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신발 주머니, 그때를 아십니까?



1968년 봄, 그렇게 바랐던 새 교사를 얻어 책보를 챙겨었다. 유리창 밖으로는 우리 또래의 영광초등학교 학생들이 "중앙, 중앙 00떼들아, 깡통을 옆에 차고 부잣집으로...." 야유를 외치고 우리들은 선생님이 말리는 손을 뿌리치고 우르르 몰려나가 치고 박고 육박전을 벌렸다. 코피가 나고 옷을 흙으로 뒤범벅이 되어 돌아 왔을때 선생님은 우리를 호되게 나무랐다. 우리들은 선생님의 꾸지람보다도 계속해서 들려오는 운동장의 아이들 놀림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다음날 등교한 새 학교는 성산밑 보리밭길을 올라서는 언덕베기에 서너칸의 쪼그만 슬라브 집이었다. 비 오는 날은 발모까지 푹푹 빠지는 황토 운동장 때문에 덜 진 쪽으로 가느라고 마치 개미떼처럼 앞서고 뒤서면서 교실로 들어섰다. 시작종을 칠 때쯤이면 복도는 아수라장이었다. 신발은 벗었지만 검은 고무신 속으로 스며든 황톳물 양말 자국이 복도는 물론 교실안까지 질척질척 도장처럼 박혀있었다. 오전 수업이 끝나면 우리들은 신발차두를 들고 백학리 도량으로 달려갔다. 모래를 나르기 위해서였다. 처음에는 다음날 등교를 생각해서이었지만 우리는 일년 내내 쉬는 시간과 등교와 방과후 시간을 이용하여 운동장을 만들어 나갔었다. 중앙초등학교는 그렇게 탄생하였다. 전쟁 난민들처럼 다른 학교의 교사를 얻어 다니면서 주인학교 학생들 텃새 때문에 맘놓고 놀 수 없었던 운동장을 우리 손으로 만든다는 자부심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그 운동장에서 비가오지 않는 건조한 날은 흙먼지 날리며 뛰어 놀고 비오는날은 황토 진흙에 뒹굴며, 중앙초등학교는 군내 축구대회를 휩쓸었었다. 지금 같으면 엄두도 못 낼 일이다. 어린 학생들에게 모래를 퍼 날려 운동장을 만든다면 벌서 아동학대로 신문지상에 떠들썩할 것이다. 그러나 몇 십년이 지난 우리의 기억엑 스스로 우리의운동장을 만들었다는 자긍심으로 모교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 모래를 한삽씩 퍼주시던 선생님이 미운 기억으로 남아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분들을 뵙고 싶은 마음이 더욱 간절하다.



한 삽의 신발자루 가득한 모래주머니는 자립심과 협동심의 참교육이었기 때문이다. 선생님도 갈리고 그 때 일들을 알려준 이들도 없을텐데 기특한 중앙초등 후배들이 근성과 끈기가 필요하고 협동심과 독립심이 있어야 하는 체조등 예체능에 뛰어난 기예를 발휘하고 있다. 국가대표 선수들 2명이나 배출하였고 지금 상급반 선수 중에서도 전국 무대를 석권하는 국가대표 상비군 급의 선수들이 즐비하다. 난방시설이 제대로 안되어 비닐로 창을 막고 손을 입김으로 녹이며 훈련하는 모습이 황토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던 우리시절의 그 때와 흡사하다는 생각이 들어 가슴이 뭉클하다. 온풍시설 해주지 못하는 선배들보다 어린 후배들이 모교를 지키고 있었다. 최근 보도된 농어촌 특수학교는 중앙인들에게 근심을 가져다 주고 있다. 현대적이고 편의적 시설로 지어질 계획인 초등학교는 중앙초등 학군에 편입되어 있는 신하 녹사리의 신도심 인구의 확대로 그 구역을 분리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기존의 초등학교는 상대적으로 왜소화 될 수 밖에 없다. 자칫 잘못되면 분교나 폐교 형태로 급속하게 쇠퇴할 수도 있다. 학군이 분할 되면서 학생수의 감소는 당연히 예상되는 일이고 시설이 좋은 신설학교로 자녀를 보내기 위해서 주민등록 이동이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교육으로 인한 생활 공간의 공동화를 불러 올 수 있다는 것이다. 있는 것을 없애고 새로운 것을 만들 필요가 있는가, 지금의 학교가 얼마나 훌륭한가, 앞으로의 교육은 어린시절부터 각자의 재질을 길러주고 특기와 소질을 개발해 주는 교육이 최선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면에서 우리의 모교는 타 시군의 초등학교보다 앞서가고 있다. 그럴 수 있는 이유는 끈기와 인내로 황토 운동장을 신발주머니로 모래를 날라 운동장을 만들었던 정신이 전통으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라고도 볼 수 있다.



