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선
영광신문 편집위원
법성포초 송이분교장
꽃도 아닌 것이 나무도 아닌 것이
이 너른 들판을
이토록 아름답게 물들일 수 있을까
결코
뛰어나지 아니하는 수수함으로
화려하지 아니하는 따스함으로
압도하지 아니하는 당당함으로
빈약하지 아니하는 풍성함으로
이 가을을 곱게 물들이는 너는
가을의 진정한 꽃이어라
하루 세끼 1년 365일을 한결같이
이 땅 만민들의 먹거리요 안식처요 도구이며
밥 짓고 잠자리를 따뜻하게 데워주는 너는
겨레의 젖줄이요 요람이며
새와 물고기 벌레들까지도 먹여 살리는 너는
이 땅의 어미요 생명의 터전이어라
이른 봄 아직 차가운 물 속에서 뿌리를 내리고
긴 장맛비와 수차례의 태풍을 뚫고서
머지않아 흰 서리를 머리에 이기까지
섭리를 거스르지 아니하는 겸손함으로
멈추지 아니하는 의연함으로
이제는 이 들녘을 가득 채운 너는
진정한 인격이요 승리자여라
네가 없었던들
액체산소와 같이 시퍼런 저 하늘이
세월을 거역하는 슬픈 화장 같은 저 단풍이
알맹이 없이 허허로운 저 산비탈의 갈대가
오늘 아름다울 수 있으며
이 가을을 노래할 수가 있단 말인가
기울어져 가는 태양 빛에 가장 잘 어울리는 너는
가을의 색이요 빛이어라
이 땅의 인간역사 오천 년을 함께
끊어질 듯 끊어질 듯 이어 내려와
오늘을 이렇게 노래하고
내일을 이렇게 살아갈 너는
이 땅의 역사요 주인이어라