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선
영광신문 편집위원
법성포초 송이분교장

무제(無題)



배가 그쳤단다.

뒷문을 열고 뜰에 나섰다.



윙윙대는 바람이

칼날을 벼리고 있었다.

하얗게 바랜 모래마당에

늦가을 햇빛이 처연(凄然)하다.

고개를 들었다.

점하나 없는 천공(天空)에

침이 마른다.

우람한 해송줄기 위 가시 같은 삭정이

드문드문 검은 솔잎사이로

시퍼런 하늘을 보노라니.



무서움이 일었다.

내가 녹아들어간다.

동동 나만 남았다.







단숨에 이 글을 쓰고 나서 오전수업을 마치면서, 짐짓 근엄하게 말했다. 점심 먹고 와서 할 숙제를 내 준다고. 뜬금없는 숙제에 싫은 기색들이 역력했다. ‘숙제는 하늘을 쳐다 볼 것.’

오후 수업이 시작되기도 전에 다들 재잘거린다.

어서 숙제 검사 하라고, 다 안다고, 푸른 하늘이라고. 교실 옆 마당에 모이게 했다.

하늘을 쳐다보며 푸른 색깔이 어떻게 다르냐고 물으니, “산 위에는 옅어요.” 라고 대답한다. “바다위에는 어떻고?” 하며 재차 물으니, “밖에는 옅어요.” “겉에는 옅어요.” 라고 수정한다. ‘가장자리라 하면 어떨까?’ 하니 모두들 고개를 끄덕인다.

이제는 하늘에서 구름을 찾아보라고 했다. “없어요!” 이구동성이다. “그러면 내가 차줄까?”(찾을까?) 하니 모두들 자신 있게 “예.” 하면서 다시 하늘을 쳐다보며 두리번거린다.

“어.” “아.” “어.”

“왜 차요.”

“너희들이 차주라(찾으라) 했잖아.”

“에이~”

“오후수업은 야외학습이다.” 했더니 환호성이 인다.

봄철. 학교에 있는 나무들의 이름을 서른 가지가 넘게 가르쳤다. 벽오동 나무 아래 모이라고 했다. 모두들 먼저 뛰어가서 나무를 쳐다보고 있었다.

‘저게 씨앗 주머니야.’ 하면서 떨어진 씨앗을 찾아보자고 했다.

여기저기서 노랗고 쭈글쭈글한 둥근 씨앗을 찾아내었다. 어떤 아이는 키처럼 생긴 포의(胞衣)를 뒤집어 쓴 오줌싸개 같은 완벽한 모양의 씨앗을 주워오기도 했다. 이제는 껍질을 벗겨 그 알맹이를 먹어보라고 했다. 맛이 없다는 아이도 있었으나 밤 맛이라는 아이, 땅콩 맛이라는 아이, 호두 맛이라는 아이, 커피 맛이라는 아이까지 나오더니 다투어 호주머니에 채운다. “그래. 모든 음식에는 고유의 맛이 있는데 우리는 선입견에 사로잡혀 그 맛을 알아내지 못하는 것이야. 김치는 김치 맛이 있고, 양파는 양파만의 맛이 있는데 말이야.”

바닷가로 향했다. 사구(砂丘)언덕을 돌아가는데 오후 햇빛에 반짝이는 찔레 열매가 눈에 들어 다시 맛보게 했다. 새콤달콤하다고, 사과 맛이라고, 뻘뚝(보리수열매의 이곳 방언)맛이라고 하며 따기 시작한다. 바닷가로 나섰다.

바다는 저만치 물러서 있었다. 멀리 섬의 서쪽 양 끝에서 달려 나와 비켜선 긴 방파제로 호수 같은 바다는 온통 팔딱이는 비늘로 눈을 뜨기 어려울 지경이다. 재미있는 돌 줍기를 했다.

서로들 나름대로의 의미를 부여했다.

돌탑 쌓기를 하자고 했다. 그러나 조금 쌓더니 자연스레 모래 바닥으로 간다. 그리고는 여러 모양의 돌들을 주어와 모자이크 그림을 그렸다. 치마를 입은 여자아이를 그리더니 머리를 곱게 땋고 목에는 목걸이를 두른다. 그리고 손가락을 세밀하게 그린 다음 한쪽 손에는 예쁜 가방을 들리고  자 모양의 돌 두개로 양쪽 발을 마감했다. 또 한 편은 성채를 쌓고 그 안에 집들을 배치한 다음, 거리의 모습들을 활기차게 채워나갔다. 나는 주변에서 곡옥(曲玉)모양의 초콜릿색의 작은 돌을 몇 개 주워 호주머니에 넣었다.

아이들의 설명이 끝나고 돌아오는 길에 호주머니의 돌을 보이며, ‘이런 돌로 펜던트(Pendant)를 만들면 어떨까?’ 했더니 다시 가서 줍자고 야단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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