교육 환경도 최선이다. 상업지구와 유해 위락시설에서 떨어져 있고 싼값으로 부지를 활보할 수 있는 녹지구간에 위치해 있다. 도시의 학교들이 가장 문제되는 것은 올바른 교육에 장애를 주는 유해환경이다. 굳이 러브호텔과 다방들이 즐비한 신주택지의 고가의 땅을 선정하여 지극히 국고낭비의 비경제적인 교육정책을 시행할 필요학 있는가.



영광읍 안에 있는 두개의 학교를 육성하고 발전시켜 예체능과 학술 과학 초등학교로 정착화 해 가는 것이 합리적이다. 특별한 정부 지원이 없었어도 뛰어난 인재들을 키워내고 있지 않는가. 그런 자금이 확보될 수 있으면 운동을 맘놓고 할 수 있는 체육관 시설과 컴퓨터등 과학 기자재를 갖추어 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엄밀히 분석해 보면 야구나 농구등 관리유지비가 많이 드는 인기 종목의 운동은 하지 못하고 몸으로 배우는 체조 등의 맨손운동을 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을 직시하여 장래성 있는 운동을 시키는 것도 생각해 볼 일이다.



중앙초등학교 총 동문과 중앙초등학교 전체 관계인들은 냉철한 시선으로 지켜볼 것이다. 문제점으로 재기되고 있는 과밀 학급은 교실의 부분적 개축과 증축으로 해소 할 수 있다. 학급에 학생수가 많다는 것은 군집 집단의 단체 활동을 잘 할 수 있는 자질이 은연중에 함양된다는 잇점도 있을 것이다. 나아가 교사의 강압적이고 획일적인 감시와 지도에서 벗어나 창의적이고 독립적인 인간성을 발전시킬 수 있는 조건 일 수도 있다. 교육학자들은 그런 부분의 검토와 논문이 나올만 하다. 현실의 문제를 두고 교육 원론적인 고민을 하자는 것은 아니다. 큰 틀의 정체성 속에서 작은 개인의 자율성이 있는 교육이 참교육의 실현일 수도 있어서 하는 애기다.



현대적 첨단의 시설이라는 환각적 유혹적인 말이 교육현장에서 통용되는 것은 실로 한심하 다. 농어촌 지역이 도시의 교육환경에 미치지 못한다는 이유를 일부 지역 학생들에게만 혜택을 주는 정책을 편다면 그런 혜택을 받지 못하는 대부분의 학생들에게는 상대적 소외와 박탈감을 줄 뿐이다.

편의적 사고로 그런 발상을 했다면 기존 학교를 통합시켜 거대 단일 학교로 개편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본다.



세상은 정보화 시대로 치닫고 있다. 아이들이 컴퓨터 박스 안에 빠져들고 있다. 유해 환경은 거리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실제로는 컴퓨터 안의 정보 속에 더 많이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상업적 공간이나 불건전한 시설물이 널려있는 주택지에서 유리된 교육환경이 필요하다. 컴퓨터 안에서 접하게 될 수도 있는 다양한 부정적인 것들과 그것들이 연상되는 환경이 근접해 있다면 어린 학생들에게 삐뚤어진 인격을 형성시켜주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런 면에서 중앙 초등이나 영광 초등교는 상당히 우수한 인지 조건이다.



통학 거리의 문제는 통학버스를 운행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다. 걸어서 등교하는 것은 일부로라도 장려해야 된다. 요즘 아이들은 놀이 문화가 없다. 영상 문화만을 즐긴다. 체격은 좋아지나 체력은 떨어진다고 하지 않는가. 오분 십분 걷는 것은 장려할 일이다. 다만 주택 밀집지역의 원거리 학생들은 교통수단을 이용해 해결하면 된다. 어렴풋이 떠오르는 워싱턴이나 링컨의 전기 속에 학교가 멀어 집에 올 때는 책을 읽었다는 일화가 떠오른다. 얼마나 멋있는가. 책보를 등에 묶고 도시락 딸랑거리면서 학교를 다녔던 시절도 멋있고 낭만스럽게 느껴진다.



교육의 현장에서 만이라도 지역의 문화와 전통 속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좋은 정신이나 정서가 있다면 그것을 소중히 여기고 받들고 지원해야 할 것이다.

그때를 아십니까.

신발주머니로 모래를 날라 운동장을 만들었던 중앙인의 정신을...



(장진기 민족문학작가회의 영광지부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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