렵한 몸놀림으로 언제 또 올지 모르는 손님에게 뒤뜰에서 진한향기를 내뿜는 국화를 한 아름 따주신다.
덕분에 잘 쉬었노라면 다시 일을 하기 위해 잔걸음을 재촉하는 스님의 모습에서 종교인보다는, 국화 향 같은 건강한 삶이 묻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