짚 풀 민예품 만드는 불갑 연봉마을 홍성우씨

벼 수확이 한창인 황금빛 들판위로 볏단이 쌓일 때마다 가을이 더욱 깊어간다. 나락들은 따사로운 햇볕을 머금기 위해 마을길 반 이상을 차지한 채 뒹굴고 철마산 중턱엔 붉고 노란 옷으로 갈아입은 나무들이 점점이 가을 색을 자랑하고 있다. 그런 고즈넉한 시골의 풍경 속에서 잊혀져 가는 전통 민예품을 보존하고 전수해 오는 한 사람을 만났다.

우리지역 짚·풀 공예의 대표적인 기능보유자 홍성우씨.

불갑면 우곡리 연봉마을, 그의 집에 들어섰을 때, 마침 그는 띠잎으로 비옷을 만들고 있었다.

"비오는 날, 모 심을 때나 물도랑 칠 때 이걸 입고 나가면 최고지. 다숩고 또 습기가 안 차 통풍이 잘돼. 근디 만들다 본게 영판 힘드네이"

70을 바라보는 나이,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각종 전시회에 짚·풀제품을 출품, 다수의 입상경력을 가지고 있으며 수준 높은 짚·풀제품을 전시하며 전통민예품의 아름다움을 선보이기도 했다.

50년 이상을 짚·풀과 함께 살아 온 평범한 농부 홍성우씨. 여느 농사꾼이 그이처럼 살지 않을까 마는 홍씨의 경우는 무언가 다른 점이 있다. 전통문화를 소중히 여기고 그것을 통해 자신의 삶을 끊임없이 담금질하는 부지런함과 고집스러움이 그렇다.

홍씨는 농한기에도 쉴 새가 없다고 한다. 시기에 따라 제작에 쓰이는 재료를 잘 수집해야 하기 때문이다.

짚뿐 아니라 띠잎이나 모시·당나무·소태나무·죽순껍질이 그가 만드는 민예품의 다양한 재료가 된다. 그래서 자신의 작업을 단순히 짚공예라 하지 않고 짚·풀 공예라고 강조한다.

옛부터 우리의 실생활 여러 분야에서 아주 요긴하게 사용되었던 짚. 소담스런 흰 눈이 소리도 없이 쌓이는 밤, 옛날 농부들은 동네에서 제일 큰 사랑채에 모여 멍석을 틀고 동구미, 짚독, 멧방석 등을 만들었었다. 지금은 박물관에나 가야만 구경할 수 있는 귀한 것이지만 홍씨의 집안 여기 저기에는 우리조상들의 삶과 함께 했던 서민의 필수품, 구수한 짚·풀 제품들이 많다.

현대인들이 매끄럽고 화려한 것을 선호하는 것에 비추어 볼 때 오히려 짚과 풀은 그 순수성으로 인해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고 한다. 최첨단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우리 짚·풀제품의 실용성과 미학이 다시 인정을 받고 있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제작과정이 번거롭고 힘든 점이 있다지만 짚·풀제품은 공기가 잘 통해 곡식의 부패를 막고 인체와 조화를 이루는 장점이 있다. 거기에 사람의 손 떼와 정감, 정성이 깃들어 있을 터, 홍씨의 굵은 손마디에서 천한 짚이랑 풀들은 귀한 생명을 새로 얻는다.

홍씨는 73년까지 짚·풀 제품을 제작했지만 플라스틱과 유리제품들에 밀려 한동안 공백기가 있었다. 그 후 가마니, 덕석이나 망태기 정도는 틈틈이 만들어 사용해 왔는데 본격적으로 다시 시작한 때는 90년대 들어서부터이다.

월드컵이 열리던 지난 6월, 홍씨는 1주일간 외국인을 대상으로 예술의 거리에서 짚·풀공예를 선보여 큰 호응을 얻었다.

그때 그가, 절실히 느낀 점이 하나 있었다고 한다. '좋은 문화상품을 보유하는 데가 지역과 나라의 경쟁력을 갖추는 길임을 새삼스레 재확인했다'는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이곳 불갑에 문화예술촌을 조성하겠다는 면 청년들의 계획이 꼭 이루어지길 바라는 홍씨.

20년 전까지 만 해도 그에게 있어 짚·풀민예품 제작은 공예이기 전에 삶이었고 생활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짚 풀과 함께 해 온 그의 삶은 그저 생필품 제작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제 전통문화의 소중한 지킴이가 되어 우리 곁에 서 있다.

"내가 이거 안하믄 집에 앉아서 무엇 하겄는가? 사람은 움직일 수 있을 때 쉬면 안 되는 법이여! 다른 사람이 웃던지 말던지 소용 없응게..."라며 나즈막히 건네는 말끝에 그가 지금도 짚풀을 소중히 다루는 진정한 이유가 숨겨져 있으리라. 그것은 바로, 더디 가면서 삶을 깊이 성찰하던 옛 사람들의 정신을 후손들에게 잘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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